[IB토마토](데스크칼럼)책임 있는 대주주? 사모펀드에 기업을 넘기는 아이러니
고려아연 경영권 놓고 최대주주 장씨 일가와 경영진 최씨 일가 싸움
MBK파트너스까지 끌어들여 지분 싸움 나선 영풍 장씨 일가 논리
국가 기간산업 해외 유출 시나리오 불 보듯 뻔하다는 평가 지배
입력 : 2024-09-24 06:00:00 수정 : 2024-09-24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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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의 경영권을 둘러싼 최대주주인 영풍 장씨 일가와 경영진 최씨 일가의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최근 영풍(000670)은 국내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와 손을 잡고, 고려아연(010130) 경영권 확보를 위한 공개매수를 선언했다. 두 집안의 다툼이 사모펀드에게 손을 벌리는 상황까지 이른 것이다. 영풍 장씨는 고려아연을 사모펀드에 넘길지라도 최씨 일가의 경영을 막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영풍그룹은 1949년 고(故) 최기호·장병희 창업주가 공동 설립해 영풍과 전자 계열사는 장씨 일가가, 고려아연은 최씨 일가가 독립 경영하는 체제를 유지해 왔다. 그러다 지난 2022년 최기호 창업주의 손자인 최윤범 회장이 고려아연 경영을 맡기 시작한 이후 고려아연 지분 매입 경쟁이 시작됐다. 최씨 일가는 지분 스왑 등을 통해 우호 지분을 확보하고 경영을 지속하고 있다. 결국 올해 초 정기 주주총회에서 배당 정책과 정관 변경 안건을 영풍이 반대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고려아연 홈페이지 모습.(사진=고려아연)
 
MBK파트너스는 이번 공개매수를 통해 최소 6.98%(144만5037주)에서 최대 14.61%(302만4881주)를 확보해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손에 넣겠다는 계획이다. 공개 매수 금액은 주당 66만원으로 지난 12일 종가(55만6000원) 대비 18.7% 높은 금액이다. 향후 공개 매수 응모 주식 수가 최소 매수량인 약 144만주에 미달하면 공개 매수를 취소하고, 이를 넘으면 최대 302만주까지 모두 현금으로 매수할 예정이다.
 
문제는 이번 공개매수가 영풍이 직접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영풍과 MBK는 앞서 의결권 공동 행사를 위한 경영 협력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이를 통해 MBK가 영풍보다 이사를 1명 더 선임할 수 있고, 대표이사(CEO)와 재무담당임원(CFO)을 직접 선임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또 공개매수 이후 MBK는 콜옵션을 행사해 영풍보다 1주 많은 고려아연 주식을 확보할 수 있는 권리도 갖고 있다.
 
특히 MBK는 드래그얼롱(동반매도청구권) 권한까지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향후 고려아연 지분을 매각할 때 영풍이 보유한 지분까지 함께 매각할 수 있는 권리다. 영풍이 보유한 지분까지 포함해야 경영권을 완전히 넘길 수 있어, MBK가 얻을 수 있는 지분 가치가 한층 더 커질 수 있다.
 
반면, 영풍은 MBK가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을 매각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풋옵션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영풍의 재무 상태로 봐서는 향후 MBK가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을 다시 사 오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올해 상반기 기준 영풍이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유동금융자산까지 포함해 5천억원 규모다. 이번 공개매수 규모가 최소 1조원에서 최대 2조원이고, 향후 지분 가치도 크게 오를 수 있어 영풍이 지분을 다시 사 오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공개매수가 성공할 경우, 고려아연의 경영권은 결국 MBK의 손을 거쳐 매각될 가능성이 크다. 최씨 일가는 이번 공개매수를 "적대적 M&A"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경영진이나 이사회의 동의 없이 강행되는 약탈적 기업 인수 방식이라고 주장하며, 고려아연이 해외 기업에 매각될 경우 국가 기간산업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MBK는 해외로 지분을 넘기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국내 기업 중 고려아연을 인수할 만한 후보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지분 경쟁은 자본시장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업이 망가지고, 직원들이 불안해한다면 이는 단순한 문제로만 볼 수 없다. 고려아연은 매년 수천억원의 이익을 내는 글로벌 1위 아연 제조업체다. 그러나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한 후 배당을 통해 인수 자금을 회수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점에서 우려는 크다.
 
장형진 영풍 고문은 “고려아연의 글로벌 위상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는 MBK 파트너스와 같은 기업 경영 및 글로벌 투자 전문가에게 지위를 넘기는 것이 창업 일가이자 책임 있는 대주주 역할”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사모펀드에 회사를 넘기는 것이 과연 책임 있는 대주주의 역할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기업을 사모펀드나 해외에 넘기더라도 최씨 일가가 경영하는 것만은 막겠다는 ‘아집’이 만들어낸 궤변은 아닌지 다시 한번 되짚어봐야 할 시점이다.
 
최용민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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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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