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가 답이다!)생존과 지속성장의 유일한 동력, '투자'
(집중기획)④위기를 '도약발판' 삼은 국내외 성공사례
입력 : 2012-06-28 15:28:46 수정 : 2012-06-28 15:29:29
[뉴스토마토 김기성·황민규·양지윤기자] 위기(危機)라는 단어는 '위험한 고비나 시기'를 뜻하지만, 묘하게도 '기회'의 '기'(機) 자가 함께 담겨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는 현실에서 경험으로 입증된 명제이기도 하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제 위기의 의미도 엄밀하게 따지면 단순한 위험만을 뜻하지 않는다. 시장에는 늘 위험과 기회가 병존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업에게 불리한 조건과 상황변수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것이다.
  
최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장-베네딕트 스틴캠프(Jan-Benedict Steenkamp) 교수 등이 미 주식시장에 상장된 1175개 기업의 지난 35년간 실적 자료를 수집한 결과, 극심한 시장침체를 겪어왔던 지난 3년간 R&D 투자비율을 3%포인트 높게 유지한 기업은 시장점유율에서 1.03%포인트, 수익은 약 1200만달러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비슷한 조건을 마케팅 관련 투자에 적용해 보니 광고 투자 점유율을 3%포인트 높게 유지한 기업은 2%포인트 낮게 유지한 기업에 비해 시장점유율이 0.65%포인트 증가하고 수익은 약 400만달러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뿐만 아니라 불황기 투자가 가져온 수익성 개선 효과는 소비재와 산업재를 막론하고 모든 영역에 걸쳐 발견됐다. 이런 연구 결과는 ‘불황기일수록 미래에 대한 투자가 중요하다’는 명제를 증명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스틴캠프 교수는 보고서에서 "위기마다 대부분의 기업은 움추리며 투자를 회피하지만 모든 기업이 다 그런 건 아니다"면서 "주기적으로 겪게 되는 침체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활용해내는 지가 기업성장의 중요한 척도가 된다"고 설파했다.
 
즉 기업의 국적이나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경제주체의 성공 여부는 시장에 대한 전략, 그 중에서도 특히 '불황기 투자'에 달려있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핵심 주장이다.
 
◇"불황은 나의 힘"..해외기업들의 불황기 성공전략
 
1990년대 초 미국경제는 심각한 경기침체에 빠져 있었다. 민간소비가 위축되자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제조업체인 GM, 크라이슬러 등은 약속한 듯이 R&D 투자를 대폭 감축했다. 비슷한 시기 일본경제도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들의 대대적인 엔화 절상압박으로 인해 사면초가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경제 침체와 불확실성 속에서도 도요타와 혼다 등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R&D투자를 오히려 큰 폭으로 확대했다. 투자의 차이는 15년 뒤 이들 업체들의 운명을 갈랐다. GM, 크라이슬러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도요타와 혼다가 글로벌 강자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불황기에 투자를 줄인 미국의 자동차회사들은 경쟁력을 계속 잃어간 반면 일본 자동차회사들은 어려울 때마다 대대적인 체질개선 작업에 착수해왔다"며 "경제위기 이후 일본기업들의 시장지배력이 매번 더 강력해져왔다"고 말했다.
 
스위스의 시계산업도 마찬가지다. 오일쇼크로 세계 경기가 수렁에 빠졌던 1970년대 스위스 시계산업은 일본 기업들의 저가 공세로 줄줄이 도산했다. 당시 채권은행조차 스위스 시계산업의 몰락을 선언할 정도였다.
 
하지만 스와치그룹의 니콜라스 하이엑(Nicolas G. Haye) 당시 회장은 채권은행들을 일일이 설득해 오메가·라도 등 유명 브랜드 17개를 사들였다. 그는 부품을 공동생산하고 마케팅을 함께 하는 등 군살을 빼면서 첨단 기술력과 고급화 노하우를 살렸다.
 
그 결과 대규모 투자를 시작한 지 불과 5년 만에 스와치그룹을 전 세계 시장의 25%를 점유하는 세계 최대 시계제조회사로 탈바꿈시켰다.
 
네덜란드의 가전업체인 필립스도 비슷한 사례에 속한다. 필립스는 1990년대 초반 불황을 타개하는 첫번째 전략으로 일단 비주력 사업을 매각하고 구조조정을 실시해 투자 재원을 마련했다.
 
이후 필립스는 1995년부터 핵심사업인 반도체 및 전자부품에 공격적인 투자를 시작했고, 지난 1999년엔 네덜란드 국내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LG와의 LCD합작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 1993년 당시 필립스의 순익은 8억8500만유로에 불과했으나, 투자가 본격화된 지 4년만에 25억9800만유로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웅진그룹, ‘태양광’이라는 날개를 달다
 
눈을 국내로 돌려보자.
 
웅진코웨이(021240), 웅진씽크빅(095720), 웅진케미칼(008000) 등 매출 삼각편대를 거느리고 있는 웅진그룹은 5년 전부터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섰다. 이들 3개 사업을 통해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자리 잡았지만 새로운 성장의 돌파구가 필요했다.
 
웅진그룹은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태양광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당시 정수기 업계 1위였던 웅진코웨이가 친환경 이미지가 있다고 판단하고, 태양광 사업의 유망성과 부가적으로 얻는 친환경 이미지가 그룹 안팎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웅진그룹과 선파워는 각각 50 대 50의 지분을 투자해 2006년 합작사를 설립했고, 그 회사가 바로 웅진에너지다. 웅진에너지는 당시 태양광 진출을 선언한 삼성이나 LG와 달리 선파워와 발을 맞춰 빠르게 투자결정을 내리고, 곧바로 사업 준비에 착수했다.
 
설립 이후 2달 만에 생산 제품을 내놓고 반년 만에 1공장에 360메가와트의 공장 건설을 완공했다. 덕분에 선파워에서 약속한 물량을 잘 가져갔고, 매출이 대폭 늘어나면서 2009년, 2010년에 생산능력이 640메가가 됐다. 1, 2공장에 모두 투자된 돈은 5000억원이다.
 
웅진에너지는 또 지난해 초부터 다이아몬드 와이어 소어 장비에 투자를 시작해, 같은 해 9월 관련 장비를 모두 확보하고 올해부터 상업 생산을 시작했다. 웅진에너지는 그동안 매출 잉곳의 생산비중이 웨이퍼에 비해 2배가 많아 업계 1위인 넥솔론에 비해 매출이 작았다.
 
웅진에너지는 당초 5000억원을 더 들여 3공장 건설을 계획했으나, 지난해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태양광 업황이 살아날 조짐을 보이지 않으면서 증설을 보류했다. 하지만 올해 초 다이아몬드 와이어 소어 웨이퍼 생산을 시작하며 기술에 대한 투자전략을 취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영업손실이 19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적자전환했지만, 전년과 비교해 출하량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고 웅진에너지 측은 밝혔다. 다이아몬드 웨이퍼 수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비용이 실적에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6월 현재 웅진에너지의 월간 웨이퍼 생산량은 550만장 수준이다.
 
◇‘중기에서 중견기업으로’..불황을 '도약의 발판'으로
 
쿠쿠전자 구자신 사장의 경영전략은 “남들이 투자를 줄일 때 한발 앞서 투자한다”는 것이다. 이 전략으로 그는 국내 전기밥솥시장에서 삼성과 LG 등 쟁쟁한 대기업을 눌렀고, 지난해부터는 ‘전기밥솥 종주국’ 일본에까지 수출을 시작했다.
 
그의 성공 신화는 지난 98년에 시작됐다. IMF 쇼크 속에서 회사가 적자를 내고 있었지만, 그는 10억원을 들여 업계 최초로 전기압력밥솥을 개발했다. 주변에선 “불황인데 그냥 있지” 하고 빈정댔지만, 회사측은 매년 8억~20억원의 시설투자를 거듭했다. 결국 이 회사는 현재 50%의 국내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게 됐다.
 
구 사장의 경영모토는 ‘어려울 때 투자해야 더 큰 성과를 거둔다’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전략과 비슷하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쿠쿠전자는 최근 밥솥 이후의 주력산업으로 가습기 등 ‘웰빙 가전’을 설정해 또다시 투자에 나서고 있다.
 
지난 1998년 무려 2000억원을 투자하여 신규사업 분야인 할인점 이마트 부지 20곳 구입, 첨단물류센터 설립, 전산시스템 구축 등을 한지 6년이 지난 지금, 당시 투자한 20개 매장은 연매출 2조원에 3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변신했다.
 
락앤락(115390)의 하나코비 김준일 회장도 주방용품 수입·판매에 주력하던 회사를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던 지난 1997년 과감히 밀폐용기 시장으로 뛰어들게 하면서 성공을 일궈냈다. 당시 김 회장은 “다품종 소량 생산으론 중소기업의 한계를 넘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기업 상황이 어렵더라도 과감한 투자만이 기업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투자, 위기 극복·지속가능 발전의 키워드"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의 투자패턴도 굳이 따지자면 몰락한 미국 자동차제조업체들과 같은 패턴을 나타내고 있다.
 
불황이 오면 가장 먼저 각종 비용을 삭감하고, 그 다음으로 투자를 줄이는 식이다. 반도체, 스마트폰 이후 마땅한 신수종 사업 전략이 정체를 빚고 있는 가운데 대기업들도 곳간에 쌓여가는 유보금을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다.
 
불확실한 경제정책, 고유가, 내수침체 장기화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 경제의 탈출구는 오직 기업들의 투자뿐이다. 전문가들은 불황 때 한발 앞선 투자가 값진 열매를 맺는다고 충고하고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존의 성과로 상당한 자금을 확보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이제 이러한 전환기적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투자를 준비해야할 것”이라며 “이것이 지금 처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미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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