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경제민주화, 역사의 아이러니
입력 : 2012-10-10 17:14:32 수정 : 2012-10-10 17:16:00
[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지난해 7월13일 국회 본청 내 민주당 당대표실. 손학규 대표는 “보편적 복지와 함께 경제민주화는 민생진보의 양대 개념”이라며 “오늘 민주당은 경제민주화특위와 보편적복지특위를 발족시킨다”고 선언했다.
 
당장 여권인 한나라당이 들고 일어섰다. 대내외 경제 여건을 고려치 않는 정치적 꼼수라는 반론이었다. 다만 홍준표 대표가, 과거 당내 서민특위를 이끌 당시 대기업 개혁을 거론하며 “좌클릭도, 포퓰리즘도 아닌 헌법의 경제민주화 정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던 대목이 부담인 모습이었다.
 
보수언론의 반격은 이보다 훨씬 거셌다. 이들은 민주당이 근거로 내세운 헌법 119조 1항과 2항에 대한 유권해석을 바탕으로 민주당이 시장원리를 무시한 채 견강부회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표만 된다면 헌법까지 제 멋대로 해석하느냐며 표(票)퓰리즘의 극치라고까지 했다.
 
그렇게 보수와 진보, 양측은 또 한 번 충돌했다. 해방 이후 한국사회를 이끌어왔던 주류세력인 보수정당과 관료, 재계, 보수언론 등 기득권층이 한데 뭉쳤다. 반대편엔 야당과 시민사회, 그리고 소수의 진보적 학자와 진보언론이 섰다. 헌법 119조 1항과 2항을 놓고 이념전선이 꾸려진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25년 전인 1987년 10월12일 제137회 국회 본회의장. 이재형 국회의장이 단상에서 제9차 헌법 개헌안이 가결됐음을 선언했다. 단 4명의 반대를 제외한 재적의원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개정안은 같은 달 27일 국민투표를 거쳐 헌법의 효력을 지녔다.
 
당시 개헌안에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헌법 119조가 포함돼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1항은 야당이었던 통일민주당이, 2항은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각각 주장했다.
 
1항은 ‘경제 질서의 기본원칙’에 관한 조항으로, 현재 재계와 보수언론의 시장주의 논거로 활용되고 있다. 반면 2항은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 조항으로, 현재 여야가 한목소리로 주장하는 경제민주화의 근거다.
 
조문은 다음과 같다. 1항 :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2항 :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왜 당시 여야는 지금과 정반대된 주장을 펼치며 대립했을까. 이는 시대적 맥락을 이해해야 이해가 가능하다. 70·80년대는 군사정권이 관치경제를 통해 산업화를 이뤄나가던 역사적 명암이 공존하던 시기였다.
 
때문에 '시장 자율에 의한 경제활동 보장'(1항)은 당시로선 관치경제를 억누를 혁신적 주장이었다. 반면 여당 입장에선 정부의 시장 개입을 보장(2항)하는 활로가 필요했다. 2항의 입안자인 김종인 현 새누리당 박근혜캠프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당시 민정당 국회의원이자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다.
 
뒤바뀜의 역사 속에 2012년 유력 대선후보 3인은 경제민주화를 대선 공약의 주된 기치로 내걸었다. 여야 또한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해 헌법 119조 2항을 근간으로 각종 규제법안 입법화에 나섰다. 바뀌지 않은 곳은 재계 뿐이다. 한때는 국가권력에, 한때는 국민혈세에 기대면서 끊임없이 부를 창출하고 축적시켜 나갔다.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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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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