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블로그)용인지, 지렁이인지..겉과 속이 다른 세종청사
입력 : 2013-04-17 16:14:41 수정 : 2013-04-17 16:17:18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조선이 건국될 때 한양을 수도로 정하며 풍수지리를 이용했다는 건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럼 행정수도를 지향하는 세종시도 풍수지리를 고려했을까요?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충청도의 명산인 계룡산과 금병산이 세종시를 감싸고 금강이 시를 통과해 동에서 남으로 흐르는 걸 보면 문외한인 기자의 눈에도 어느 정도는 풍수를 감안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실제로 세종청사 부지를 두고 닭이 알을 품는 형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청사 옥상에 조성된 산책로에 올라가 너른 주위를 둘러보면 가슴이 시원해지고 답답한 마음이 뚫리는 것을 느낍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옥상에서 기지개를 펴거나 휴식을 취하는 공무원들을 자주 만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만약 정말 풍수를 생각해 세종청사를 만들었다면 백미는 바로 청사의 형상입니다. 산책로를 통해 하나로 연결된 청사를 하늘에서 보면 마치 꿈틀대는 용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완공되지 않았지만 내년말쯤 청사가 다 지어지면 그 경관은 정말 볼만할 듯 싶습니다.
 
세종청사에서는 살이 찐 공무원들을 좀처럼 볼 수 없습니다. 아마 땅의 기운이 좋은 곳에서 일하고 먹고 생활해서 사람까지도 그렇게 닮아가는 모양입니다.
 
청사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날씬한 건 무엇보다 업무를 보거나 출퇴근을 하려면 청사 1동에서 6동까지 이어진 약 1.4km의 복도를 왔다갔다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싶습니다. 이만하면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한 최상의 자연 체력단련장인 셈입니다.
 
그렇다고 청사가 마냥 좋은 건 아닙니다.
 
우선 세종청사를 처음 찾는 사람은 비슷비슷한 청사 외형과 복잡한 구조 때문에 길을 잃기 십상입니다. 길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아직도 동과 동을 잇는 구름다리에는 부처 배치도가 그려진 대형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을 정도입니다.
 
웬만큼 지리에 익숙해졌다 해도 용을 본따 만든 건물인 만큼 안은 또 얼마나 복잡하겠습니까. 정전을 위해 복도에 불까지 끄면 정말 동굴이나 미로에 온 것 같기도 합니다.
 
지나치게 외형적 멋을 추구한 청사기 때문에 실용적으로도 허점이 많아 보입니다. 
 
청사 건물은 모두 통유리로 마감됐는데 모 부처의 기자실은 밖에서 안이 다 들여다보여 지금까지도 블라이드를 내려놓고 있습니다. 일부 부처는 벌써부터 벽에 금이 가고 천장에서 물이 샜고 심지어 어떤 부처는 구조물이 내려앉기도 했습니다.
 
겉모습은 화려한데 속을 들여다보면 영 실망스러운 그다지 잘 지어진 건물은 아닌 듯 합니다.
 
서울의 풍수지리 덕분에 조선은 500년이나 이어질 수 있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용의 형상을 본 뜬 청사를 세우고 임기를 시작한 박근혜 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이번 정부가 출범할 때 국민적 기대가 높았습니다. 헌정 첫 여성 대통령에다 과반수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후광까지 얻었습니다. 마치 양지바른 곳에 위치한 세종시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출범 50여일이 지난 지금 정부가 밟아온 길은 승천하는 용이 아니라 길을 잃은 지렁이처럼 갈지자 행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정부조직법 개편안부터 삐걱거리더니 내각인선은 이제 마무리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여섯 명의 후보가 낙마했고 야당이 반대하는 인물을 대통령이 강행해 임명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부터 내세운 경제민주화니 창조경제니 하는 것도 방향을 잃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이번 정부를 두고 역대 최약체 임기 초반을 겪는 정부라느니 지지율이 반토막 났다느니 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세종청사는 용을 닮았는데 정부가 하는 일은 왜 승천하는 용이 되지 못하고 있을까요. 외형적인 멋만 추구한 청사처럼 이번 정부도 그런 것일까요.
 
아직 지나온 임기보나 남은 임기가 훨씬 많은 박근혜 정부입니다. 앞으로는 국민의 목소리를 더 폭 넓게 수렴하고 정쟁보다는 화합을 추구해 국민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는 일만 신경쓰길 바랄 일입니다.
 
설마하니 청사 설계자가 용이 아니라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염두에 두고 청사를 지었겠습니까. 국민들이 정부에 기대하는 바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풍수지리가 정말 영험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 정부가 세종시와 청사의 기운을 받아 정말 용이 하늘을 날듯 잘 되길 바랍니다.
 
그래야 세종청사의 공무원들도 기운 좋은 땅에서 기분 좋게 일할 맛이 날테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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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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