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먼지쌓인 TV에서 갤럭시까지'..삼성의 또 다른 힘 '브랜드'
입력 : 2013-07-31 17:14:31 수정 : 2013-07-31 17:17:42
[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삼성을 상징하는 타원형의 푸른 로고는 대한민국 경제의 상징이 됐다. 1990년대 초반 이건희 회장이 미국 가전매장 구석에서 먼지 쌓인 삼성전자 TV를 보고 개탄, 신경영을 선언한 지 20년만에 삼성은 인터브랜드가 선정한 세계 브랜드가치 9위에 이름을 올렸다.
 
인터브랜드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삼성은 '세상에 영감을 불어넣고 새로운 미래를 창출하자'는 기업 철학을 성공적으로 완성해 나가고 있다"며 "(기업가치 측면에서) 현재 위치를 기반으로 2013년에는 더 큰 확장이 예상된다"고 호평했다. 삼성이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을 넘어 글로벌 산업경제를 주도하는 선도기업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는 상징적 평가였다.
 
이는 동시에 우리나라 소비자들에게 '격세지감'마저 느껴지게 하는 대목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삼성은 그저 그런 아시아의 2·3류 기업에 불과했다. 가전과 휴대폰은 잦은 고장을 일으키기 일쑤였고, 디자인 철학이 부재했으며, 반도체 업황에 휘둘려야만 했다. 베끼기로 국내시장에 안주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때문에 왕좌를 차지한 소니는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노키아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그랬던 삼성이 이제 이들의 추격을 받는 처지로 바뀌었다. 이들이 하나같이 몰락하는 사이 삼성은 시장의 절대강자로 우뚝 섰다. 심지어 스마트폰 세상을 열어젖힌 애플마저 삼성에게 시장 1위 자리를 내줘야만 했다. 
 
◇지난 2012년 인터브랜드가 선정한 브랜드 가치 성장률 'Top 5'.(그래픽출처=인터브랜드 보고서)
 
◇'추격자 전략'에 감춰진 삼성의 성장기반과 브랜드 파워
 
'삼성'하면 상당수 소비자들은 '패스트 팔로워', 즉 세계 최고 기업을 빠른 속도로 추격해 나가는 기업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삼성 관계자들을 비롯해 국내외 석학들은 삼성의 기업가치를 추격자 전략과 동일시하는 과정에서 놓치게 되는 핵심 요소들을 지적하고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일부에서는 삼성이 모방 등 추격자 전략을 사용해 성공한 기업 사례로만 알고 있지만 통상 기업이 추격자 전략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빠른 의사결정과 품질경영, 축적된 기술력과 경험, 소비자 친화적 마케팅 등이 전제돼야 한다"며 "이를 간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송재용 서울대 교수도 비슷한 견해를 드러냈다. 신경영의 성공 요인을 '패러독스 경영 시스템'으로 규정한 그는 삼성의 브랜드 전략 성공 근거로 "거대하지만 빠른 조직, 다각화돼 있으나 특정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 일본식과 미국식 경영시스템의 장점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경영시스템"을 꼽았다.
 
또 브랜드 가치 재고를 위해 삼성이 투자한 규모도 막대하다. 이름값이 있어야 제값을 받을 수 있고, 이는 수익을 높임과 동시에 시장에서의 위치를 결정하게 된다. 정보·기술(IT) 전문사이트 아심코의 호레이스 데디우 설립자는 최근 "삼성은 올해 광고와 커미션, 판촉활동, 홍보 등에 120억달러(약 13조원) 가까운 비용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며 "삼성의 갤럭시와 태블릿PC를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볼수 있는 주요 이유"라고 분석했다.
 
이는 애플의 '원샷 원킬'의 카테고리 킬러 전략과는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삼성전자는 넓은 지역을 다양한 제품 라인업으로 단기간 내에 공략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특히 글로벌마케팅실(GMO)을 구심점으로 각 사업부별 특화 브랜드 전략을 내세워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맞는 변화무쌍한 브랜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공략할 시장 진출에 앞서 문화에 동화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도 현지화 전략의 성공요인이다.
 
◇이성에서 감성으로..열정을 불어넣다!
 
삼성은 제품의 광범위한 보급률을 추구하는 동시에 내부적으로 강력한 이미지 관리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CRM(소비자관계마케팅)의 일환으로 단순히 시장 점유율을 확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올리는 수준이 아니라 제품에 대한 신뢰를 확대해 나가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삼성그룹이 '삼성' 로고 사용에 대해 엄격한 이미지 관리 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삼성그룹은 지난 2008년부터 브랜드관리위원회를 설치해 운영 중이며, 삼성로고를 사용하는 계열사들에게 일정 수준의 로열티를 거둬오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의 브랜드 파워를 등에 업은 여타 계열사들은 다른 기업들에 비해 손쉽게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브랜드의 힘이 시장 진입은 물론 안착의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지난 25년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스포츠 마케팅'도 삼성 브랜드 이미지 재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은 1998년 나가노 올림픽에서 무선통신분야 공식 후원사가 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올림픽 마케팅을 전개해, 2016년 브라질 리오 올림픽까지 공식후원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와 스폰서십을 맺고 있는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축구클럽 첼시.(사진제공=삼성전자)
 
스포츠 마케팅은 삼성전자가 브랜드 마케팅과 관련해 추진하고 있는 '현지화 전략'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5년부터 시작된 스폰서십을 통해 첼시와 함께 영국 등 유럽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축구에 열광하는 영국인들이 첼시의 승리를 기원하며 삼성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맥주잔을 드는 모습은 문화로 자리했다.
 
이를 기반으로 삼성전자의 유럽 매출은 2005년 후원을 시작한 이래 2011년까지 2배 이상 성장했으며, 주력 제품인 스마트폰과 TV의 시장 점유율도 덩달아 껑충 뛰어올랐다. 특히 첼시의 연고지인 영국에서 삼성전자 매출은 후원 전인 2004년 대비 2011년에는 3배에 가까운 성장세를 기록했다. 문화에 자연스레 녹아든 결과다.
 
이민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삼성이 과거에는 감성보다는 품질, 성능 등을 강조하는 '이성 마케팅'을 펼쳐왔다면 최근 스포츠 스폰서십 등을 통해 전개하는 마케팅은 소비자에게 열정을 불러 일으키는 '감성 마케팅'에 해당한다"며 "삼성의 브랜드 전략이 과거에 비해 감성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것은 코카콜라처럼 100년간 지속되는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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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민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