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해운업계..정부, 손놓고 눈치만
입력 : 2014-02-12 20:17:01 수정 : 2014-02-12 20:21:01
[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최근 수년간 지속된 해운업 침체로 국내 대부분의 선사들이 극심한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해졌다는 평가다.
 
정부가 지난해 7월 해운, 조선, 건설 등 취약업종 지원을 위해 P-CBO를 도입하고 각종 지원 방안을 발표했지만 신청 요건이 너무 높은 탓에 정작 지원받는 곳은 소수에 불과한 실정. 게다가 지원책 대부분이 여전히 세부 실행 방안이 정해지지 않아 허울뿐이라는 지적이다.
 
해운업계가 기대했던 P-CBO의 경우 해운업 특성을 무시한 높은 자격요건으로 정작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선사는 손가락에 꼽힐 정도다. 정부가 손을 놓는 사이 해운사들의 자금흐름은 한층 악화돼 자산매각을 통해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 정책과 현실 간 괴리는 수치에서 드러난다. 지난해 7월 금융위원회가 ‘회사채시장 정상화 방안’의 일환으로 P-CBO 6.4조원을 비롯해 총 7조6800억원 규모의 지원 계획을 발표했지만 같은 해 중견·중소선사들이 지원 받은 금액은 단 600억원에 불과하다.
 
정부 발표 이후 30여개 선사들이 앞다퉈 자금 지원을 신청했지만 부채비율, 차입금 등 신청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흥아해운, 동방, 도리코, 우현쉬핑, 천경해운 등 그나마 경영실적이 괜찮은 5개 선사들만 지원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현행 정부가 운영하는 '시장안정 P-CBO'의 세부기준을 보면 신용등급은 BB- 이상 부채비율은 650% 이하, 매출규모가 차입금 규모보다 클 것 등의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해 7월8일 P-CBO 발행 등 회사채 시장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News1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해운업의 특수성과 극심한 자금난에 처한 현실을 무시한 기준이라고 지적한다.
 
선박 1~2척을 운용하는 중소 선사의 경우 배 1척 가격이 연간 매출과 맞먹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이 경우 사업 확장을 위해 선박을 구입할 경우 부채 비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일반 제조업 설비와 달리 선박 가격이 워낙 고가이다 보니 선박금융을 통해 차입금을 들여오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부채비율이 급증하는 것.
 
부채비율이 높다보니 신용등급도 하락하게 되고, 결국 신청기준을 맞출 수 없어 서류검토 단계에서 탈락하는 사례가 늘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또 대형 선사들이 고대했던 영구채 발행도 사실상 무산된 상태다.
 
영구채는 자본으로 인정돼, 유동성을 확보하면서 부채비율은 낮출 수 있어 한진해운 등 대형 선사들로서 안성맞춤의 정책이란 기대감이 높았지만 채권은행들의 반대로 논의가 전면 중단됐다.
 
상황이 이렇자 업계에서는 국내 해운업이 고사 직전에 처했다는 우려가 끊이질 않고 있다. 그나마 기대했던 정부 지원정책마저 현실과 동떨어진 채 진행되면서 더 이상 기댈 곳도 없다는 푸념이다.
 
상황은 극도로 어렵다.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 국내 1, 2위 선사들이 고강도의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고, 3위인 팬오션은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등 온전한 선사가 남아있질 않다.  
 
특히 대형 선사들의 경우 채권단의 요구에 따라 경영정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알짜 사업부를 매각하고 있어 향후 업황이 개선될 경우 회복세가 더딜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필수자산을 팔면서 글로벌 선사들과의 경쟁력 격차는 더 커졌다.
 
이 같은 사례는 지난 1998년 외환위기(IMF) 때 이미 한 차례 경험한 바 있다.
 
당시 한진해운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컨테이너선 20여척을 그리스 선주에 세일즈앤리스백(Sales & leaseback) 방식으로 매각했다.
 
현대상선도 현대그룹 구조조정 당시 자동차운반선 사업을 해외에 매각한 바 있다. 자동차운반사업의 경우 일본, 노르웨이, 한국 3국이 과점 체제를 형성하고 있고, 진입장벽이 높아 알짜사업으로 꼽힌다.
 
이번에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알짜사업으로 꼽히는 벌크 전용선 사업과 LNG 사업 부문을 매각했다. 업계에서는 이런 식으로 위기가 올 때마다 수익이 나는 사업을 매각할 경우 국내를 대표하는 국적선사들의 규모와 위상이 떨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지속된 해운업 침체로 국내 대부분 선사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요구되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자료)
 
이와 함께 업계에서는 정부가 LTV 보증상품을 조기에 개발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LTV는 Loan To Value ratio의 약자로 담보인정비율을 의미한다.
 
선사들은 선박을 구입할 때 해당 선박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데 조선업 경기가 어려워 선가가 하락할 경우 담보비율을 초과하면 해당 금융권에서는 추가 담보를 요구하게 된다. 이 또한 선사들이 고스란히 부담해야 해 해운업 회복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8월 선박의 담보가치를 보증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지금까지 세부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보통 담보가치 평가는 1년에 한 번 하는데 매년 2월 금융권과 선사 간 협의가, 3월부터는 초과분에 대한 정산이 시작된다. 당장 다음달부터 선사들은 추가 비용이 지출될 수 있는 상황이다.
 
올 초 기준 한진해운, 현대상선, SK해운 등 국내 선사들의 LTV 부족액은 약 5억1700만달러로, 이들 모두 유동성 위기에 직면해 추가 담보 여력이 없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선박 담보가치를 보증할 수 있는 상품 개발 및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취약업종으로 지정한 조선, 건설, 해운 중 조선, 건설은 일자리 창출 효과가 높아 지역경제 활성화 등 겉으로 드러나는 효과가 크지만 해운업은 그렇지 못해 소외받는 면이 있는 것 같다”며 “해운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지원정책과 조속한 실행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 최승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