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에서 감동으로..한국영화의 진화
신파와 고발에서 깊고 담담하게..절제의 미학
입력 : 2014-03-30 15:41:43 수정 : 2014-03-30 16:35:49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10대들의 자살, 여학생에 대한 성폭행 등 대중적 분노를 일으킬 만한 사건들은 신문 사회면에서 종종 보이는 소재다. 이러한 소재가 최근 한국영화에도 고스란히 담기고 있다.
 
영화 '도가니'의 경우 한 사건을 통해 고발하는 방식으로 공분을 샀다면, 최근에는 끔찍한 사건 이후 주변사람들의 삶을 드라마 형식으로 그려내며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첫 번째 주자가 지난해 개봉한 '소원'이었다면, 최근 '우아한 거짓말', '한공주', '방황하는 칼날' 등도 같은 맥락에서 작품을 전개한다. 
 
그래서인지 좀 더 담백하게, 그러면서도 깊이 있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신파로 만들 수 있는 소재를 최대한 차갑게 풀어내 영화의 작품성이 높다는 평가다. 핵심은 절제에 있고, 이는 미학이 돼 작품성을 끌어 올린다.
 
◇'우아한 거짓말' 포스터 (사진제공=무비꼴라주)
 
◇'우아한 거짓말', 딸의 자살 이후 희망을 찾으려는 가족
 
'우아한 거짓말'은 학교 폭력으로 인해 자살한 둘째 딸 천지(김향기 분)의 가족 이야기가 주된 포인트다. 언니 만지(고아성 분)와 엄마 현숙(김희애 분)의 이야기를 통해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영화는 천지의 죽음의 이유를 세세히 설명하기 보다는 천지가 죽은 뒤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밝고 활기차게 살아가려는 만지와 현숙을 그린다. 그 속에서 갑작스럽게 터져나오는 슬픔을 감추지는 않지만, 최대한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을 드러내려 한다.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나오면 슬프면서도 한 켠으로는 따뜻한 마음이 든다. 울리지 않으려는 모습이 더 눈물샘을 자극하며, 안타까운 소재의 영화를 보고도 불편함이 없다.
 
이한 감독은 "이 영화를 끝까지 가지고 가는 힘은 절제다. 의도적으로 울리면 관객들이 더 울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냥 느끼면서 감정을 받아야 관객들도 공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공주' 포스터 (사진제공=무비꼴라쥬)
 
◇'한공주', 상처 받은 여고생을 차가운 시선으로
 
'우아한 거짓말'이 따뜻한 감성을 가지고 영화를 끌어간다면, '한공주'는 차갑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한공주'는 학창시절 40여명의 남학생들로부터 잔혹한 성폭행을 당한 한 여고생이 끝까지 웃으면서 살기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이름 답지 않은 한공주라는 한 여학생의 끔찍한 사건 이후를 담담히 담는다. 아픈 상처를 지닌 한공주 역에는 연기파 배우로 꼽히는 천우희가 맡았다.
 
가족에게 버림받고, 세상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한공주가 어떻게든 현실을 감내하고 살아보려는 때로는 차가운 시선으로, 때로는 따뜻한 감성으로 담아낸다. 새로운 환경에서 주위의 친구들과 사람들을 통해 행복을 얻으려는 한공주의 발버둥치는 모습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연출을 맡은 이수진 감독은 "극단적인 상황에 있지만 포기하지 않는 모습, 소녀를 둘러싼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큰 주제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방황하는 칼날' 포스터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방황하는 칼날', 딸을 잃은 아버지의 복수심
 
두 영화가 여성들을 전면으로 내세운 반면 '방황하는 칼날'은 정재영이 겁탈을 당하다 목숨을 잃은 딸의 아버지를 연기한다. 전반적으로 영화가 어둡고 무겁다. 비운한 아버지의 감정이 스크린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된다.
 
'방황하는 칼날'은 엄마를 잃고 아버지와만 사는 한 딸이 장난삼아 강간을 일삼는 남학생들로부터 약물 때문에 목숨을 잃으면서 시작한다. 가해자를 알게 된 아버지 상현이 가해자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을 담았다.
 
조금은 미련해 보이는 듯 가해자들을 찾아 떠나는 상현의 모습에서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성적으로 전달하면서도, 자신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심각한 지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 10대들의 현 모습을 냉소적으로 그린다.
 
여기에 이러한 10대를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나쁜 어른들의 모습을 그리며 사회에 일침을 던지기도 한다.
 
이정호 감독은 "(청소년 성범죄가) 뉴스에 나와도 놀라지도 않는 상황이 돼 버렸다. 이 사회의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뜻인데, 영화와 같은 것들이 계속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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