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 욕망과 할인 욕망의 접점..현금영수증 '사각지대'
'할인 유혹'에 현금영수증 발급 포기하는 소비자 여전
입력 : 2014-05-15 13:55:28 수정 : 2014-05-15 13:59:41
[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현금영수증 제도가 보편화되고 있지만 소득탈루를 위해 현금영수증 발급을 꺼리는 사업자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사업자들이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는 조건으로 현금할인을 제시하고,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물품을 구입하거나 서비스를 제공받고 싶은 소비자들이 이 유혹에 쉽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사진=국세청)
 
◇ "현금영수증? 돈 더 내라"..뻔뻔한 사업자들 여전
 
15일 국세청에 따르면 현금영수증 발급액은 제도 도입 첫해인 2005년에 18조6000억원 수준에서 2012년에는 82조4000억원으로 약 4.4배가 증가했다.
 
민간최종소비지출에서 신용카드 사용액과 현금영수증 발급액이 차지하는 비중도 2005년 47%에서 2012년 89%로 급증했다. 2011년 이후 신용카드사용액 증가세가 둔화된 상황임을 감안하면 현금영수증을 발급받는 현금소비지출이 크게 늘어난 셈이다.
 
그러나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싼 가격을 원하는 소비자의 심리를 활용한 사업자들의 검은 유혹이 여전히 먹혀들고 있기때문이다.
 
현금영수증 의무발행 대상이 늘어나는 등 현금영수증 미발행에 대한 규제는 강화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정착되지 않은 모습이다.
 
실제로 지난달 차량용 블랙박스를 구입한 A씨(서울 구로동)는 40만원짜리 제품을 36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는 사업자의 제안에 현금영수증 발급을 요구하지 않았다.
 
경기도 분당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B씨는 눈과 코 성형수술을 받으러 온 고객에게 현금결제를 할 경우 650만원의 수술비용을 500만원으로 150만원 할인받을 수 있다고 제시했고, 고객 역시 흔쾌히 동의했다. 물론 현금영수증을 발급받지 않는 조건이었다.
 
지난달 아파트 리모델링을 맡긴 C씨(경기 고양시)도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는 조건으로 10%의 할인을 받았다.
 
C씨의 경우 현금영수증을 발급받아서 연말정산 소득공제를 받는 것이 좋을지 현금영수증을 포기하고 현금할인을 받는 것이 좋을지 고민했지만 "현금영수증을 끊어달라면 끊어주겠다. 대신 할인은 안된다"는 사업자의 당당한(?) 제안에 오히려 손쉽게 넘어갔다.
 
정부는 성형외과 등 16개 전문직종과 9개 병·의원업종, 일반교습학원, 예술학원, 골프장, 장례식장, 예식장, 부동산중개, 일반유흥주점, 무도유흥주점, 산후조리원 등 34개 업종을 현금영수증 의무발행업종으로 정하고 있다.
 
여기에 C씨가 거래한 리모델링 건설업자를 포함한 실내건축 및 건축마무리 공사업, 시계 및 귀금속 소매, 피부미용업, 기타 미용관련 서비스업, 결혼사진 및 비디오 촬영업, 맞선주선 및 결혼상담업, 의류임대업, 포장이사 운송업, 관광숙박업, 운전학원 등도 지난해 10월부터 현금영수증 의무발행업종에 추가했다.
 
B씨, C씨의 사례 모두 현금으로 결제를 했다면 현금영수증을 주고 받는 것이 법적으로 의무화 돼 있지만 쌍방간에 합의하에 탈법과 탈세가 자행된 것이다.
 
의무발행사업자는 30만원 이상의 현금거래금액에 대해서는 소비자가 요청하지 않아도 반드시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야 하지만 소비자가 신고하지 않는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국세청이 이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국세청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탈세업체의 할인 유혹에 넘어가 현금영수증을 발행하지 않게 된 경우 과세당국이 이를 파악하기는 어렵다"면서 "현금영수증 발급이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이자 의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할인'보다 '신고' 택하는 소비자 늘어야 변화
 
소비자들이 생각보다 쉽게 현금영수증을 포기하는데는 할인이라는 미끼를 이용한 사업자의 겁없는 요구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당장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 소비자 입장을 악용해서 울며겨자먹기로 할인혜택을 선택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현금영수증제도와 보완책을 살펴보면 소비자는 분명히 사업자보다 우위에 있다.
 
현금영수증 의무발행 사업자는 현금영수증을 발행하지 않는 경우 세금과 별도로 거래금액의 50%를 과태료를 부담해야 하며, 소비자는 이를 신고할 경우 미발급액의 20%의 포상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 신고포상금은 건당 최대 300만원, 연간 최대 1500만원에 이른다.
 
의무발행사업자가 아닌 일반업종도 소비자가 현금영수증을 요구하면 발급해줘야 하고 발급을 하지 않은 경우 5%의 가산세를 물게 된다. 일반업종에 대한 현금영수증 미발급 신고시에도 신고포상금은 건당 50만원, 연간 200만원까지 지급된다.
 
현금영수증을 발급받지 않고 현금할인의 유혹에 넘어갔다고 하더라도 추후 국세청에 신고하면 사업자를 처벌하거나 신고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현금영수증 발급에 따른 소득공제한도도 올해부터 20%에서 30%로 늘어났다.
 
소비자가 당당하게 현금영수증을 요구하거나 발급받을 수 있는 환경은 어느정도 마련돼 있는 셈.
 
(자료=국세청)
실제로 현금영수증 미발급에 대해 적극적으로 행동한 소비자들에게 지급된 포상금도 적지 않다.
 
국세청이 집계한 현금영수증 미발급 신고포상금 지급액은 2011년 4억9200만원, 2012년 4억4500만원이고, 지난해도 상반기에만 2억7900만원의 포상금이 지급됐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사업자의 탈세를 용인하고 당장의 할인을 받을 것인지 소득공제혜택도 받고 부당한 요구에 대한 응징도 할 것인지 소비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면서도 "정부는 소비자가 현금할인에 대한 유혹에서 보다 더 자유로울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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