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공단50년)첨단 고층빌딩 숲 사이서 만나는 '노동의 역사'
2천년대 들어 IT기반 벤처타운 변모… 골목 구석구석 50년 역사는 여전
입력 : 2015-08-05 16:07:00 수정 : 2015-08-05 16:07:00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전경.(사진/서울 구로구청)
 
[뉴스토마토 남궁민관 기자]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걸어나오니 이내 유리로 덮힌 현대식 빌딩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G밸리'로 더 유명한 이곳은 바로 서울디지털단지, 옛 구로공단이다.
 
1964년 처음 조성돼 '한국 산업화의 전진기지' 역할을 톡톡히 치뤄낸 구로공단은 이후 '노동운동의 산지', '민주화의 성지'에 이어 지금의 '지식산업의 메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별명을 갖게 됐다.
 
지난 2000년 구로공단에서 서울디지털단지로 이름을 바꾸고 정부 주도 아래 정보통신산업(ICT) 중심의 벤처타운으로 변신을 시도하면서 지금의 구로공단은 현대식 고층 빌딩들과 반듯한 도로로 깔끔한 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상전벽해라 할 만큼 빠른 변화지만 직접 걸어본 서울디지털단지의 곳곳에는 반 백년 역사를 반증하듯 옛 구로공단의 노동의 역사가이 여전히 새겨져 있었다.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가산디지털단지역까지 1, 2, 3단지를 차례로 걸어서 이동해 보았다.
 
처음으로 발길을 멈춘 곳은 1차 단지 내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위치한 키콕스벤처센터 앞 한 여인상이다. 얼핏보면 단순한 조형물로 여기고 지나갈 법 하지만 구로공단의 상징이자 아픔이기도 한 여성 근로자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 근로여인상'이다.
 
1974년 구로공단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설립됐지만 2000년대 들어 방치됐다가 최근 보수공사를 거쳐 지난해 9월 다시 세워졌다. 지난 2012년 새로운 신축 건물이 들어서면서 당시 원래 터에서 밀려나 화단 한쪽 구석에 방치됐을 당시 여인상을 받치던 디딤돌도 눈에 띄었다.
 
키콕스벤처센터 앞 화단에 남겨진 '근로여인상'의 디딤돌. 비즈니스 센터 신축으로 이 화단에 방치됐던 이 여인상은 지난해 보수공사를 거쳐 센터 앞 공원에 다시 세워졌다.(사진/남궁민관기자)
 
 
옛 삼경복장 터에 들어선 코오롱빌란트와 옛 대협 터에 자리잡은 대륭포스트타워.(사진/남궁민관기자)
 
수출의 여인상을 지나 디지털로를 따라 걸으니 신도시가 따로없다. 하지만 이 현대식 건물들의 터 하나하나에도 노동자들의 아픔이 담겨 있다. 현재 코오롱싸이언스밸리는 옛 싸니전기, 코오롱빌란트 1차는 옛 삼경복장, 대륭포스트타워 1차는 옛 대협, 에이스테크노타워 2차는 옛 동남전기 등 각 터마다 노동운동의 역사가 자리잡고 있다.
 
1970년대 당시 구로공단에는 재봉틀 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공장 굴뚝의 희뿌연 연기가 하늘의 구름보다 많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노동조건 또한 열악했다.
 
결국 1985년 앞선 회사들을 비롯해 구로공단의 주요 섬유업체들을 중심으로 구로동맹파업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당시 이같은 구로동맹파업의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이 대우어패럴 노조위원장의 구속이었다.
 
지금은 2차 단지 초입 현대프리미엄 아울렛이 자리잡은 곳이 바로 대우어패럴의 터다. 디지털로를 따라 걷다가 구로고가차도를 지나 마주한 가리봉 로데오거리는 현재 패션의 거리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평일 퇴근 시간 전임에도 거리 곳곳에는 쇼핑을 즐기러 온 사람들로 붐빌 정도.
 
때문에 사거리를 중심으로 마리오아울렛(옛 효성물산 터), W몰(옛 서울통상 등 대형 쇼핑아울렛이 즐비한 쇼핑거리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다만 1차 단지에 비해 2차 단지는 이같은 화려한 현대식 건물 사이로 옛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한 건물들도 눈에 띄었다.
 
1985년 구로동맹파업의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던 대우어패럴의 터에 지금은 현대아울렛이 자리잡고 있다. 현재 가리봉 로데오거리는 패션의 중심지로 떠올랐다.(사진/남궁민관기자)
 
 
현대아울렛 옆에 위치한 SG세계물산은 예전 대우어패럴의 기숙사를 물류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 왼편의 낡은 흰색 건물이 예전 기숙사다.(사진/남궁민관기자)
 
현대프리미엄 아울렛 바로 옆에 위치한 SG세계물산의 물류창고는, 예전에는 600여명의 노동자들을 감시·관리하기 위해 지어진 대우어패럴의 기숙사였다. 예전에는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애환이 가득했을 이 건물에는 이제 물류 박스를 바삐 나르는 다른 노동자들의 생동감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외에도 지금은 의류 상가로 변신한 만승아울렛은 예전 구로협동조합의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국내 최초의 아파트형 공장이기도 한 이 건물에는 세월의 풍파를 견디고 지금도 다양한 의류업체들이 소규모로 모여 활발히 장사를 하고 있다.
 
가산디지털단지역을 끼고 조성된 3단지는 앞서 1, 2단지에 비해 예전 구로공단의 굴뚝공장들을 더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교학사와 태평세라믹스, 양지사 등은 새로 생겨난 아파트형 공장 사이에서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이날 찾은 한국음향의 굴뚝공장은 아쉽게도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공장은 아파트형 공장 건립을 위해 지난 6월 철거됐으며 현장에는 빈 공터와 함께 구로공단의 아련한 역사를 견딘 문패만이 남아있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가산디지털단지역 맞은편에 위치한 구로공단노동자생활체험관. 안으로 발길을 옮기자마자 쪽방 체험관에 눈길이 머문다. 이른바 '벌집' 또는 '닭장집'이라 불렸던 쪽방에는 당시 고단한 삶을 이어갔던 여성 노동자들의 생활을 그대로 재현했다.
 
센터에서 만난 박성명 한국녹색도시협회 부회장은 "구로공단은 한국의 산업을 일으켜 세운 산실인만큼 내국인뿐만 아니라 중국 관광객들에게 관광명소로 꼽힌다"며 "지역 요소요소에 스토리텔링을 적용하고 이를 연결한 관광코스로, 지역전체를 기념관화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파트형 공장 신축으로 예전 한국음향의 굴뚝공장이 지난 6월 철거됐다. 현장에는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한국음향의 문패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사진/남궁민관기자)
 
 
구로공단노동자생활체험관에 마련된 쪽방 체험관에는 1970~80년대 구로공단 노동자들이 거주했던 '벌집', '닭장집' 등을 재현해놓았다.(사진/남궁민관기자)
 
 
남궁민관 기자 kunggi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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