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로부터 외면받는 노동법…고용불안만 커졌다
노동법 개정안에 사회분열 심화…"정부와 기업 입맛대로"
입력 : 2016-01-20 07:00:00 수정 : 2016-01-20 07:00:00
신입사원과 여직원 등 상대적 약자가 포함된 대규모 구조조정. 회사가 '경영상 불가피하다'고 말하면 한창 일할 나이에도 제대로 이의제기 한 번 못하고 짐을 싸야 하는 현실. 노동자들이 기업 구조조정과 그에 따른 인력 감축 앞에서 토로하는 불만들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됐다는 우리나라 노동법은 되레 고용불안만 부추기고 있다. 이런 와중에 박근혜 정부가 최근 4개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노동법 개정안을 추진하면서 야권과 시민사회, 노동계와의 갈등만 깊어졌다. '쉬운 해고'에 방점을 찍으면서 노동자들을 상시 고용불안으로 내몰고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다 세대갈등까지 더해지면서 사회의 분열은 심화됐다. 노동계로부터 지지받지 못하는 노동법의 현실이다.
 
이에 대해 노동법 전문가인 이광택 국민대 법학과 명예교수는 노동법 개정사를 설명하며 "노동자보다 노동자를 부릴 정부와 기업의 입맛에 맞게 개정돼 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노동법은 1953년 입법됐지만 5·16 군사정변을 계기로 실효성을 상실했다"며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국가안보, 수출증진 등 국가 성장전략에 맞춰 법 정비가 이뤄졌기 때문에 노동자를 위한 입법이라기보다 정부와 기업이 노동자를 다스리기 위한 입법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특히 정부가 지나치게 많은 세부 법령을 만들어 노동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방향으로 노동법이 개정돼 왔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기업의 입법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는 방식으로 새 규정과 부칙을 만들어 왔다"며 "가령 노동조합법의 경우 독일은 본문이 14개 조항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조항이 106개나 된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또 노동자의 지위와 신분에 대한 규정도 문제 삼았다. 이 교수에 따르면 국제노동기구(ILO) 협약과 유럽연합(EU) 노동법 규정에서는 노동자의 지위와 신분에 아무 규정이 없다. 해고자는 물론 실직자, 은퇴자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를 '사용자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받는 사람'으로 규정, 노동자의 활동영역 자체를 제한하고 있다.
 
이런 탓에 노조법 조항이 단 14개인 독일은 노조 조직률이 19%를 넘고 단체협약 적용률 역시 70%지만 100개가 넘는 조항을 가진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10%, 단체협약 적용도 10%에 머물고 있다. 또 189개에 이르는 ILO 협약 가운데 우리나라가 비준한 것은 28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73개에 턱없이 부족하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노동법 개정 역사는 시대가 바뀔 때마다 국가의 개입이 자꾸 강화됐다"며 "노사관계에 대한 국가의 지나친 개입은 이론적으로 옳지도 않을 뿐 아니라 선진국 사례를 보면 결국은 실패한다는 교훈도 충분히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배경에서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법 개정안은 기본적으로 노동자에게 불리한 노동법에 정부가 또 다시 손을 들이대는 것이어서 많은 우려를 자아낸다. 정부는 기간제 계약기간 연장(2년→4년), 노조의 동의 없이 취업규칙 변경 및 임금피크제 도입 가능, 저성과자 해고기준 마련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더해 새누리당은 '55세 이상 고령자'와 '전문직 종사 고소득자'의 파견을 확대하고 뿌리산업에서도 파견을 허용하는 내용의 파견법까지 발의했다. 고용노동부 역시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완화 지침을 도입하기로 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의 노동법 개정안은 청년은 비정규직으로 평생을 보내고, 중년은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하는 것"이라며 "근로자의 고용불안뿐 아니라 국가 뿌리산업에서 기술 축적과 향상을 어렵게 해 결국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각에서는 열악한 국내외 경제상황을 고려, 기업의 경영상 불가피함을 인정하더라도 해고가 '쉬워지는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는 중재안을 내놓고 있다. 이정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는 "유럽의 경우 노조가 기업 경영에 참여해 해고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해고 인원과 사유에 대한 합의를 이루려고 노력한다"며 "우리나라도 경영 위기만 언급할 게 아니라 노동자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왼쪽부터)와 원유철 원내대표,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청년과 함께하는 노동개혁 연내 입법호소 헌혈대회’를 열고 노동법 처리를 촉구했다. 사진/뉴시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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