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개성공단 중단 한달, 평화로운 한반도 됐나?"
개성에 '모든 것' 두고 온 기업체 사장 "90% 보상이라니…유린당하는 느낌"
'영이너폼' 이종덕 대표이사가 기업인 방북 허용을 요구하는 이유
입력 : 2016-03-13 11:48:51 수정 : 2016-03-13 14:09:51
개성공단 중단 한달이 지났다. 12개 입주기업들이 만든 개성공단상회협동조합의 부이사장이자 속옷생산업체 ‘영이너폼’의 대표인 이종덕씨를 12일 경기도 광명시 본사에서 만났다.
 
분노와 원망과 한숨이 섞인 인터뷰였다. 이 대표는 지금이라도 기업인들의 방북을 허용해 청산절차라도 제대로 밟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개성공단에 지은 공장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말하면서는 목이 메어 인터뷰를 잠시 중단하기도 했다.
 
개성공단 중단 전 영이너폼 개성 공장 내부 모습. 북측 노동자들이 속옷 프레스 공정에서 작업하고 있다. 사진/이종덕
 
-개성공단 중단 후 1개월이 지났다. 어떻게 지냈나
 
가슴에 쇳덩어리를 담고 산다. 어이없고 참기 힘든 시간이다. 술을 안 먹으면 잠을 못 이룬다. 맨 주먹으로 쉰여덟까지 이 길만 걸어오며 쌓은 것을 하루아침에 날렸으니 잠이 올 수 있겠나. 조선시대에도 개인재산을 이렇게 몰수하지는 않았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 우리가 항변하면 종북이니 좌빨이니 이상하게 얘기하고, ‘나라가 이런데 자기들 생각만 한다. 이 기회에 한몫 챙기려는 거냐’는 말을 한다. 정부에 의해 평생 일궈놓은 것을 잃었는데 얘기 한 마디 안 하면 바보 아닌가. 민주주의이자 자본주의 국가인데, 자기 집(개성 공장)에 들어갈 수도 없고 소유권을 주장해도 안 된다면 누가 가만히 있겠나. 참담하다.
 
-중단 발표 당시 상황은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 사흘 후인 2월10일 통일부가 개성공단기업협회 임원들을 남북회담본부로 불렀다. 20여명이 갔는데 회의장에 ‘통일부 장관 홍용표’ 명패만 있었다. 뭔가 불안했다. 그 옆에 빈자리에는 누가 앉는 걸까. 2시 회의 시작 5분 전 명패가 들어왔다. 기재부, 노동부, 금융위 등의 차관급 인사들이었다. ‘아, 끝났구나’ 싶었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개성공단을 전면중단하기로 했고, 오후 5시 발표한다고 했다. 우리는 ‘장관님, 그건 정말 안 됩니다. 직을 걸고라도 막아 주세요’ 호소했다. 그러나 홍 장관은 ‘이미 결정이 났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다면 제품과 원부자재를 가져올 수 있게 2주만 시간을 주세요. 피해액을 줄여야 할 것 아닙니까’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홍 장관은 대답을 하지 못했고, 우리하고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통일부는 회사별로 인력 1명과 차량 1대만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 설 연휴라 우리 개성 공장에는 남측 인원이 1명도 없어서 몇 명 더 올라갈 수 있게 해 달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겨우 1명 올라가서 얼마나 물건을 가져올 수 있겠나. 중요한 금형이라도 빼오려고 했는데 북측 경비원이 자재와 물건만 가져갈 수 있다고 해서 못 가져왔다. 제품도 다 싣지 못했다. 통일부 장관은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조기에 경영정상화를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였다. 말미를 전혀 안 주고 1명만 올라가게 했으니 피해는 극대화됐다.
 
-정부는 ‘남측 인원의 신변안전을 최우선 고려했다’고 했지만, 남측 인원 180명이 공단에 있는 시간에 전면중단을 발표했기 때문에 ‘신변안전을 최우선 고려했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개성공단에서 8~9년 동안 있어 보니 북한 사람들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 전면중단을 발표해도 원래 계획대로 직원들을 다 올려 보냈다면 북한은 절대 추방하지 못 했을 것이다. 확신한다. 전면중단을 발표해도 차량과 사람들이 그대로 올라오면 북한 사람들도 ‘이게 뭔가’하며 하루 이틀 고민했을 것이다. 그 사이 우리가 많은 것을 가지고 내려오면 1000억이 넘는 피해는 줄일 수 있었다. 그것마저 못한 것이다. 정부의 중단 발표 당시 현지에 있던 180명 중 1명이라도 북한이 잡아 놨나? 북한은 그런 짓 안 한다. 500명이든 800명이든 있다면 추방은 시켜도 억류하지는 않는다.
 
-누가 가장 원망스럽나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이후로 입주기업인들은 늘 시달려 왔다. 때로는 우리 정부에, 때로는 북한에 시달려 왔다. 그래도 폐쇄는 안 될 것으로 믿었다. 그만한 기술력에 그만한 임금을 받는 인력은 세계 어디에도 없으니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원망스러운 쪽은 대한민국 정부다. 우리가 북한보다 잘 살고 북한을 리딩하는 입장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우리 기업인들의 수족을 자르는 일이나 하는 정부가 가장 원망스럽다.
 
-북한이 지난 10일 남측 자산을 청산한다고 발표했다. 어떤 의미인가
 
1·2월 급여 총140억원과 퇴직금을 북측에 줘야 한다. 일을 시켰으니 당연히 줘야 하는 돈이다. 2월20일까지의 토지사용료 약5억3000만원도 줘야 했다. 대신 못 가져온 제품이나 원부자재는 가져와야 한다. 북한은 몰수를 하겠다고 하지 않고 ‘청산하겠다’고 했다. 청산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상대가 있어야 한다. 그 점을 곱씹어봐야 한다. 이제라도 기업인들의 방북을 허용해야 한다. 기업의 피해를 줄이려면, 북한에 줄 돈은 주고 제품과 원부자재를 가져오는 것이 더 낫다.
 
우리가 채권을 청산해 주면 북한도 함부로 못 한다. ‘공장 건들지 마’라고 우리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임금과 토지사용료는 작은 돈이다.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고 경영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정부의 말이 진심이라면, 방북을 허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북한 마음대로 공장을 처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여전히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기업인들이 방북할 경우 북한이 우리의 신변에 어떤 위해를 가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2013년 잠정중단 됐을 때도 개성공단관리위원회 사람들이 임금을 계산하는 문제 때문에 늦게 내려왔을 뿐 인질은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대형 경협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북한이 왜 기업인들을 묶겠나. 그래서 뭘 얻겠나. 기업인들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내가 만약 지난달 개성에 갔다면 나는 안 내려오려고 했다. 내가 만든 공장에서…(목이 메어 인터뷰 중단) 개성공단은 나에게 특별한 곳이다. 첫 직장이었던 BYC에서 남들 7~8년 근무해야 하는 과장을 1년 몇개월만에 했다. 1년에 하루만 쉬는 해가 있을 정도로 진짜 열심히 했다. 3~8월에는 하루 2~3시간 자며 일했다. 지금껏 골프채 한번 안 잡아봤다. 그렇게 열심히 해서 내 회사를 만들었고, 개성 공장은 2008년 5월부터 가동했다. 공장 1~3층을 내가 직접 설계해 공사를 빨리 끝낸 덕에 우리에게 필요한 수만큼의 북한 노동자들을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었다. 개인재산이었던 광명 본사 빌딩도 팔아 만든 것이 개성 공장이었다.
 
-영이너폼 피해액과 향후 비상 경영계획은
 
고정자산·유동자산 합해서 71억3000만원의 피해를 입었다. 소재 분야는 한국에도 작은 공장이 2곳 있고 캄보디아에 큰 공장이 있어서 어느 정도 해결했다. 그래도 마진율을 떨어지지만. 그런데 봉제는 수습이 잘 안 된다. 중국 쪽으로 길을 만들고 있다. 수익률이 가장 높은 특허상품은 해결할 방법이 없다. 미싱을 안 쓰고 원단을 붙이는 기술 같은 특허가 있는데 기계를 새로 다 만들어야 한다. 북한 노동자들에게 기술을 다 전수시켰는데 그렇게 축적된 것이 사라져 버렸다. 한국에서는 인건비도 안 맞고, 개성만큼의 인원을 모을 수도 없다.
 
-정부의 입주기업 보상 계획에 대한 평가는
 
입주기업 전체 피해액은 총 8152억원이다. 통일부 장관은 2월11일 ‘실질적인 피해보상을 해주겠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16일 국회연설에서 ‘투자자산의 90%까지 보상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보상은 1원도 못 받았다. 정부는 저금리로 돈을 빌려준다고는 한다. 그런데 우리가 무슨 잘못이 있어 채무자가 돼야 하나. 그 좋은 공장을 다 놓쳤는데 나중에 그 빚을 어떻게 갚나. 국민들은 우리가 90%까지 보상을 받는 줄 안다. 내 친구들도 ‘마음 아프고 힘들겠지만 정부에서 90% 보상해 준다니까 이제 편히 살아’라고 한다. 90% 보상? 그렇게 받으면 나가서 춤을 추겠다. 1원도 못 받았다. 유린당하는 느낌이다. 도마 위에서 난도질당하는 느낌이다. 정부는 우리에게 근사한 옷을 입혀준 것처럼 말하지만, 나는 발가벗고 대중 앞에 서 있는 느낌이다.
 
당장 살아야 하니 저리 대출은 일부 받고 있지만 2013년 잠정중단 때 대출 받은 것 빼고 대출해 주고, 또 ‘감가상각을 한 후 고정자산의 40% 내에서’ 대출해 준다. 1.5% 저리로 대출받으면 좋겠다고 하겠지만 기존 대출을 공제하고 고정자산의 40% 내로만 대출해주니 얼마 안 된다. 중소기업진흥공단 대출도 기업의 회생가능성이나 상환능력을 엄격히 보고 해준다.
 
-12개 입주기업들이 출자금을 내서 만든 개성공단상회협동조합의 부이사장도 맡고 있다.
 
제품에 대한 반응이 좋아서 단골 고객들이 생기고 있었다. 경기 안 좋아도 장사가 잘 됐다.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해왔다. 작년 10월 이산가족상봉 때는 개성공단기업협회와 함께 3400만원의 물건을 이산가족들에게 기증했다. 양말, 속옷, 스카프, 점퍼 등을 넣은 선물세트였다.
 
안국점에서 시작한 가게가 9개로 늘었는데 그 중 3곳은 인테리어만 완성해 놓고 공단이 중단되는 바람에 결국 열지 못했다. 대리점 사장님들은 임대료와 인테리어비용만 쓰고 제품 하나 걸어보지도 못한 채 피해를 봤다. 내가 게으르게 일했더라면 점포를 이렇게 많이 늘리지 않았을 텐데, 대리점 사장님들 볼 면목이 없다. 다 내가 추진한 일이라서 도의적으로 책임이 무겁다. 인터넷쇼핑몰 준비도 다 끝났지만 제품을 올려야 할지 고민이다. 매장도 2~3개월밖에 버틸 수 없을 것이다. 갈수록 제품이 없어지니 매장이 살겠나. 단골들도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 회사는 감원을 생각하고 있다. 개성공단 상회도 알바는 이미 줄였고, 곧 정직원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변에서 다 죽어가는 것들을 보며 내가 이렇게 살아 있다. 힘들어도 봄을 기다리면 의욕이 생기는데, 죽어가는 것들만 보면서 정리해야 하는 입장이다.
 
이종덕 영이너폼 대표 사진/뉴스토마토
-16일 개성공단 평화대행진 취지는
 
입주기업인들은 생존을 원한다. 정부가 90% 보상해준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1원도 받지 못한 실상을 알리고 싶다. 언론도 이제 우리 목소리를 안 들어준다. 앙상하게 죽어가는 처지를 말하고 싶다. 임진각~통일대교 왕복 4km를 행진한다. 기업주와 종업원들, 가족들 등 2000명 정도 나올 것 같다.
 
-정부나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공단 중단 한달 동안 교복파동도 있었고, 부산 신발업체들에도 어려움이 있었고, 서해안 어민들은 어망이 부족해 애로를 겪기도 했다. 속옷 생산처가 줄어드니 가격은 올라간다. 개성공단 중단의 여파가 우리 일상에 은밀히, 깊숙이 미치는 것이다. 전면중단 한달, 한반도가 평화로워지고 국민 안전이 좋아졌는지 묻고 싶다. 입주기업들은 온몸으로 통일을 준비해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통일비용을 줄여주는 역할도 해왔다. 개성공단 폐쇄보다는 가동이 안보와 경제에 훨씬 도움이 된다. 개성공단 폐쇄가 아니라 2공단, 3공단을 더 열어야 한다. 그것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는 길이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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