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정부로부터 버림받은 개성공단
입력 : 2016-05-09 16:40:12 수정 : 2016-05-09 16:47:12
[뉴스토마토 이지은기자] 정부의 갑작스러운 철수 결정으로 개성공단이 문을 닫은 지 90일이 지났다. 그 사이 123개 공단 입주기업 중 상당수는 부도 위기에 직면했고, 임직원 2000여명 중 수백명이 이미 일자리를 잃었다. 영세한 규모의 업체는 권고사직 해고를 진행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협력업체들에도 파장이 가해졌으며, 일부는 파산으로 행방불명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개성공단기업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2월 입주기업 123개사 중 120곳의 피해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고정자산 5688억원, 유동자산 2464억원 등 총 8152억원의 손실이 집계됐다. 향후 영업손실과 원청업체로부터의 계약파기 배상 등에 대한 손실을 빼고 계산을 해도 8000억원 이상의 피해를 봤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정부는 '보상'보다는 '지원' 입장을 밝히며 개성공단 문제를 등한시하고 있다.
 
비대위는 정부의 외면 속에 9일 개성공단 전면중단 조치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정부가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함으로써 북한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했던 우리 국민의 재산권을 정부 스스로 침해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위헌소송에는 108개의 개성공단 입주기업, 37개의 개성공단 영업기업, 18개의 개성공단 협력업체 등 총 163개의 기업이 참여했다.
 
개성공단은 남북이 합작으로 추진하던 경제특구로, 한반도의 유일한 협력창구이자 통일의 길이였다. 남측의 자본과 기술에 북측의 토지와 인력이 결합해 남북 교류협력의 새로운 장을 마련한 일대 분기점이었다. 평화의 상징이자 남북 동반성장의 모델이었으며, 서로를 향한 총구를 돌리는 안전핀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갑작스러운 철수 결정으로 이 모든 것들이 송두리째 날아갔다. 더욱이 정부는 지난 2013년 8월14일 남북이 맺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남측 인원의 안정적 통행, 북측 근로자의 정상 출근, 기업재산의 보호 등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개성공단정상화합의서'도 무시했다. 이를 믿은 기업들만 거리로 내몰렸다.
 
이제는 고인이 된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끌고 경협의 길을 열고, 역대 정부들이 담보했던 개성공단 운영을 현 정부가 깊은 전략적 고민 없이 '전면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에 많은 기업인들이 비분강개하고 있다. 정치적 논리가 어렵게 쌓아온 남북 협력의 기틀을 날려버린 것은 물론, 우리 기업들의 신뢰마저 허물어버렸다. 이제 누가 정부의 말을 믿고 어려운 길을 걷겠는가.
 
이제 헌법재판소가 판단해야 한다. 헌재가 엄정한 판단을 통해 우리 기업들이 국가를 신뢰할 수 있도록, 대한민국의 법치주의가 건재하다는 것을 재확인해 줄 때다. 더불어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개성공단 전면중단의 절차적 문제점을 인식하고 기업들의 침해된 재산권에 대해 정확한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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