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미국 최근 10년 집단소송 1724건…한국의 191배
'남소' 부작용, 수임 '3년간 5건' 제한으로 해결
입력 : 2016-06-07 14:00:00 수정 : 2016-06-07 14:12:31
[뉴스토마토 신지하기자] 증권관련 집단소송이 시행된 2005년 초기, 재계는 집단소송제가 한국 경제에 '약이 아닌 독'이 될 것이라며 잔뜩 긴장했다. 기업들이 소액주주들의 줄소송에 시달리다 결국 상장폐지 수순을 밟을 공산이 크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시행 11년 동안 제기된 집단소송은 총 9건에 불과했다. 집단소송제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미국의 상황은 어떨까.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증권관련 집단소송이 매우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민사소송 컨설팅회사인 코너스톤 리서치와 스탠포드 법과대학의 공동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집단소송 제기 건수는 189건으로 전년보다 11% 증가하며 1997~2014년 평균 건수인 188건을 넘어섰다.
 
2011년 188건을 기록한 이후 2012년 151건으로 다소 움츠러들었던 집단소송은 2013년 166건, 2014년 170건으로 증가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2006~2015년까지 제기된 집단소송 건수는 1724건이다. 집단소송제를 시행한 2005년 이후 총 9건이 제기된 한국보다 191배 높다.
 
현재 미국 내 집단소송은 인수·합병(M&A)과 중국 기업들의 주식시장 우회상장 수법인 '역합병(Reverse Merger)' 관련 소송이 주를 이룬다. 과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신용위기 관련 소송은 2011년 이후 자취를 감췄다.
 
집단소송 조정금액은 지난해 30억3400만달러로 전년(10억6900만달러)보다 3배가까이 상승했다. 조정 건수도 80건으로 전년 63건에 비해 17건(26.9%) 증가했다. 집단소송 제기에 따른 기업의 시가총액 손실액을 보여주는 DDL(Disclosure Dollar Loss Index) 지수는 1060억달러로 전년보다 85% 올랐지만 1997~2014년 평균 1210억달러를 밑돈 것으로 나타났다. 
 
2006~2015년까지 미국 내 증권관련 집단소송·조정 건수와 조정금액 및 DDL 지수. <자료: Cornerstone Research & Stanford Law School>
 
미국이 법률상에 집단소송을 처음으로 규정한 때는 지난 1938년이다. 하지만 판결의 효력이 소송에 참가하지 않은 자에게까지는 미치지 않았다. 이후 수차례 개정을 통해 소수의 대표당사자가 소송을 수행해 판결의 효력이 집단구성원 전체에게 미치는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집단소송을 규율하는 연방규칙 제23조에 따르면, 집단소송을 진행하려면 다수성, 공통성, 전형성, 대표당사자의 적절성 등 4가지 성립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또 개별 소송이 제기돼 서로 다른 판결이 나올 위험이 있을 경우엔 집단소송을 인가할 수 있게끔 하는 소송유지요건도 규정돼 있다.
 
법원의 집단소송 인가결정에 원고와 피고가 항고할 수 있다는 규정도 있다. 집단소송의 조정 또는 철회를 할 경우 공정성과 합리성을 담보하기 위해 법원의 청문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변호사보수에 대해 법원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하지만 미국의 집단소송도 남소라는 부작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일부 변호사들이 대표당사자와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집단소송을 기획하는 악용 사례가 점차 증가한 것이다. 조정금액을 더 많이 인정받으려고 연방법원보다는 주(州)법원에 소를 제기하는 꼼수도 늘었다. 집단소송에 제소된 기업은 주가 하락과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게 됐고 기업이 부담해야 할 배상액 규모는 매년 급증했다.
 
집단소송의 남소 방지를 위해 미국 정부는 1995년 사적증권소송개혁법을 제정해 3년에 5회 이상 대표당사자 된 자는 원칙적으로 소송에 참여할 수 없게 했다. 또 2005년 집단소송공정화법을 제정해 '청구액이 500만달러를 넘고, 원고 중 어느 1인이라도 피고거주지와 다른 주에 거주하면 연방법원이 관할권을 갖도록' 하는 등 연방관할권을 확대했다.
 
증권관련 집단소송제를 비롯해 모든 분야에 걸친 집단소송제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경향이다. 현재 22개 나라가 집단소송제를 도입했다. 그 중 한국을 포함한 16개국이 미국식 집단소송제도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의 경제대국인 독일도 미국식 집단소송제를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집단소송 요건이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엄격히 규정돼 있고 변호사들의 유인도 상대적으로 크지 않아 집단 피해자들의 효율적인 구제 효과가 미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독일은 지난 2005년 11월 KapMuG(자본 투자자 표본절차법)을 제정해 증권관련 집단소송을 2020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달리 독일은 판결의 효력을 소송 당사자에 참가 신청한 피해자들로 한정한다. 조정으로 소를 종결짓기 위해선 최소 70% 이상 당사자들의 동의도 필요하다. 대표당사자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법원에 조정안을 제출해 법원이 이를 허가하면 소송이 마무리되는 미국식 집단소송과 다르다. 또 미국은 성공보수 약정을 인정하지만 독일은 특수한 상황 외에는 성공보수 약정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신지하 기자 sinnim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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