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올림픽은 과학이 아니다
입력 : 2016-08-15 14:15:13 수정 : 2016-08-15 14:15:13
1984년 LA 올림픽에서 최대의 적은 상대 선수가 아니라 폭염이었다. 마라톤은 특히 그랬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막히는 날씨에 42.195km를 쉬지 않고 달리는 일은 선수들에게 그야말로 ‘사투(死鬪)’였다. 선수도, 관중도 좋은 기록을 기대하지 않았다. 첫 올림픽 공식종목으로 채택된 여자마라톤을 주목하는 사람도 적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조안 베이노트라는 선수가 2시간 24분 52초의 뛰어난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한 것이다. 비공인 올림픽 기록을 갈아치운 데다 세계 신기록과의 차이는 2분여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우승 비결에 주목했다. 수능 만점자의 비결이 ‘교과서에 충실했기 때문’이듯 조안의 비결도 마찬가지였다. 훈련 또 훈련. 그래도 남들과 다른 게 하나 숨어 있었으니 바로 속옷이었다. 
 
그녀가 착용한 스포츠 브래지어는 형상기억합금 소재로 제작됐다. 형상기억합금은 심한 운동에도 가슴의 모양과 위치를 유지하고 힘을 분산시켜준다. 1969년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한 아폴로 11호 안테나 소재에 처음 적용됐다. 이후 1986년 한 여성속옷 전문회사에서 일반인을 위한 형상기억합금 브래지어를 내놨다. 
 
올림픽은 점차 과학이 되고 있다. 마라토너의 속옷부터 육상선수의 신발, 수영선수의 수영복, 양궁선수의 활까지 그야말로 과학기술의 집합체다. 첨단과학은 장비뿐 아니라 훈련방법에서도 진가를 발휘한다. 최근에는 환경요소까지 고려한 이른바 ‘컨디셔닝(conditioning)’ 기법이 주목받고 있다. 인공 빛을 이용해 시차를 극복하고 침 속의 효소로 스트레스를 분석한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총출동하는 올림픽에서는 경기 당일 컨디션이 중요하다. 한국과 브라질은 12시간 차이가 나 낮과 밤이 완전히 뒤바뀐 상황에서 경기해야 한다. 한국 대표팀은 이번 올림픽에서 광선치료 방법을 도입했다고 한다. 몸 상태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 분석이다. 침 속의 아밀레이스 효소를 측정해 시차나 압박감으로 인한 스트레스 정도를 파악하고 훈련 강도를 조정한다. 선수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뇌파 변화를 읽어내는 일명 ‘뉴로피드백’ 시스템을 동원하기도 한다. 
 
빅 데이터도 널리 활용한다. 선수들의 움직임과 체력, 속도, 힘 등을 수치로 환산하고 저장하는 빅 데이터는 이제 경기력 향상의 필수요소다. 종목별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데이터를 확보하고 분석한다. 축적된 자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데이터의 힘은 커진다. 실제 배드민턴의 경우 약 2,000경기의 데이터를 모아 선수별 서브의 낙하지점과 공격 패턴 등을 분석한다.  
 
고성능 카메라도 훈련의 필수 장비다. 유도의 업어치기나 체조의 회전, 펜싱의 찌르기, 역도의 들어올리기 등을 고성능 카메라에 담아 정밀하게 분석한다. 1초당 무려 7만장을 찍을 수 있는 특수 카메라는 선수의 몸놀림은 물론 시속 200㎞로 날아가는 배드민턴 셔틀콕의 움직임까지 정확하게 포착한다. 
 
하지만 이런 스포츠과학은 선수들의 기량을 금메달에 가깝게 끌어올릴 뿐이다. 최종적으로 메달 색깔을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비과학’의 영역이다. 펜싱 에페의 박상영이 10대14라는 점수 차를 극복하고 기적적으로 금메달을 차지한 것은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양궁의 기보배가 3점을 쏘는 어이없는 실수를 하고도 이후 세발 연속으로 10점을 쏘며 동메달을 차지한 순간도 마찬가지다. 사격에서 6점이라는 결정적 실수를 하고도 끝내 경기를 뒤집은 진종오의 금메달은 또 어떤가. 
 
리우 올림픽 성화 최종주자는 전 브라질 마라톤 대표 반델레이 데 리마였다. 그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37km 지점까지 선두로 달리다가 도로에 난입한 관중의 방해로 동메달에 그친 ‘불운의 주인공’이다. 당시 레이스를 포기하지 않고 환하게 웃으며 골인한 그에게 사람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메달 색깔이 ‘과학’에 의존할수록 사람들은 ‘비과학’의 영역에 환호한다. 여전히 뛰고 달리고, 넘어지고 일어서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금메달이 100% 과학기술의 영역이 되는 순간, 올림픽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올림픽은 과학이 아니다.  
 
김형석 과학칼럼니스트·SCOOP 대표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 이해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