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촛불혁명과 한국의 침묵
입력 : 2019-10-30 07:00:00 수정 : 2019-10-30 07:00:00
최병호 정치부 기자
"한국 정부는 침묵을 멈추고 국제사회에 홍콩 민주화에 대한 지지입장을 표명하라."
 
지난 26~27일 서울 종로와 용산역 일대에선 홍콩시위를 지지하기 위한 한국 시민들의 집회가 연이어 열렸다. 홍콩시위 지지선언을 한 10여명의 시민들은 홍콩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탄압하는 중국 공산당과 홍콩 당국을 규탄했다. 그리고 지지선언 끝엔 홍콩사태에 침묵하는 한국 정부에 관한 지적을 잊지 않았다. 
 
물론 홍콩은 어디까지나 중국의 영토에 속한 특별행정구이므로 홍콩사태에 관해 정부 차원에서 의견을 밝히는 건 자칫 내정간섭이 될 우려도 있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홍콩사태에 가장 적극적인 건 미국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홍콩 인권법 제정 등을 통해 홍콩사태를 건드리고 있다. 그런데 이는 미중 무역분쟁의 와중에 협상테이블의 카드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짙다는 분석이다.
 
한국 정부가 홍콩사태에 침묵해선 안 된다는 건 미국처럼 중국과 노골적 대립각을 세우라는 의도가 아니다. 다만 이건 정치적 문제 이전에 양심의 문제다. 한국은 아시아,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가장 끈질기고 격렬하게 민주주의를 이룩했다. 4·19 혁명을 시작으로 79년 부마 민주항쟁, 5·18 광주 민주화운동, 87년 민주항쟁을 거쳤고 2016년엔 촛불혁명으로 부패한 권력을 시민 손으로 끌어내린 경험도 있다.
 
문재인정부가 촛불정부를 자임한 건 유구한 민주주의 역사를 계승하겠다는 의지다. 국제사회에서 경제는 물론 문화와 인권분야에도 선진국의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이 담겼다.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테러리즘 등 글로벌 이슈에 관한 기여를 늘리고 우리 국민의 국제기구 진출 확대 및 정부의 지원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건 이런 맥락이다. 그래놓고선 가장 첨예한 인권 문제인 홍콩사태엔 모르쇠다.
 
홍콩 당국의 범죄인 인도법 제정 추진에 반대해 지난 6월9일부터 본격화된 홍콩시위는 어느새 넉 달을 훌쩍 넘겼다. 중국 공산당과 홍콩 당국은 시민에 대한 강경 진압수위를 점점 더 높여가고 있다. 시위대에 대한 홍콩 경찰의 성폭력 폭로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16일 저녁에는 시위 지도자인 지미 샴이 거리를 걷던 중 괴한 4~5명으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해 병원에 실려 갔다. 홍콩은 이제 2019년판 광주가 돼 버렸다. 
 
지난 9월 홍콩을 방문해 시위 지도자인 웡윅모를 만났다. 당시 그는 "5·18과 87년 항쟁 등으로 민주화를 이룬 한국이 홍콩의 심각성을 알아달라"고 청했다. 지미 샴은 "홍콩 시민들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귀감으로 삼는다"며 "한국이 홍콩의 보호망이 되어달라"고 했다. 완곡히 표현됐지만 이들은 촛불혁명을 자랑하던 한국을 향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민주화를 투쟁으로 쟁취한 한국이 어떻게 홍콩시위에 침묵할 수 있습니까."
 
최병호 정치부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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