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만큼 더 내라’. 소위 말하는 부유세가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이른바 ‘가진 사람’들에게 더 많은 책임이 부과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공평한 말이지만 찬반 여론이 뜨거운 쟁점 사항 중 하나인데요. 그렇다면 부유세란 정확히 무엇이고,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요? 토마토Pick은 부유세를 정리해봤습니다.
부유세란?
부유세란 일정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사람에게 비례적으로, 혹은 누진적으로 부과하는 세금을 뜻합니다. 스웨덴에서 최초로 시작했으며 현재는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위스 등 일부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 일정 금액 이상의 부동산을 소유한 이에게 부과하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도 부유세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의 경제발전과 함께 빈부격차, 양극화가 고질적 문제로 자리잡았고, 이에 따라 부유세의 필요성이 대두됐습니다.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도 이를 계속해서 논의하고 있는 중입니다.
양극화 해소 정책이지만
찬반 논란 뜨거운 이유
상술했듯 부유세는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입니다. 이 때문에 복지국가로 유명한 북유럽에서 먼저 시작됐는데요. 정작 스웨덴이나 핀란드 등에서는 부유세를 줄줄이 폐지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한데요. 부자들이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는 자본 유출이 빈번해졌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스웨덴의 글로벌 가구업체 이케아는 부유세를 피하기 위해 해외에 재단을 설립해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부유세를 수금함으로써 얻는 이득보다 유출 피해가 더 크다고 판단한 스웨덴은 2008년 부유세를 폐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불평등 임계점 왔다’
글로벌 부유세 대두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유세 논의 자체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남미에서 좌파 대부로 꼽히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이탈리아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초고액 자산가들이 정당한 세금을 내야 할 때가 이미 지났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따라 브라질이 의장국을 맡는 7월 G20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게 바로 단순한 부유세를 넘어선 ‘글로벌 부유세’인데요. 세계의 초(超)부자들에게서 과세를 하자는 것입니다. 전세계 최고 갑부 3000명에게서 국제적 최저세 도입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며, 이를 통해 많게는 2500억 달러(약 347조원)의 추가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초 부자 대상으로 조정된 최소 유효 과세 표준 계획 : 가브리엘 쥐크만 파리경제학교 교수가 작성한 보고서로, 세계 억만장자 3000명의 그들의 총 재산에 국제적 최저세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초부자들이 자산의 0.3%만을 세금으로 내는 등 극단적인 부의 불평등이 이어지고 있으니, 10억 달러(약 1조3907억원) 이상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매년 재산의 2%에 해당하는 세금을 내라는 것입니다. 아울러 글로벌 보유세가 제정된 후 세금 회피를 위해 자산을 글로벌 보유세 비참여국으로 옮기는 시도를 막기 위한 출국세(Exit tax) 강화, 글로벌 최저 법인세 등의 대안도 제시됐습니다.
사회적 요구 높은 부유세
3명 중 2명은 ‘찬성’
슈퍼리치들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 부유세에는 찬반이 엇갈리는데요. 의장국인 브라질과 남아프리카 공화국, 스페인,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은 이 제안에 찬성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에 반대 의사를 표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다만 사회적인 요구는 높은데요. 인류 당면 현안 해결을 위한 국제기구 로마클럽이 주도하는 지속가능 성장 프로젝트 '어스포올'(Earth4All)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는 지난달 24일 G20 18개국 설문조사에서 17개국(중국 제외)에서 부유세 찬성 의견이 3분의 2를 넘었다고 밝혔습니다. G20 17개국 국민의 68%가 경제와 생활방식의 주요 변화를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부유층에 부유세를 부과하자는 내용에 찬성한 것입니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Oxfam)에 따르면 2023년 억만장자들의 자산가치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20년에 비해 3조3000억달러(약 4532조원)로 34% 늘어난 반면, 빈곤율은 유지되는 등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추세입니다. 작금의 기후위기, 빈곤 등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겪는 난관들의 요인 중 하나로 경제적 불평등이 꼽히는 가운데 부유세가 대두된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지불’
슈퍼리치들도 부유세 긍정
독특한 점은 슈퍼리치 당사자들의 반응입니다. 글로벌 보유세 발표 전이던 지난 1월 전세계 억만장자 250명이 부유세 부과를 자청한 것입니다. 디즈니의 상속자 애비게일 디즈니, 록펠러 가문의 발레리 록펠러, 할리우드의 배우 사이먼 페그 등 17개국 갑부들은 세계경제포럼(WEF) 참석차 스위스 다보스에 모인 정치지도자들에게 ‘자랑스러운 지불’(Proud to pay)이라는 제목의 서한을 보냈습니다. 이들은 “불평등이 임계점에 이르렀고, 경제·사회·생태적 위험이 날로 심각해지는 만큼 지금 행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모든 이들이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닌데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정부가 부유세를 추진할 당시 조세회피 계획을 불법으로 만드는 데 동의한다면서도 “실제로 과도한 정부 지출의 부담을 떠맡게 될 사람은 급여세를 피할 수 없는 중산층 이하 임금근로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도 지난달 누진세에는 동의하면서도 “억만장자들에게 글로벌 과세를 해 어떻게든 전 세계적으로 재분배한다는 국제협약엔 서명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한국도 찬성 여론 높은데…
국내 부유세 도입 여부는
우리나라에서도 부유세 요구 목소리는 높습니다. 상술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우리나라의 부유세 지지율은 71%로 17개국 평균보다 3%p 높았습니다. 사실 G20은 지난 2021년 거대 다국적기업에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을 15%로 합의하는 등 과세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윤석열 정부는 최근 현행 최고 50%인 상속세 세율을 최고 30% 수준까지 대폭 인하하고 종부세를 폐지하는 등의 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OECD 회원국의 상속세율 평균은 15%로, 우리나라 상속세가 OECD 회원국 평균보다 압도적으로 높다는 게 이유입니다. 아울러 재계와 정계는 부자 감세를 통해 늘어날 투자 및 고용, 소비의 진작을 기대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른바 낙수효과인데요. 다만 나라 곳간을 어떻게 채울 것이냐는 우려도 있습니다. 나아가 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서민이 아닌 고소득층만 수혜를 받는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실정입니다. 여론조사 결과와 비교하자면 정부의 방침은 민의와 정반대의 행보를 걷고 있는 셈인데요. 감세를 통한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겠지만, 세수 부족 우려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보이질 않습니다. 현시점에서의 감세가 올바른 결정일지, 세계의 추세와 맞는지, 그리고 민의에 어긋나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