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민주주의)①전 세계 뒤덮은 극단주의…주범은 '팬덤정치'
문자폭탄 넘어 폭력행위로 격화…진영논리에 민심·당심 괴리
입력 : 2024-08-02 16:58:50 수정 : 2024-08-02 19:00:37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닌달 1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대선 유세 도중 암살시도 총격을 당한 직후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연단을 내려오면서 오른쪽 귀에 피를 흘리는 상태로 주먹을 흔들며 "싸우자"고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극단주의 정치가 전 세계를 뒤덮으면서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졌습니다. 정치적 다양성의 기반이 무너지고 극단화된 것은 무엇보다 진영 논리에 기댄 '팬덤 정치'의 영향이 큽니다. 내 편이 아니면 혐오와 배제에 나서는 '팬덤 정치'는 상대에 대한 비방용 문자 폭탄을 넘어 폭력 행위로까지 격화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팬덤 정치'는 여야를 휩쓸고 있습니다. 국회의 주요 현안이 각 당의 강성 지지층 중심으로 결정되고 당심과 민심이 괴리되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대립과 분열의 정치가 반복됐습니다. 국민의 다양한 의견이 국회에 녹아들지 않으면서 대의제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트럼프 총격부터 이재명 피습까지…민주주의 위협하는 '극단주의'
 
각 국에서 정치인 피습 사태가 거듭되고 있는 것은 전 세계에 만연한 극단주의 정치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란 평가가 나옵니다. 2년 전 일본에선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참의원 선거 지원 유세 도중 총격을 받아 숨졌고, 최근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유세 중 피격에 목숨을 잃을 뻔 해 큰 충격을 줬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주요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한국에서도 드물지 않습니다. 지난 1월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가 부산에서 흉기 습격을 받았고, 20여일 뒤엔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중학생이 휘두른 돌에 머리를 10여 차례 가격당했습니다. 앞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당대표 시절의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흉기 피습을 당한 바 있습니다.
 
피습을 당한 정치인들의 공통점은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고, 소속 정당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팬덤'이 어느 정도 있는 정치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반대 진영 지지자들로부터는 강한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연달아 정치인에 대한 피습 사태가 벌어진 것은 한국의 정치 양극화가 위험 수위에 도달해 있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팬덤 정치는 지지자들 간의 폭력 사태로도 번졌습니다. 지난달 15일 충남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힘의 충청권 합동연설회에서 당시 당권주자인 한동훈 후보와 원희룡 후보 지지자들 간 몸싸움이 벌어진 게 대표적 예입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민주화되면서 사라졌던 정치 테러가 다시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온라인의 발전으로 증오와 분노의 정치가 좀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측면이 있고, 사회적 양극화가 진행되는 데 따르는 문제도 있다"며 "여기에 정치인들이 자꾸 (지지자들의) 분노를 자극하면서 이런 사고의 빈도수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달 4일 국회에서 열린 제415회 국회(임시회) 제5차 본회의에서 '채해병 특검법' 관련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중단하는 표결을 진행하려 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왼쪽 위는 표결에 참여하는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이 줄을 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치 양극화 부른 '경제 불평등'…'대의 민주주의' 한계 
 
지지자들이 편을 나눠 싸우는 정치적 양극화는 경제적 격차의 심화, 즉 '불평등 확대'가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부동산과 청년 일자리 등의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정치적 양극화를 불러왔다는 겁니다. 실제 미국의 경우, 경제적 양극화로 인한 갈등과 이민자 정책을 둘러싼 대립이 격해지면서 정치인들의 상대에 대한 독기 품은 발언들이 지지자들의 분노를 키우기도 했습니다.
 
특정 세력 지지자들의 압박성 여론몰이에 대의 민주주의가 훼손될 위기에 놓였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대의제의 기능 중 하나는 국민이 뽑은 대표자(국회의원)들이 협의 과정을 거쳐 각 진영 지지자들 사이의 완충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인데, 특정 진영의 의중에만 치우쳐 의사결정을 하다 보니 국민 대표성에 왜곡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특정 세력이) 강성 팬덤의 영향을 받으면 대의 정치를 망치고 민심보다는 그들의 패권적인 정서를 대변할 수밖에 없다"며 "팬덤 정치는 민주주의의 독약"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팬덤 정치로 인해 야당에선 법안 공포가 안 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무리하게 강행 처리하는데 이에 대해 대통령은 무조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고 야당은 다시 밀어붙이는 것이 반복된다"며 "팬덤 정치가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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