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의 K-국방)독립전쟁 답사에서 느낀 3가지 안타까움
'시민모임 독립'과 중국 동북3성을 찾다
김좌진 기념관, 청소년 연수 발걸음 뚝
하얼빈 731 기념관, 놀라운 중국인 관람 열기
뤼순 감옥, "한국군 독립전쟁 계승 빈약" 아쉬움
입력 : 2024-08-06 06:00:00 수정 : 2024-08-06 06:00:00
'시민모임 독립' 독립전쟁 사적지 답사단원들이 안중근 의사가 의거 뒤 재판을 받았던 중국 랴오닝성 다롄 뤼순 법원 앞에 모였다. (사진='시민모임 답사단')
 
'시민모임 독립'이란 단체가 주관하는 중국 동북3성 독립전쟁 사적지 답사에 7월 21일부터 27일까지 일행 31명과 함께 참가했습니다. 옌벤 조선족자치주 윤동주 시인 생가와 백두산, 하얼빈 731부대 기념관, 압록강 북안의 신흥무관학교 터,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다롄 뤼순 감옥에 이르기까지 2000km를 다녔습니다.
 
여정 초반부에 흑룡강성 해림시에 있는 김좌진 장군 기념관과 한중 우의공원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2005년에 한국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가 건립한 비영리 기념시설입니다. 한중 두 나라가 협의해, 해림시가 터를 제공했고 한국 정부가 건축비를 지원했다고 합니다.
 
큼직한 기념관 2층과 3층에는 일제 침략 만행과 청산리 전투의 영웅 김좌진 장군 활동을 비롯한 항일투쟁 역사를 전시했습니다. 1층에는 김좌진 장군 손녀인 김을동 전 국회의원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는 사진을 걸었습니다. 한국과 중국이 일본 제국주의 침략 공동 피해자로서 역사를 기억하려고 힘을 합쳐 나가던 시절의 분위기를 이 사진에서 느낄 수 있었죠.
 
기념관 1층에 객실과 식당, 교육실 등 한 번에 100명을 수용하는 연수 시설이 있는데요. 객실에는 청소년이 단체로 수련하기에 편리하도록 2층 침대를 가지런히 놓았습니다.
 
이 기념관이 문을 열자 많은 한국 청소년이 입소해 역사의 교훈을 공부한다고 북적였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발걸음이 줄더니 요즘에는 코로나와 무관하게 청소년 연수가 뚝 끊어졌다고 합니다. 건물을 관리하는 중국인 중년 여성은 "한국 아이들이 오면 밥과 뒷바라지를 해주느라 몸이 힘들었다"며 "그래도 다시 와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연수가 끊어진 이유는 예산 때문일 겁니다. 한국 국가보훈부가 지원하는 해외 독립운동 사적지 답사 예산이 중요한 마중물인데요. 2024년의 경우 이 예산 항목이 전액 미국 하와이 일대 답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합니다. 이승만을 띄우려고 생각했겠죠. 정부가 기조를 잡으면 기업도 후원할 때 눈치를 봅니다.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731부대 기념관 입구. (사진=필자 제공)
 
하얼빈에서는 731부대 기념관을 방문했습니다. 731부대는 세균전을 담당한 일본군 부대인데요. 중국인과 한국인, 러시아인을 잡아다가 생체 실험이라는 반인도적 전쟁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악명이 높죠. 현장에 가보니 부대가 전용 철도와 전용 비행장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부대 규모가 엄청나다는 점은 미처 몰랐습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중국인 참관 열기가 높아서였습니다. 티셔츠를 맞춰 입은 중학생들은 학교에서 단체로 왔겠거니 짐작했습니다. 그밖에도 수많은 남녀노소 관람객이 단체 또는 개별로 입장하기 위해 기념관 입구에 길게 줄을 섰습니다. 우리 답사단은 노약자가 포함된 점을 인정받아 빨리 들어갔지만, 일반 관람객은 대개 1시간씩 기다렸습니다.
 
재중 교포 가이드한테 물어보니 731부대는 중국인한테 애국심을 교육하는 중요한 기지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학생과 공산당원한테 필수 코스임은 물론이고, 하얼빈을 찾는 중국인 일반 관광객들도 이곳을 빼놓지 않고 방문한다고 합니다.
 
한국도 천안에 독립기념관을 지어놓고 있습니다. 필자도 몇 차례 갔는데 방문객이 썩 많지 않습니다. 군대에서 휴가 장병한테 독립기념관을 가면 휴가 일수를 하루 연장해주는 인센티브를 시행하는데 효과가 작죠.
 
역사의 교훈을 잊으면 미래가 위험해지는 법인데요. 중국과 비교해 우리가 문제의식이 약해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중국인 관람객이 많이 모여 붐비는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731부대 기념관. (사진=필자 제공)
 
마지막 여정으로 다롄을 방문했습니다. 다롄에는 일본이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이기고 점령한 뒤 40년간 지배한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중 한 곳이 뤼순 감옥인데요. 안중근 거사를 중국 당국이 크게 높여 부각하는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안 의사가 갇혀 있던 독방과 교수형을 집행한 현장을 별도로 보존했고요. '위국헌신 군인본분' 글귀를 비롯해 안 의사가 남긴 붓글씨를 여러 점 전시했습니다. 국제열사 기념관이라는 별도 전시실에 안 의사와 신채호, 이회영 선생 세 분의 활동 기록도 모아 두었습니다.
 
중국 총리를 지낸 저우언라이(1898~1976)는 "청일전쟁 후 중국 한국 양국 국민의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 투쟁은 20세기 초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때부터 시작됐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1963년 '중한 역사관계에 관한 담화') 저우언라이는 청년 시절인 1919년 톈진에서 우리 3·1운동과 비슷하게 5·4운동을 벌일 때 '안중근 거사'를 주제로 한 연극 감독을 맡았습니다. 아내 덩잉차오는 남자 분장으로 안 의사 역을 했죠. 저우언라이는 안중근 의거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정확히 이해했죠. 동아시아 역사에서 한국 독립전쟁이 묵직한 위상을 갖고 있음을 다롄 감옥에서 실감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한국 국방부와 국군에서도 군인 본분을 보여준 큰 인물로 존중하고 있습니다. 안 의사는 대한의군 참모중장 자격으로, 개인적 테러가 아니라 전쟁 수행 차원에서 거사했고 일본 관헌한테 붙잡힌 뒤에도 전쟁포로 대우를 요구했죠.
 
문제는 안중근 의거를 계승한 독립군과 광복군 역사를, 한국 육군과 육사가 이어받지 않으려고 은근히 회피하는 점입니다. 육군과 육사는 공식 누리집에서 1946년 미 군정 시기 국방경비대와 국방경비사관학교를 조직 기원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독립군과 광복군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해군과 해사, 공군과 공사가 일제하 독립전쟁을 계승한다고 공식 누리집에 기록하는 것과 비교해도 이상한 일이죠. 육사가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김좌진 장군과 이회영 선생 흉상을 교내에서 이전하겠다고 해서 말썽이 빚어졌는데요. 역사 인식을 이상하게 하니 행동도 이상해지는 것 아닐까요? 뤼순 감옥에서 답답한 국내 상황이 떠올랐습니다.
 
옌벤~하얼빈~다롄 여정을 통해 선각자들의 고뇌 어린 발자취를 확인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국방과 외교, 보훈 정책 여러 면에서 독립정신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하는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필자 소개 / 박창식 / 언론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습니다. 한겨레신문 문화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습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위기관리와 소통, 말과 글로 행복해지는 기술 등을 주제로 글을 쓰고 강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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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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