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검찰' 정면 충돌…수사지휘권 운명 어디로
"민주적 통제 장치"vs"검찰 독립성 저해"
수사지휘권, 비검찰 출신 장관 3명만 행사
"개정안, 민주당 다수 국회 문턱 넘기 어려워"
새정부에선 '행사 자제'로 지휘권 '사문화'할 듯
입력 : 2022-03-23 06:00:00 수정 : 2022-03-23 06:00:00
[뉴스토마토 전보규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공약인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를 두고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김오수 검찰총장의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장치로서 필요하다는 입장과 중립성·독립성 보장을 위해 없애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리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도 양측의 목소리가 팽팽하다. 수사지휘권 폐지는 법 개정 사안이라 더불어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실현이 어려울 전망이다. 다만 새 정부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문화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폐지해야"vs"공정성 시비 심화"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검찰청은 법무부에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폐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최근 전달했다. 법무부 장관이 일반적인 지휘·감독권이나 인사권을 통해 검찰을 통제할 수 있는데 구체적인 사건에서 검찰총장을 지휘·감독하는 것은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취지다. 대검의 의견은 김 총장의 승인을 거쳤다.
 
반면 박 장관은 최근 수사지휘권 폐지 의견을 분명히 했다. 박 장관은 지난 14일 퇴근길 취재진을 만나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은 민주적 통제라는 관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수사지휘권 폐지는 조금 더 고민하고 대안을 연구·정착시킨 뒤 폐지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전에도 "수사지휘권을 없앤다면 검찰 수사 경과와 결과를 검증할 방법이 없고 공정성 시비가 더 심해질 것"이라며 "투명하고 공식적으로 검증받을 수 있는 제도이자 장치가 수사지휘권"이라고 강조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6일 오전 경기 과천시 법무부 청사로 출근을 하는 모습.(사진=뉴시스)
 
수사지휘권 역사 70여년…행사는 4차례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는 검찰청법 제8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조항은 검찰청법이 제정된 1949년부터 존재했다.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 사건과 관련해 검찰총장만 지휘하도록 한 것은 제한적인 권한 행사를 통해 일선 검사에 대한 외압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은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총 4차례만 발동됐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2005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강정구 동국대 교수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지휘한 게 첫 사례다.
 
이후 행사되지 않았다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5년만인 2020년 7월 윤석열 총장에게 '검언유착 의혹'에서 손을 떼라는 내용의 지휘권을 발동했다. 석 달 뒤에는 라임자산운용 로비 의혹과 총장 가족 의혹 사건의 수사 지휘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추 장관의 후임인 박 장관은 지난해 3월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과 관련해 김모씨의 모해위증 혐의 여부와 기소 가능성을 재심의하라고 네 번째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1월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이임식을 마친 뒤 청사를 떠나며 인사하는 모습.(사진=뉴시스)
 
"정치권력의 간섭"vs"공개됐을 뿐"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가 잦아지면서 검찰 수사의 중립성과 독립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사건처리가 정권의 입맛과 다르게 이뤄지면 언제든 법무부 장관이 개입할 수 있다는 신호란 것이다.
 
변호사 단체장을 지낸 법조계 관계자는 "법무부 장관 수사 지휘권은 정치 권력이 검찰에 간섭할 수 있는 근거여서 항상 문제가 됐다"며 "특히 이번 정권에서 남용돼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반대로 이번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이 비검찰 출신으로 채워져 공식적으로 이뤄졌을 뿐 수사 지휘가 없었던 것은 아니란 의견도 있다.
 
검사장을 지낸 한 변호사는 "검사 출신이 법무부 장관일 때는 문서 없이 됐던 일이 현 정권에서는 그렇지 못해 잡음이 나오는 것"이라며 "수사지휘권 폐지는 생각해볼 수 있지만 크게 중요하거나 급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전 정부까지는 검찰총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 출신이 법무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겨 검찰과 한 몸처럼 움직였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수사지휘권이 행사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법무부 장관은 모두 비검찰 출신이다.
 
검찰, 지난 40년간 법무부 장악 
 
역대 법무부 장관의 이력을 보면 25대까지는 검찰과 판사 등 비검찰 출신의 비중이 엇비슷하지만 26대부터는 검찰 출신이 압도적이다. 현 정권 법무부 장관을 빼면 총 39명 중 검찰과 관계없는 사람은 4명에 불과하다. 26대 장관의 임기가 시작된 1976년 12월부터 64대 김현웅 법무부 장관의 임기가 끝난 2016년 11월말까지 40년간 검찰이 법무부를 사실상 장악했던 셈이다.
 
윤 당선인이 수사지휘권 폐지 의지를 갖고 있지만 대통령에 취임하더라도 이른 시일 내에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 법 개정 사안인데 민주당이 172석을 차지하고 있어서 국회의 문턱을 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검찰 공화국'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는 가운데 수사지휘권 폐지에 대한 찬반이 팽팽해 여론의 힘을 빌리는 것도 여의치 않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까지)수사지휘권 행사를 하지 않으면 된다"면서 "수사지휘권 폐지와 예산권 등 문제를 독단적으로 하기보다 공론의 장에 붙여 신중하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수사지휘권 폐지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 때까지는 발동하지 않는 방식으로 실질적인 폐지 효과를 낼 것이란 관측이다.
 
전보규 기자 jbk880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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