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과·직접 배상 전제돼야"…강제징용 피해자의 '이유있는' 회의 불참
민관협의회 3차 이어 4차 회의도 불참…피해자 목소리 경청 취지 '유명무실'
피해자 측, '의견서 제출 우선 사과' 요구…전문가들 "의견 좁히기 쉽지 않다"
입력 : 2022-09-05 17:00:00 수정 : 2022-09-05 17:54:36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지난 1일 광주시의회 1층 시민소통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쓰비시중공업 자산 매각 재항고 사건에 대법원 의견서를 낸 외교부를 규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 배상 해법을 논의하는 민관협의회에 관련 피해자들이 3차에 이어 4차 회의에도 참석을 거부하며 보이콧을 이어갔다. 피해자 측의 연이은 불참으로 이번 사안과 관련한 여러 목소리를 경청하겠다는 정부의 협의회 운영 목적은 유명무실해졌다. 피해자들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 및 기업의 사과와 직접 배상을 요구하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관계 개선에만 중점을 두면서 정작 피해자 측의 요구는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강제징용 문제 관련 민관협의회 4차 회의가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조현동 외교부 1차관 주재로 진행됐지만 관련 피해자들은 불참했다. 앞서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 측의 의견을 경청해 이들이 납득할 만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7월4일 민관협의회를 출범시켰다.
 
정부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따라 압류된 일본 전범 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 여부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 일본 정부와의 외교적 협의를 통해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 만약 대법원이 기각 결정을 내린다면 피해자들이 압류된 미쓰비시 중공업의 한국 내 특허권 등을 매각해 현금화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는 상태가 된다. 이 경우 일본 정부는 한일관계의 근간인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이 무력화된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주장을 펴면서 이에 대한 대응 조치에 착수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한일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미쓰비시 중공업의 국내자산 매각 명령 재항고 사건에 대한 대법원 심리가 주심 김재형 대법관의 퇴임으로 중단된 상태다. 이에 따라 미쓰비시 중공업의 국내자산 현금화 절차는 기약 없이 미뤄졌다. 다만 피해자들이 모두 고령인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여유를 부릴 상황은 아니다. 이에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2일 광주를 찾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와 양금덕 할머니를 만나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했고, 정부도 민간협의회를 통해 신속한 방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피해자들의 의견 차이가 여전해 해결점 모색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피해자 측은 우선 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하고 있다'며 사실상 대법원에 현금화를 미뤄줄 것을 요청하는 의견서를 보낸 것에 대한 박진 장관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박 장관은 의견서에 대해 "민관협의회를 통해 의견을 경청·수렴했던 것과 한일 간 교섭을 진행해온 그동안의 외교 활동을 참고로 해서 작성해 법원에 보낸 것"이라며 철회하지 않겠다는 뜻을 고수했다.
 
그러자 피해자들은 '사실상 대법원 결정을 늦춰 달라는 요구 아니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피해자들의 권리구제와 명예회복 등을 지원하고 있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측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의견서 부분은 명확히 국가폭력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박 장관이)의견서 제출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피해자 의견을 청취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가 피해자들을 위해서 함께 목소리를 내주지 않느냐에 대한 피해자들의 말씀은 일관된다"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피해자 측의 불참 결정에도 불구하고 민관협의회를 계속 가동해 가급적 법원의 현금화 결정 이전에 강제동원 피해배상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해 피해자 측과 일본 측 모두를 설득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유력한 해법으로는 한국 정부가 피해자에게 먼저 배상금을 지급하고 추후 일본 기업이 참여한 기금 등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대위변제'가 거론되고 있다. 관건은 이 같은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에 대해 피해자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으냐의 여부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측 관계자는 "소송에 대한 배상금은 당연히 일본이 내야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중공업은 정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피해자들이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했었지만 사실은 일본 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가로 막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는 지점들이 있다"며 "그래서 정확하게 미쓰비시 중공업과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배상하라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2일 미쓰비시 중공업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와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가 대위변제를 추진한다고 해도 피해자 측에서 대법원에 대한 의견서 제출에 "국가폭력"이라고 주장하는 등 정부와 피해자 측의 의견 차이를 좁히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대위변제가 방법이 될 수 있는데 조건이 있다. 하나는 피해자 측이 동의를 하는 것이고, 또 피해자 측의 요구가 기업의 사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계속 했기 때문에 일본 측에서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두 가지 조건이 맞으면 방법이 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일본의 사과 가능성도 낮게 봤다. 사과를 한다고 해도 2015년 위안부 합의 당시 일본 정부의 사과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시 일본 정부의 형식상 사과가 포함되었지만, 군 위안부 제도가 성노예 제도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법적 책임 또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사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도 "인도적 차원에서의 사과는 수없이 해왔다. (일본에서)그것은 합법적인 행위였지만 고생을 시켰다는 수준"이라며 "그래서 그 수준 이상의 사과를 하지 않으려고 현재까지 해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불법적인 행위를 했다고 인정하면 일본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모두 불법이었다는 내용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법적 책임을 인정한 사과는)처음부터 일본의 사고방식에서 제외돼 있다"고 덧붙였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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