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잠비나이·ABTB·배드램…'록은 도끼다'
입력 : 2022-11-09 12:00:23 수정 : 2022-11-09 12:00:23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술대(국악에서 오른손에 끼워 줄을 퉁기는 연필 크기의 막대)로 타격하는 거문고의 헤비메탈적 변주, 중저음의 묵직한 기타리프와 이를 뚫고 화마처럼 쏟아지는 시원한 포효, 그러나 때론 투명하고 아름답게 귀에 확확 감기는 멜로디의 물결들...
 
이것은 이미지적 소비가 아니다. K팝과 아이돌 문화에 은근슬쩍 심볼처럼 놓여지는 이 시대의 전기기타 같은 처지가 아니다. ‘록은 죽지 않는다(Rock will never die)’는 동서고금 막론의 격언이 유효함을 말하는 방증이다. 제대로 된 록의 귀환이자 부활이다.
 
잠비나이, ABTB, 배드램이 한 주 간격으로 회심의 앨범을 낸다. 해마다한국대중음악상록 부문 후보를 두고 엎치락뒤치락하는 팀들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들 음악은 '도끼' 같은 것이다. 우리 주위의 얼은 바다, 메마른 감수성을 깨부수는. 세계 무대에 내놓아도 손색 없을 완성도의 세 앨범은 K팝 일변도인 우리 대중 음악계를 다시금 뒤틀게 보게 한다.
 
세 팀 모두 팬데믹 시기, 고립의 기간을 겪으며 차오른 이야기들을 반죽해냈다.
 
잠비나이. 사진=The Tell-Tale Heart
 
오는 11일 밴드 잠비나이는 새 EP 음반 '발현(發顯/apparition)'을 낸다. 제목 '발현'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 온 잠비나이가 밴드로서 정체성을 보다 명확히 다져낸 음반이다.
 
첫 곡이자 타이틀 곡 '저기 저 차가운 밑바닥에서 다시'부터 대번에 '잠비나이 사운드'임을 직감할 수 있다. 거문고와 해금, 기타가 헤비하게 뒤섞이는 음악적 경계의 재창조, 기존 퓨전국악의 어법과는 다른, 거친 노이즈의신음악은 여전히 이들이 '진행형 창작자'임을 되새기게 한다.
 
2019년 정규 3 '온다(ONDA)'의 호평, 2020년 한국 대중음악상 2관왕과 2020년 영국 Songlines Award '올해의 아시아 아티스트' 수상. 그러나 팬데믹으로 계획됐던 80회 이상의 월드투어가 차질을 빚으면서 지난 3년간 세계 유수 온라인 공연(SXSW Online, Tiny Desk (Home) Concert)과 음반 준비로 벼려온 이들이다.
 
팬데믹을 거치며 겪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위로와 공감의 연주 언어가 됐다. 위대한 실패 또는 미완의 성공에 대한 헌사를 담은 '내 날개가 잿더미로 변할 때까지', 고립과 충돌로 흔들리는 모두에게 희망과 위로를 건네는 마지막 트랙 '이토록 거대한 어둠 속 작은 촛불', 선우정아의 객원보컬이 투명한 바람결처럼 위무하는 '지워진 곳에서'.
 
빙하와 화산이 공존하는 음반 커버 또한 예사롭지 않다. 저마다 상승과 하강 국면이 상존하는 우리의 삶과 일 같다. 멤버들은 "저마다 삶의 무게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위로"라고 음반을 요약한다.
 
잠비나이 음반 '발현(發顯/apparition)'. 사진=The Tell-Tale Heart
 
'홍대 앞 어벤저스' ABTB 역시 지난 8일 세 번째 정규 앨범 ‘ⅲ’로 출사표를 던졌다.
 
2017년과 2021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음반과 최우수 록 노래 부문 수상, '전대미문 하드록 사운드를 해보자'던 이들의 결의는 한국 대중음악계의 도끼 같은 것이다.
 
조규현, 김바다, 배인혁 같은 록 보컬계 보석들의 흡수, 발랄하게 변주된 리프들이 돋보이는 신작은 이 팀의 전작들과 달리 신선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직선적 기타 리프와 쉴 새 없는 리듬 난타의 소용돌이, 의외로 투명하고 아름다운 선율과 변칙에 여전히 ABTB 고유의 인장이 오롯이 찍혀 있다.
 
ABTB 세 번째 정규 앨범 ‘ⅲ’. 사진=미러볼뮤직
 
지난 7월 프론트맨이었던 박근홍의 탈퇴 후 밴드는 변화를 겪었다. 전 음반들이 사회적 쟁점들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번 음반은 조금 더 내밀한 감정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타이틀곡 '점프'의 가사, "하루를 또 하루를 포기하지/... 오늘은 또 내일로 막아야지"는 코로나 터널을 지나 상실과 허무로 얼룩진 동시대인들에게 주는 울림이 적지 않다. 로큰롤라디오의 보컬 김내현은 "'santiago'에서는 순례자의 방관적인 태도마저 애처롭게 느껴지고 'take me to'에 이르면 비로소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발 물러나면 비로소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라고 소개글을 적었다.
 
록 밴드 ABTB. 사진=미러볼뮤직
 
지난해 평론가들 사이 호평을 받은 하드록 밴드 배드램도 11곡을 꾹꾹 눌러 담은 두 번째 음반 'Universal Anxiety'(지난달 28일 발매)를 냈다. '고립계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는 세계관은 K팝 팬덤도 혀를 내두를 만큼 철학적이다. 코로나와 이태원 참사, 러시아 우크라 전쟁을 거치고 있는 우리 시대 흘려보내지 못할 말들이기도 하다.
 
"공포가 위협에 대한 즉발적인 감정이라면 불안은 향후 다가올 위협에 대한 예측이 포함된 감정이다. 세계의 다양한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한 방어 기제로 공포를 삼켰고 그중 인류는 불안마저 기꺼이 받아들였다."
 
배드램 'UNIVERSAL ANXIETY'. 사진=배드램
 
2021 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 최우수 록 부문 후보에 오른 이들이다. 신보에서도 중저음의 기타리프와 둔탁한 드러밍, 이를 뚫고 나오는 시원한 가창은 묵시록의 밀림 그대로다. 70년대 하드록과 80년대 헤비메탈, 90년대 그런지의 배드램식 삼중결합. 에어로스미스, 건스앤로지스, 앨리스인체인스 같은 다양한 음악가들 환영이 스쳐간다.
 
'도끼' 같은 록의 부활이다. 이제 주먹을 쥐고 검지와 새끼손가락을 들어올리기만 하면 된다.
 
밴드 배드램. 사진/경기콘텐츠진흥원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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