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의 바위그림)솔롭키를 떠나 자연보호구역 칸달락샤로
(백야의 땅, 박성현의 바위그림 시간여행-20)
입력 : 2024-04-15 06:00:00 수정 : 2024-04-15 06:00:00
 
북극 아래에 위치한 페노스칸디아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핀란드, 러시아의 콜라반도와 카렐리야 지역을 가리킵니다. 세계 곳곳에서 선사 인류의 바위그림이 발견된 것처럼, 이곳에도 수천 년 전 신석기인들이 남긴 바위그림이 있습니다. 그들은 물가의 돌에 무엇을, 왜, 새겼을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질문을 품은 채 떠난 여정, 러시아 카렐리야의 오네가호수와 비그강, 콜라반도의 카노제로호수에 새겨진 바위그림과 노르웨이 알타 암각화를 향해 가는 시간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동 경로 지도. 솔로베츠키 제도에서 카노제로 암각화로 가기 위해 켐을 거쳐 칸달락샤로 이동. 사진=박성현
 
돌과 사람
 
쿠조바 군도의 네메츠키쿠조프섬에서 산의 바위경사면을 따라 올라가면 그 정상에 많은 세이드들이 흩어져 있다. 작은 돌 위에 커다란 바위가 얹혀 있는 신비로운 형태의 세이드를 보니 유형은 다르지만 우리나라에 많이 있는 고인돌을 비롯해 각종 거석구조물을 떠올리게 된다. 돌무덤에서 암각화의 캔버스 기능까지 돌이 인류와 맺어온 인연은 오래되고 돌을 신성시한 인간의 의식은 깊다. 왜 그럴까? 돌이 태고의 시간과 공간을 품은 존재여서일까? 사실 고인돌과 세이드는 여러 면에서 구분된다. 세이드의 큰 바위 아래에는 아주 작은 돌이 놓여 있지만 고인돌의 받침돌은 꽤 크고 위에 얹힌 덮개돌도 평평한 형태다. 무엇보다도 고인돌 근처에서는 종종 부장품들을 비롯해 뼈나 돌도구 등 사람들의 생활 흔적이 함께 발견되는데, 세이드 부근에서는 그런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다. 
 
네메츠키쿠조프섬의 정상. 이곳에서 세이드들을 볼 수 있다. 사진=박성현
 
예를 들어, 카렐리야의 암석산 보토바아라(Vottovaara)는 많은 세이드로 유명한데, 2008년 이곳을 조사한 학자들은 고대인이 살았던 물질적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 결과, 대규모의 노동력이 동원된 거석구조물인 고인돌과는 달리, 세이드는 빙하가 녹으면서 자연적으로 형성됐다는 자연기원설이 힘을 얻게 됐다. 빙하가 완전히 물러났을 때 암석덩어리는 바위로 낮아지고 그 바위 아래 물에 씻겨나가지 않은 작은 돌이 지지대로 남아 있게 된 구조라는 것이다. 세이드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무런 확언도 할 수 없지만, 네메츠키쿠조프섬에서는 암석에서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 고대의 계절거주지와 석기 도구들의 작업장이 발굴됐다. 이 지역을 연구한 고고학자 마르티노프에 의하면 백해 섬들의 개발 역사는 기원전 6,000~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또한 쿠조바 군도가 고대부터 해양산업의 중심지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백해 암각화의 제작 집단도 바다사냥을 나와 솔롭키와 쿠조바 군도의 섬들에 머무르지 않았을까?
 
무르만스크주에 있는 러시아 최북단 마을 테리베르카로 가는 도로 옆 돌벌판에서 차를 멈춘 여행객들이 돌을 얹고 있다(2023년 2월). 사진=박성현
 
세이드 숭배와 관련된 사미족의 전설은 세계 곳곳의 거석구조물에 반영된 돌에 대한 인류의 의식과 상통한다. 돌(세이드) 안의 강력한 영혼―종종 사미족 샤먼과 같은 조상의 영혼―이 떠나지 않도록 동물이나 새, 물고기를 먹이로 준다는 이야기, 사람이 돌로 변하는 이야기들은 무생물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연결돼 생명력이 부여된 돌에 대한 숭배의식을 보여준다. 현대인들도 어디에서든 돌이 보이면 나만의 돌탑을 쌓거나 돌 하나를 보태 얹으며 염원을 담는다. 5년 전 바이칼호수의 올혼섬에서 이르쿠츠크행 버스를 탔을 때 러시아인 운전기사가 갑자기 버스를 멈추고 내려 돌무더기 제단에 동전을 올리고 무사 운전을 기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1년여 전에는 무르만스크주에 있는 최북단 마을 테리베르카로 가는 도로 옆 돌벌판에서 여행객들이 차에서 내려 돌을 얹고 가는 광경을 보았는데 일종의 ‘사이비 세이드’라 하겠다. 21세기에도 개인의 염원이 담긴 돌탑들이 그렇게 자라난다. 수석을 수집하고 이른바 ‘반려돌’에서 위안을 받는 심리도 고래로부터의 인간과 돌의 관계를 생각하면 납득할 만하다.
 
솔로베츠키섬에서의 마지막 산책
 
솔롭키에 머무는 동안도 운 좋게 친절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일하러 온 미하일 씨가 고장 난 내 에어매트 대신 사용하도록 요가매트를 빌려줘서 그 덕에 밤 추위를 무난히 견딜 수 있었고, 역시 여름철마다 일하러 온다는 인근 아르한겔스크 주민의 배려 덕분에 간이샤워실을 얻어 쓰기도 했다. 내 텐트 옆에서 생일축하모임을 갖던 세 여성 중 한 명인 나타샤 씨는 마을을 안내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 섬에도 미궁이 있는데 가 보실래요?” “물론이지요!” 다음날 나타샤 씨를 따라나섰다. 미궁이 있는 곳으로 가려면 마을을 관통해 한참 걸어가야 했는데 덕분에 마을의 이모저모를 볼 수 있었다. 
 
현재 일반주택으로 사용되는 수용소 시절의 막사. 벽에 붙은 안내판에 ‘솔로베츠키 특수목적수용소 노동촌 주거막사, 1928년’이라 쓰여 있다. 사진=박성현
 
“이곳은 수용소 시절 막사였던 곳인데 지금은 일반 집이에요.” 나타샤 씨가 가리키는 목조주택에 다가가 보니 외벽에 ‘솔로베츠키 특수목적수용소 노동촌 주거막사, 1928년’이라 쓰인 안내판이 붙어 있다. 이렇듯 이제는 일반주택으로 사용되는 수용소의 옛 막사들이 마을 여기저기에 보인다. 굴락박물관도 그중 하나에 만들어진 것이다. 좀 더 걸어가다 보니 작은 공원이 나온다. 수용소 시절 죽어간 사람들을 위한 추모비가 모여 있는 곳이다. 중앙에는 돌무더기 위에 정교회 십자가가 서 있고 공원 둘레를 빙 둘러가며 세워진 여러 비석에는 러시아인, 벨라루스인, 우크라이나인, 아르메니아인, 폴란드인, 체첸인 등 출신민족별로 추모의 글귀가 쓰여 있다. 그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솔로베츠키 특수목적수용소와 백해-발트해 운하 수용소에서 무고하게 살해된 야쿠티야인들”을 기린다는 내용이다. 러시아 북부 머나먼 동시베리아의 야쿠티야(사하공화국)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서쪽 끝으로 왔다는 생각에 비문을 다시 쳐다보게 된다…
 
추모비 공원 내 한 비석에 '슬론(솔로베츠키 특수목적수용소수용소)에서 죽은 러시아인들에게'라 쓰여 있다. 사진=박성현
 
숲길을 지나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와서 보니 아쉽게도 솔로베츠키섬의 미궁들은 현대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볼쇼이자야츠키섬의 돌미궁처럼 고대의 숨결이 느껴지는 ‘진품’은 아니다. 자료를 찾다 보니 20세기 전반기에 진행된 건설작업으로 인해 파괴된 것들이 있다고 쓰여 있는데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 섬의 성격상 어쩌면 오래된 미궁이 존재했다가 사라진 자리에 현대 작품을 복원해 놓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곳에 산재한 자그마한 현대식 미궁들도 일반적으로 물가에 위치한 미궁들처럼 해안 가까이에 조성돼 있다. 사람들은 부지런히 젊은 미궁들을 살펴보면서 그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간다. 그 너머로 보이는 백해의 물결은 은빛으로 빛나고, 습지를 품은 해안에는 역시 돌과 바위가 가득한데 그 위에 사람들의 염원이 총총히 쌓여 있다.
 
현대에 만들어진 솔로베츠키섬의 돌미궁. 사진=박성현
 
보호와 통제의 도시 칸달락샤
 
드디어, 밤마다 그림같이 비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져 잠을 설치게 하던 솔로베츠키섬을 떠날 때가 됐다. 다음 목적지인 카노제로 암각화는 콜라반도에 위치한 무르만스크주의 카노제로호수에 있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솔롭키에서 다시 켐으로 돌아와 기차를 타고 칸달락샤로 가야 한다. 저녁 배를 타고 솔롭키에서 출발해 켐에 도착하니 거의 밤 11시다. 버스는 당연히 없고 택시를 타야 하는데 전혀 보이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주차해 두었던 자기 승용차에 오르는 것 같다. 이런 경우를 위해 작은 도시에서 이동할 땐 길거리 광고판의 택시회사 전화번호를 기억해 두는 게 좋다. 그런데 미리 적어둔 택시회사로 전화하니 받지를 않는다! 난감해서 길 건너편에 서 있는 경찰한테 물어봤지만 그도 답을 모른다.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는데 다행히 승용차 한 대가 와서 섰다. 푸도시에서 그랬던 것처럼 개인차가 택시로 운영되는 방식이다. 차에 미리 타고 있던 합승자는 항구 근무자인데 매일 밤 이 차로 퇴근한다고 말하면서 켐시의 어떤 택시회사가 밤에도 응답하는지 알려주었다. 현지인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정보다. 
 
솔로베츠키섬의 비현실적인 여름밤 풍경. 사진=박성현
 
켐 기차역에는 밤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다. 나는 창구에서 직접 표를 사야 했는데, 야간이어서 그런지 창구는 휴식시간이다. 판매시간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표를 사 새 여정을 시작한다. 새벽 1시 42분에 출발한 기차는 6시 49분 칸달락샤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른 아침 무거운 몸과 짐을 이끌고 기차역 플랫폼에 내리자마자 경찰이 내게 다가와 말하는 게 아닌가. “따라오세요. 확인해야 합니다.” “뭘요? 왜요? 저는 허가를 받은 서류가 있는데요?” 칸달락샤를 거쳐서 가게 될 ‘<카노제로 암각화> 박물관-보호구역’은 통제지역이어서 한국에서부터 미리 박물관 측을 통해 러시아 외무부의 허락을 받아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왜? 뭐가 문제일까? 피곤해서 솔직히 내 말투에 조금 짜증이 묻어났다. 하지만 별 수 있겠는가. 플랫폼 한쪽에 있는 경비경찰 파출소로 들어가니 나 말고도 한 커플이 와 있다. 알고 보니 칸달락샤는 국립자연보호구역이라 이곳을 방문하는 외국인은 무조건 조사를 받고 등록을 해야 한다고 한다. 정당한 절차였는데 오해할 뻔했다. 덕분에 새로운 정보를 얻었고 칸달락샤가 궁금해졌다…
 
칸달락샤 기차역. 사진=박성현
 
박성현 경상국립대 학술연구교수 percept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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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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