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경제민주화)반도체도 경제민주화 절실…갈길 먼 '소·부·장' 자립
기술 탈취 방지·동등한 협상권 보장 통해 공정경쟁 확보 필요성
"소부장 업체 간 M&A·기술 투자로 경쟁력 강화해야"
입력 : 2024-06-07 17:43:50 수정 : 2024-06-07 17:46:11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반도체 업계에서도 경제민주화가 절실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K-반도체의 성공적인 생태계 구축을 위해선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과의 동반성장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선진국 역시 소부장 기업들이 반도체 대기업들과 긴밀한 협업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K-반도체 기업에서는 이러한 협력 체제가 아직은 먼 얘기입니다. 한국이 메모리반도체의 세계 1위임에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반도체 수직계열화가 되다보니, 소부장 기업과의 협력보다는 하청 기업으로 치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7일 반도체 업계에선 소부장 기업들과 반도체 기업의 상생을 통해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중소기업의 원천 기술 탈취를 억제하고, 동등한 협상권 보장 등을 통해 공정한 경쟁 질서를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이와 함께 해외 선진국처럼 소부장 기업들이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해나갈수 있도록 국가적으로 육성, 장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됩니다. 
 
하지만 업계에선 현실적으로 하청 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문제를 제기하면 거래가 끊기거나 사업을 더는 영위할 수 없게 되는 등 보복을 당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최근 대기업의 하청업체 기술 유출·탈취 등에 대한 법제가 점진적으로 강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중소 소부장 업체들은 대기업의 눈치를 보는 상황입니다. 크게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사진=삼성전자 제공)
 
"K-반도체 원-하청, 인재육성 등 동반성장 중요"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업계에서도 경제 구성원 간의 공정과 평등이라는 토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져야 한다"며 "K-반도체가 선두를 수성하기 위해선 원-하청 간 협력 체계 등 생태계를 견고히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잠재력이 높은 협력사를 집중 육성하는 등 소부장 업체와의 동반 성장이 중요하다"고 짚었습니다.
 
반도체 소부장 기업을 비롯해 중소기업 위주의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 기업 육성을 통한 '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됩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팹리스 기업은 약 200개로 추정됐는데 약 3%의 중견기업(7개사)과 97%의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국의 경우 팹리스 기업이 3000개가 넘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미미한 상황인 데다 영세 업체 위주로 생태계가 조성돼 있다는 평가입니다. 
 
국내 소부장 기업을 육성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미·중 갈등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불안은 더욱 고조되고 있어섭니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주요 상품 자급화 및 경쟁 심화 등으로 소부장 산업의 중요성은 커진 상황입니다. 미중 신냉전 속에서 글로벌 공급망이 급격히 재편되는 국면을 맞이하면서 업계에선 한국 소부장 산업의 발전 전략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소부장 부문은 일본의 경쟁력이 큰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일본의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점유율은 약 35%, 미국(50%) 다음으로 추정됩니다. 일본이 반도체 산업 부활을 위해 대만 TSMC와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데는 소부장 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이 뒷받침 되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우리나라의 일본 소부장에 대한 의존도도 높은 상황입니다. 무역 및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품목은 웨이퍼 제조장비(63.2%), 실리콘웨이퍼(56.6%), 조립장비 (56.3%), 광반도체(48.4%), 전공정장비(45.1%), 반도체 장비-기타(44.7%), 측정·검사장비(31.3%)로 나타났습니다. 
 
반도체 칩(사진=연합뉴스)
 
"탄탄한 하청에 인센티브 제공 등 지원책 펴야"
 
이에 따라 우리 반도체 산업도 견고한 생태계 구축을 위해선 설계, 생산, 패키징 공정별로 기술적 우위를 가진 소부장 기업과의 협력이 필수적으로 인식됩니다. 국내 소부장 기업이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이나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는 정책수요도 꾸준합니다. 
 
업계 관계자는 "소부장 기업들과 함께 견고한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도록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며 "반도체 소재를 생산하는 한국기업의 원료 수입 등 원천기술 미확보로 해외 의존도가 높은 것도 큰 리스크"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반도체 소부장 산업의 경쟁력이 K-반도체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인"이라며 "소부장 내 산업별 차세대 먹거리 발굴 및 육성을 통해 소재에서 장비에 이르기까지 상품의 비교우위 또는 기술적 절대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반도체 대기업의 견고한 수직계열화로 소부장 업체들의 운신 폭이 좁다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삼성은 부품, 세트를 비롯해 반도체 설계부터 생산까지 수행하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이며, SK그룹의 경우 SK하이닉스, SK머티리얼즈, SK실트론 등을 통해 반도체 사업 수직계열화를 했습니다. 대기업이 소재 수직계열화를 하면 필요한 소재를 적기에 개발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경쟁이 제한되면서 궁극적으로 반도체 산업 생태계 발전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의 연구개발(R&D) 등을 장려해주고, 탄탄한 협력사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책을 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소부장 기업 스스로도 특허 확보 등을 통해 자생력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서울대 명예교수)은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기업의 수직계열화가 돼 있으니 소부장 업체들이 클 수가 없는 구조"라며 "대기업의 수직계열화를 타파해야 마켓이 커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김 단장은 "소부장 기업들도 M&A를 통해 체급을 키워 외국계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구조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정부가 최근 소부장에 R&D투자를 하고 있지만, 바로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다"라며 "특히 소재 분야는 오랜 기간이 필요한 만큼 장기간의 안목을 가지고 축적된 반도체 지식과 기술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 임유진

싱싱한 정보와 살아있는 뉴스를 제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