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주말 밤 기자회견 공지…대체 무슨 일이?
"더 이상 회장 개인의 문제 아니다"…최태원도 깜짝 등장
'정경유착' 이미지 우려…재산분할 근거 반박
여론전 밀려선 안 된다…반격 나섰지만 법조계는 '회의적'
입력 : 2024-06-17 15:24:46 수정 : 2024-06-17 15:24:46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심각한 오류에 대해 저희 쪽에서도 말씀드려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SK 관계자는 17일 최태원 회장의 이혼 항소심 판결 관련 설명 자리를 마련한 배경에 대해 짧게 설명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SK서린사옥에서 열린 이날 기자회견은 전격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주말인 16일 오후 6시가 넘어서 기자들에게 공지됐고 법조 기자들을 우선 대우하는 등 통상적인 회견과는 상황이 매우 달랐습니다. SK 내부의 급박한 상황을 드러낸 대목이었습니다. 최태원 회장도 예고 없이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노소영 아트나비센터 관장과의 이혼 소송 항소심 관련 입장을 밝히기 위해 연단에 서있다.(사진=임유진 기자)

여유롭던 1심과 달리 항소심 이후 '그룹 비상'
 
내부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기자회견은 지난주 금요일에 최종 결정됐던 것으로 보입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상고장 제출을 앞둔 SK의 기습 전략"이라고 평했습니다. 항소심 판결에 불복할 경우 판결문 송달일로부터 2주 이내에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해야 합니다. 최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다투는 항소심은 지난달 30일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SK는 이번주 내, 늦어도 오는 21일까지는 상고장을 제출할 예정입니다.
 
SK의 기류도 급박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1심과 달리 2심에서 완벽하게 패배하면서 비교적 여유로웠던 예전 입장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지난 2022년 12월 1심이 인정한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 금액은 665억원에 불과했습니다. 액수가 크지 않았기에 그룹 내부에서도 최 회장의 이혼 소송을 개인사로 치부했습니다. 그룹 문제로 비화시킬 경우 최 회장의 개인사만 두드러져 여론전에서 불리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하지만 2심 재판부가 "원고(최 회장)가 피고(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며 천문학적 재산분할을 판시하자, SK는 현 상황을 지배구조 변화까지 초래할 수 있는 초대형 리스크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최 회장의 개인사가 그룹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비판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입니다. 
 
그룹 차원의 대응도 본격화 되었습니다. 항소심 판결 이후 지난 3일 그룹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이끄는 최창원 의장 주재로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 20여명이 긴급회의를 가졌습니다. 특히 이 자리에 최 회장이 직접 참석해 "SK의 성장 역사를 부정한 판결은 유감"이라는 단호한 메시지를 내며 불복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항소심 판결 나흘 만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재계 관계자는 "그간 최 회장 개인사로 치부한 이혼 소송이 그룹의 역사를 훼손하는 상황에까지 이른 만큼, 조속히 입장을 정리하고 여론을 환기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며 "항소심 이후 연일 SK그룹 지배구조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동요를 막기 위함도 있었을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상고심을 앞두고 여론전에서 우위에 서기 위한 고심의 흔적도 엿보였습니다. 특히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300억원 비자금이 유입되고 정권 차원의 비호가 SK그룹 성장에 기여했다는 취지의 항소심 판결이 굳어질 경우, 정경유착으로 성장한 그룹이라는 오명을 지우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는 또한 천문학적 재산분할의 근거가 된 만큼 이 부분을 직접적으로 반박해야만 했습니다. 
 
최 회장을 비롯해 SK 측도 해당 대목에 상당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본격적인 회견 직전 최 회장이 모습을 드러내자 장내가 잠시 요동을 치기도 했습니다. 최 회장의 참석은 사전에 공지가 이뤄지지 않았기에 기자들이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 회장은 전날 밤까지 참석 여부를 고민하다가 직접 입장을 밝히고자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최 회장은 잠시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무엇보다 개인적인 일로 국민께 걱정과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사과드린다"고 운을 뗀 뒤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습니다. 심경을 밝히는 중간중간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최 회장은 직접 회견장에 나온 이유에 대해 "SK의 성장이 불법적인 비자금을 통해 이뤄졌다, SK 역사가 전부 부정당하고 제6공화국의 후광으로 사업을 키웠다는 판결 내용이 존재하고 있다"며 "이는 사실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최 회장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기도 했습니다.
 
최 회장은 "저 뿐만 아니라 SK그룹 모든 구성원의 명예와 긍지가 실추되고 훼손됐다고 생각한다. 이를 바로잡고자 상고를 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면서 잠시 말을 멈췄습니다. 이어 "부디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이 있기를 바라고, 이를 바로잡아주셨으면 하는 간곡한 바람"이라며 "앞으로 판결과 관계없이 제 맡은 바 소명인 경영 활동을 좀 더 충실히 잘해서 국가 경제에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최 회장은 2심 판결로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 등이 제기된 데 대해 "이 것 말고도 수많은 고비를 넘어왔고 이런 문제점을 충분히 풀어나갈 역량이 있다"며 "적대적 인수합병이나 위기로 발전되지 않게 예방해야 하는 문제도 있겠지만, 설사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도 막을 역량이 존재한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노소영 아트나비센터 관장과의 이혼 소송 항소심 관련 입장을 밝힌 뒤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사진=SK그룹 제공)
 
재계 "노 관장 유리한 상황서 '여론 밀리면 안 된다' 전략"
 
재계 관계자는 "법리보다 여론전"이라며 "노 관장에 우호적인 여론이 상대적으로 큰 상황에서 SK그룹 내부에서도 '여론전에서 더는 밀리면 안된다'는 전략이 녹아있다"고 평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대법원에서 결과가 뒤집히지 않으면 경영권이 흔들리니 SK 내부에서도 고심이 컸을 것"이라며 "이혼의 귀책 사유를 떠나 판결의 전제를 지적함으로써 여론을 뒤집으려는 시도"라고 풀이했습니다.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 위원장은 "이번 항소심 판결로 SK그룹 성장 역사와 가치가 크게 훼손된 만큼 이혼 재판은 이제 회장 개인의 문제를 넘어 그룹 차원의 문제가 됐다"며 "6공의 유·무형 지원으로 성장한 기업이라는 법원 판단만은 상고심에서 반드시 바로잡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함께 SK는 '주식가치 산정'에 '치명적인 오류'가 발견됐다며 반격을 꾀했습니다. SK 측은 "대한텔레콤은 현재 SK그룹 정점에 있는 SK(주)의 모태가 되는 회사"라며 "항소심 재판부는 최종현 선대회장이 별세할 무렵의 주가를 과소평가해 이후 경영을 맡은 최 회장의 기여도가 선대회장보다 높게 평가됐다"고 주장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가 1998년 5월 대한텔레콤의 주당 가격을 100원으로 평가를 했지만 실제로는 주당 1000원이라는 게 주장의 요지입니다. 최 회장 측의 계산대로라면 선대회장의 기여도는 10배 증가하는 반면, 최 회장의 기여도는 10분의 1로 줄고, 노 관장의 재산 기여분도 줄어들게 됩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이 법리 다툼을 하는 만큼 사실심인 2심의 내용을 뒤집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입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 임유진

싱싱한 정보와 살아있는 뉴스를 제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