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150일’…양보 없이 ‘의료정상화’ 구호만
전공의 사직 90%·의대생 휴학 70%
환자단체·노조 “직접 행동 나설 것”
입력 : 2024-07-01 07:00:00 수정 : 2024-07-01 07:00:00
[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정부가 의대 증원 계획을 발표하면서 의정 갈등이 불거진 지 150일째입니다. 정부의 의대 증원 계획에 의료계는 즉각 반발하면서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이 이어졌고, 의사단체들의 집단행동이 계속됐습니다. 정부와 의료계 갈등은 격화됐지만 서로 양보는 없었습니다. 
 
현재까지도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이탈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는 전체 전공의의 90%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월24일 기준으로 전국 211개 수련병원 전공의 1만506명 중에서 불과 940명(8.9%)만 근무 중입니다. 교육부는 동맹휴학에 돌입한 의대생 규모를 전체 재학생의 약 70% 수준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길어지는 의료공백 속에서 병원 노동자와 환자단체 등 시민단체들은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직접 ‘행동’에 나서겠다고 의료계와 정부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최근 의료계가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출범해 단일 목소리를 내기로 했습니다. 정부도 7월 초 미복귀 전공의들에 대한 행정처분 방침을 결정하기로 하면서 의정 갈등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의 의대 증원은 지난 2월1일 윤석열 대통령이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개혁’ 민생토론회에서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를 공개하며 시작됐습니다. 이어 복지부가 같은달 6일 내년도 의대 입학정원을 3058명에서 5058명으로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열악한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강화를 위해선 절대적인 의사 수 부족을 해결해야 한다는 게 정부 설명이었습니다.
 
이에 의료계는 총파업 등 집단행동을 예고하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빅5’ 병원을 중심으로 전공의들이 무더기로 집단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났습니다. 의대생들도 동맹휴학에 돌입했습니다. 정부도사직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과 진료유지명령을 내렸고, 불응할 경우 행정처분 등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의정 갈등이 ‘강대강 대치’로 바뀐 겁니다.
 
애초 정부와 의사단체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했던 의대 교수들도 정부의 강경 대응에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정부가 전공의 행정처분과 함께 의대 증원을 강행하면서 집단행동에 동참하기 한 겁니다. 의대 교수들은 3월25일부터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기 시작했고, 정부에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를 요구했습니다. 대한의사협회(의협)에서는 강경파로 꼽힌 임현택 전 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이 신임 의협 회장으로 당선돼 강경 노선을 걸었습니다.
 
평행선을 달리던 의정 갈등은 4월4일, 4·10 총선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윤 대통령이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과 비공개 회담을 가지면서 논의 테이블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박 대전협 비대위원장이 회담 직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다”고 글을 남기면서 결국 갈등은 접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의정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지난 20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내원객과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는 4월25일 석달째 의료공백 사태가 이어지자 사회적 협의체인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의대 증원 문제를 포함해 전반적인 의료개혁 방안을 논의하자는 취지였지만, 이마저도 의협과 대전협 등 의사단체들의 참여 거부로 사실상 ‘반쪽 협의체’가 됐습니다.
 
정부는 또 의대 총장들의 의견을 반영해 증원 인원의 50~100% 범위 내에서 각 대학이 신입생을 자율적으로 모집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대학들에 일부 재량권을 주면서 내년도 증원 규모는 2000명에서 1469명으로 줄었습니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법적 공방도 이어졌습니다. 의대 교수와 의대생, 전공의들은 ‘정부의 의대 증원 처분을 멈춰달라’며 법원에 집행정지 신청을 냈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은 항고심 재판에서 정부에 의대 증원의 근거자료를 요구하기도 했지만, 결국 의료계의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집행정지는 의대 증원을 통한 의료개혁이라는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서울대 의과대학 산하 4개 병원의 교수들이 6월17일 무기한 휴진에 나섰고, 의협이 18일 개원의 집단휴진과 함께 대규모 총궐기대회를 여는 등 의료계 집단행동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부도 집단행동 교사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협을 신고하는 등 좀처럼 의정 갈등을 풀 실마리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사 집단행동에 대학병원 70% 경영난”
 
의정 갈등으로 인한 의료현장 혼란과 불안은 가중됐습니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의사 집단행동으로 대학병원 10곳 중 7곳 이상이 경영난을 겪고 있습니다. 노조는 병원이 긴축 경영에 돌입하면서 그 피해가 병원의 다른 직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병원의 비상경영에 따라 무급휴직과 연장근로 자제, 결원 미충원, 신규채용 중단 등 각종 비용 절감 정책이 시행되면서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이 나빠졌다”며 “의료 파행의 틈바구니에서 수많은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가 빠른 시일 내 사태를 해결할 특단의 조치를 내놔야 한다”며 “의정 갈등 사태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전면 투쟁에 나서겠다”고 말했습니다.
 
환자단체들도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오는 7월4일 의사 집단휴진 철회와 재발방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 예정입니다. 이번 의료 사태에 대해 환자단체가 거리로 나서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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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창현

산업1부에서 ICT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