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우려도 직접 해명…꼬인 매듭 풀어나가는 최태원
두 차례 사내 인트라넷에 "걱정하지 말아라" 메시지 띄워
내부 다독이기 이어 AI·반도체로 사업 방향 키 죄기
입력 : 2024-07-01 14:30:17 수정 : 2024-07-01 14:38:16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최근 회사 인트라넷에 공지 글을 띄워 직원 다독이기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혼 소송이라는 총수 사생활 이슈가 그룹 전반의 위기감으로 확산한 데 따른 조치입니다. 구성원들의 동요와 그룹의 이미지 훼손을 막고 확고하게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됩니다. 동시에 최 회장은 경영전략회의를 통해 그룹의 전체적인 사업 방향을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분야로 잡고 투자 여력을 모으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1일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최근 임직원들에게 두 차례에 걸쳐 '걱정하지 말아라'는 취지의 공지 글을 게재했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사내 인트라넷에 최 회장이 '걱정하지 말아라, 문제없다'는 내용의 공지를 두 번 공지한 것으로 안다"며 "요즘 SK 내부 분위기가 굉장히 안 좋다. 인트라넷에 들어가야 업무가 가능한데 무조건 글이 보이게 띄워놓아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도모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사진=연합뉴스)
 
이 같은 행보는 최 회장이 처한 대내외적 상황과 무관치 않습니다. 앞서 최 회장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 항소심에서 위자료 20억원과 1조3808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재산 분할을 판결 받았습니다. 이에 따라 SK 그룹의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자칫 연구개발(R&D)이나 시설 투자 등이 적기에 이뤄지지 못해 그룹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습니다.
 
이런 우려를 의식한 듯 최 회장은 지난달 1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사옥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현안 설명 자리에 직접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최 회장은 이혼 항소심 판결로 경영권 약화 우려가 나오는 것을 두고 "이것 말고도 수많은 고비를 넘어왔고 이런 문제점을 충분히 풀어나갈 역량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후에도 최 회장은 평소처럼 대외 일정을 소화하면서 정면돌파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혼 항소심 판결 나흘 만에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22대 국회의원 환영 리셉션에 참석한 데 이어 대만 TSMC의 웨이저자 이사회 의장과의 회동을 통해 AI와 반도체 분야 협업 방안 등을 논의했습니다.
 
내부 다독이기 외에도 사업적 행보를 통해 꼬인 매듭을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SK그룹은 지난달 28~29일 최창원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등판한 후 처음으로 주재한 경영전략회의에서 리밸런싱(사업 구조 개편) 방안을 구체화했습니다. 
 
회의에서는 AI와 관련된 언급이 가장 많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지난 3~4년간 그룹의 사업이 그린·환경·신재생에너지 등으로 분산되거나 계열사가 219여 곳에 달하는 등 비효율적인 경영 투자가 문제점으로 안팎에서 제기됐습니다. 
 
서울 종로구 SK본사 모습.(사진=연합뉴스)
 
미국 출장 중 화상으로 이번 회의에 참석한 최 회장은 그룹 차원의 포트폴리오 조정 등과 관련해 "새로운 트랜지션(전환) 시대를 맞아 미래 준비 등을 위한 선제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지금 미국에서는 'AI' 말고는 할 얘기가 없다고 할 정도로 AI 관련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며 "그룹 보유 역량을 활용해 AI 서비스부터 인프라까지 'AI 밸류체인 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최 회장은 지난달 2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와 함께 촬영한 사진을 올리고 "AI라는 거대한 흐름의 심장 박동이 뛰는 이곳에 전례 없는 기회들이 눈에 보인다"고 적었습니다. 이어 "모두에게 역사적인 시기임에 틀림없다. 지금 뛰어들거나, 영원히 도태되거나"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SK그룹은 수펙스추구협의회에 '반도체위원회'를 신설해 반도체 경쟁력 강화에 주력키로 했습니다. 수펙스추구협의회에 특정 사업을 위한 위원회가 신설되는 것은 처음입니다. 기존 수펙스추구협의는 전략·글로벌위원회, 환경사업, ICT, 인재육성, 커뮤니케이션, SV, 거버넌스 등 7개 위원회로 구성됐으나, 이번 반도체위원회 신설로 모두 8개로 늘어나게 됐습니다. 기존 위원회가 그룹이 전반적인 경영 철학과 관련한 아젠다 중심의 성격을 지녔다면, 이번에 신설된 반도체위원회는 특정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됩니다. 
 
재계 또다른 관계자는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문 경정 이후 여론이 많이 달라졌지만, 판결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지배구조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 회장으로서도 플랜B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연초 총수의 입에서 '서든데스'(돌연사) 언급이 나온 데 이어 최창원 의장이 전면에 나선 후 방만 경영 질타 등이 이어지면서 그룹 전반 위기감이 더 커졌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총수 개인사에 대한 잡음을 잠재우고 구성원의 이해를 구하는 한편, 내실 경영에 기반한 질적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고조되고 있는 그룹 위기를 잠재우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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