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내부통제 강화' 강조에도 노사 협의 실종
KPI·성과급 조정 협의 필요
경영진 일방통행식 진행
입력 : 2024-07-15 06:00:00 수정 : 2024-07-15 08:08:19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금융감독원이 내부통제 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은행권에 '조직문화 감독'이라는 칼을 빼들었지만, 노사 간 협의는 전무합니다. 핵심성과지표(KPI)나 성과급 조정 등 근로조건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와 노동조합 간 합의가 필수적입니다. 은행들은 하반기 경영전략 회의 키워드로 내부통제를 제시하고 있으나, 경영진 주도의 일방통행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은행권 노사 동상이몽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 노사 대표 기구인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와 전국금융산업노조가 임금 인상률과 근로 조건을 결정하는 3차 산별교섭을 진행했지만, 견해차만 확인한 채 마무리됐습니다.
 
산별교섭은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근로자 대표와 사용자 대표가 협의를 통해 정한 임금과 근로조건 등을 해당 산업 전체에 적용하는 방식입니다. 산별교섭을 진행한 후 각 은행별 노사협상을 통해 구체적인 임금인상률과 성과급을 결정합니다.
 
금융노조는 임금 8.5% 인상을 요구한 반면, 사측은 1.5% 인상을 제시한 상태입니다. 임금 인상률뿐만 아니라 국책은행 지방 이전 안건, 주 4.5일제 도입, 영업시간 단축 등에 대해 평행선을 긋고 있습니다. '성장주의 탈피 및 건강한 조직문화 형성', '금융산업의 사회적 책임 및 역할 강화', '고용안정과 일자리 확대' 등 다른 안건은 우선순위에서 밀린 상태입니다.
 
주요 은행들은 이달 중 하반기 경영전략회의를 개최하며 '내부통제'를 주요 키워드를 꼽고 있습니다. 올 상반기 홍콩 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손실 배상과 횡령 사고 등을 잃어버린 고객의 신뢰를 찾야하는 반면 금융당국에서도 조직 문화 개선을 주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해관계자간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조직문화 제도 개선이 추진되지 않으면 조직 반발과 법정 분쟁 등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최근 경남은행은 3000억원대 횡령 사고의 여파로 임직원 성과급 환수를 노사 협의 없이 결정하면서 노사 갈등에 빠진 상황입니다. 노조는 법률 대응을 예고한 상태입니다.
 
경남은행의 결정이 은행권 성과급 문제를 다시 부각하는 계기가 되기는 했습니다. 그동안 국내 은행들이 금리 상승에 힘입은 이자 이익 증가로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사이, 정작 고객 신뢰와 직결된 금융사고는 끊이질 않고 있는 데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다만 은행권 노조는 물론 사측에도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성과급 지급에 대한 기준은 노사 간 논의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임원과 직원이 책임을 나누는 것에 대해 일방적으로 결정하기는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새로운 감독 수단을 마련해 근본적으로 (은행들의) 조직 문화가 바뀔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6월19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 간담회에서 이 원장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조직문화 경영 실태도 평가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불리는 책무구조도가 시행됐지만 계도기간을 감안하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입니다. 임원과 최고경영자(CEO)에게도 금융 사고의 책임을 물 수 있게 되면서 내부통제 강화가 기대되지만 주된 금융 사고 원인인 개인 직원의 일탈까지 원천 차단하기에는 한계가 존재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은행권의 잇딴 불완전판매 및 횡령 사고에 금융당국은 '조직문화 감독'이라는 칼을 빼 들었습니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금융권에서 발생한 횡령액은 2018년부터 지난달 14일까지 1804억2740만원에 달합니다. 업권별로 보면 은행이 1533억2800만원으로 전체 횡령액의 85%를 차지합니다.
 
금융사고와 관련해 조직문화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새 감독 수단을 마련하고 인센티브 제공을 검토 중입니다. 제도 개선이나 사후 제재 강화만으로는 금융사고 예방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국내 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준법·윤리의식이 조직 내 모든 임직원의 영업행위·내부통제 활동에 깊이 스며들 수 있도록 조직문화 차원에서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며 조직문화의 근본적 개선을 주문하고 관련 감독을 강화할 방침임을 시사한 바 있습니다.
 
금감원은 조직문화 개선과 관련해 해외 사례도 들었습니다. 네덜란드 금융당국은 심리·행동 분석 전문가가 있는 전담조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호주 금융당국은 임직원 설문조사로 조직문화 강·약점을 파악하는 방법 등으로 위험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금감원은 은행 조직문화에 대한 새로운 감독 수단으로 은행권과 모범관행을 마련해 자율규제 형식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경우 경영실태평가 등을 통해 조직문화에 대한 정기적 평가를 진행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은행들은 지배구조, 내부통제에 이어 조직문화까지 당국의 감독을 받을 가능성에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책무구조도는 임원 등 경영진의 금융사고 책임을 명문화한 것이지만 단기실적주의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성과 보상 체계를 손질해야 한다"며 "노사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 경영진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부분이 제한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픽=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 이종용

금융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