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인도·태평양 그 너머에 무엇이 있나
입력 : 2024-08-22 06:00:00 수정 : 2024-08-22 06:00:00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지난 7월에 일본에 가서 서명했다는 한일 안보협력 각서는 여러모로 이상하다. ‘한·미·일 안보협력 프레임워크 협력각서’라는 명칭 외에 실제 내용은 일체 비밀로 관리된다는 신 장관 설명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 각서는 11월에 한·미·일 삼국이 정식 문서로 채택하기에 앞서 예비적인 성격의 합의라고 보아야 한다. 신 장관의 일본 언론 인터뷰를 참조하면 11월에 이 문서를 통해 한·미·일 삼국은 미국·영국·호주 삼국의 준동맹 체제인 오커스(AUKUS)와 유사한 안보 체제를 형성하게 된다. 사실상 동맹에 버금가는 한·미·일 안보협력은 인도·태평양과 그 너머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동북아 삼국(한·미·일)과 남아시아 삼국(미·영·호)의 안보 협력체가 서로 만나게 되면 미국과 일본이 오래 전부터 구상한 인도·태평양 구상이 완성된다. 지정학의 큰 그림이 완성되는 이 중차대한 문제가 일체 비밀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인도·태평양 구상은 1941년의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구상을 연상시킨다. 그 당시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석유 금수조치를 당해 경제가 고사 직전까지 내몰렸다. 1920년대에 연간 7%의 성장세였던 일본 경제는 1930년대에 에너지와 물자의 공급망으로부터 차단당해 1%로 주저앉았다. 당시 일본의 엘리트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무엇보다 미국의 포위망을 돌파하려면 유전이 있는 동인도로 진출해야 한다는 데는 일본 지도층 내에 이견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인도로 가면 미국이 배후에서 공격해 와 일본의 인도 진출은 좌절될 수 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먼저 미국의 진주만을 폭격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 역시 강대국과의 전쟁을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 컸지만 일본은 결국 인도 진출이라는 기회의 창문을 열기 위해 진주만을 폭격하게 된다. 애초부터 일본의 본질적 목표는 진주만 공격이 아니라 인도 진출이었다. 이것이 아시아의 지도국으로서 일본이 생존하는 방식이었다.
 
올해 7월의 각서와 11월에 나올 안보협력 문서는 80여 년 전에 일본의 인도 진출 구상의 완결판이다. 2006년에 인도 뉴델리를 방문한 아베가 의회 연설에서 인도·태평양 구상을 처음 발표하던 때로부터 18년 만에 비로소 그 결실을 보게 되는 셈이다. 지난 잃어버린 30년 동안 일본은 과거 경제 대국의 영광을 잃고 모든 사회의 활력이 사라졌다. 그 깊은 상실감은 바로 1941년의 일본 지도층이 겪은 고통과 거의 유사하다. 여기서 다시 좌절된 1941년의 꿈을 회복하자는 일본 우익들은 이번에는 미국과 한국을 품에 안고 인도양으로 향하는 새로운 부활의 열망을 표출시키고 있다. 80년 전이나 마찬가지로 지정학은 불변이다. 한동안 잊고 살았지만 아시아의 지도국, 지역 패권자를 추구하는 일본의 생존 방식도 거의 변한 적이 없다. 문제는 이런 일본의 꿈을 앞서서 실행하고자 하는 윤석열 정부가 안보협력의 진정한 본질한 본질을 국민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점이다.
 
이 각서는 인도·태평양와 그 너머에 마치 신기루와 같은 신세계가 존재하는 듯한 환상은 선사하지만 사실은 사이비 지정학이다. 마치 히틀러가 사이비 지정학자인 하우스 호퍼를 만나 독일인 생활권(Lebensraum)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그것이 훗날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지정학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신뢰성 있는 이론이라고 볼 수 없는 하나의 담론에 권력이 도취되면서 국가와 민족, 역사가 헐값으로 던져지고 주변화되는 고통을 국민이 감수한다는 건 너무나 슬픈 일이다. 일본 우익의 지정학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맹종해야 할 대상은 절대로 될 수 없는 것이다. 아마도 이를 깨닫는 데 우리는 또 값비싼 비용을 치르게 될 것 같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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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