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의석을 점한 거대 야당의 단독 입법에 여당과 대통령실에 우호적인 진영에서 내놓는 비판 중 하나로 ‘의회 쿠데타’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의회에서의 다수결은 지극히 헌정적으로 정상적인 것이 아닌가? 진짜 ‘의회를 가지고 저지른 쿠데타’는 따로 있다. 바로 기원전 508년 아테네 민주정의 설립자로 평가받는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이 그렇다.
일반적인 역사 서술에 따르면 클레이스테네스는 당시 아테네의 부족 체제를 개편하여 지역에 기반한 귀족들의 힘을 약화시켰고 민주정을 위한 기구와 제도를 설치한 개혁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작 이 개혁의 내용보다 방식에 주목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는 개혁이라고 하면 마치 기존의 의사결정 기구에서 개혁안을 제출하고 통과시켜 진행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은 당시 대다수 아테네 평민들을 향한 직접적 제안이었다. 물론 이는 귀족들 간의 세력 다툼에서 약세였던 자신의 입지를 평민들의 지지로 메꿔 보려는 정치적 수이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평민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그가 시도한 것이 다수의 포퓰리즘적인 지지세 결집과 실력 동원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가 택한 길은 다름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번갈아 참여하게끔 추첨으로 뽑혀 이루는 의회를 조직하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단일한 주권과 헌정질서를 가진 근대 국가에서 상상하기 힘들다. 그래서 이는 개혁이 아니라 아주 정확한 의미에서, 즉 기존의 체제를 뒤엎은 것이라는 점에서 혁명에 해당한다. 당시 유일하게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는 의사결정 기구는 아레오파고스라고 불리던 귀족회의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귀족회의 말고 새롭게 의사결정의 권위를 주장하는 또 다른 기구가 하나 생겨난 것이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지금의 시선으로 따져보자. 누군가가 총선과 대통령 선거 등으로 당선된 국회의원들이나 대통령이나 권위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는, 시민들의 대표들을 한 장소에 모아서 거기서 의사를 모으고 결정을 내린 다음 이것이 대표성 있는 유일한 결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정확한 의미에서 쿠데타이다. 그러나 그런 권위를 자임한 것이 한 명의 군인이나 소수의 집단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쿠데타는 의회의 방식으로, 의회를 가지고 한 쿠데타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조직된 의회는 현재 캐나다, 아일랜드, 프랑스, 영국 등에서 시행되는 ‘시민의회’와 다르다. ‘시민의회’는 숙의의 기능을 하긴 하지만 거기서 낸 결론은 오직 권고일 뿐이며 여전히 기존 의회가 최종 결정권을 갖는다. 그러나 클레이스테네스가 당시 조직해낸 의회는 기존의 의사결정 기구, 즉 당시 귀족회의와 나란히 존재하면서 자율적으로 숙의하고 결정까지 내린 기구였다. 대다수 아테네 시민들로서는 이렇게 추첨을 통해 자신, 자신의 가족, 자신의 친구들이 참여한 이 의회의 의사결정이 귀족회의의 결정보다 더 구속력 있게 느껴졌을 것이다. 클레이스테네스는 귀족회의를 폐지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많은 의사결정의 권위가 의회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그 곳의 결정이 더 민주적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고장난 것을 새 것으로 교체하듯이, 의회는 왜 그렇게 바꿀 수 없는가? 적어도 역사의 교훈은 그것이 가능하기도 함을 보여준다.
노경호 독일 본대학 철학박사과정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