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피벗 중인데…내우외환 휩싸인 '한은'
빨라진 미국 피벗 시계…9월 금리 인하 '기정사실'
'집값·가계빚'에 발목 잡힌 한국…나홀로 고금리 유지
입력 : 2024-08-23 15:49:12 수정 : 2024-08-26 14:54:15
 
[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코로나19 이후 인플레이션 불길을 잡기 위한 전 세계 각국의 고금리 정책이 서둘러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글로벌 피벗(Pivot·통화 긴축 정책 전환)의 마지막 퍼즐, 미국마저 오는 9월 기준금리 인하를 기정사실화하면서 글로벌 통화 긴축 시대가 종료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서둘러 금리 인하 대열에 동참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치솟는 집값과 불어나는 가계 빚에 손발이 묶여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팔라지는 내수 부진 우려에 정부·여당마저 나서서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는데요. 미 대선·중동 불안 등 대외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 속에서 주택가격·가계부채 등 대내 리스크마저 발목을 잡자 글로벌 통화정책 변곡점 앞에 선 통화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고금리 시대' 종료…미국도 9월 인하 시사
 
23일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오는 9월 금리 인하 초읽기에 들어갔습니다. 앞서 연준은 지난달 3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지금처럼 인플레이션 안정이 유지될 경우 9월 회의에서 금리를 인하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당시 FOMC 회의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경제가 금리를 인하하기에 적절한 시점에 가까워지고 있다"며 "금리 인하는 9월 회의에서 논의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전날 공개된 7월 FOMC 의사록을 봐도 대다수 연준 위원들이 금리 인하를 찬성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9월 금리 인하 단행'이라는 시장의 시각은 지배적인데요. 현재 시장의 관심은 금리 인하를 하냐, 안 하냐가 아닌 9월 금리 인하의 폭과 향후 속도에 있습니다. 
 
미국보다 앞서 유럽과 중국 등 세계 각국도 선제적으로 피벗에 나섰습니다. 캐나다는 주요 7개국(G7) 중 최초로 올해 6·7월 두 달 연속 금리 인하를 단행해 기준금리를 기존 5.0%에서 4.5%로 낮췄습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6월 기준금리를 연 4.5%에서 4.25%로 인하했습니다. 중국 역시 지난달 22일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대출우대금리(LPR)를 0.1%포인트 낮췄습니다. 이달 1일 영국 중앙은행도 기준금리를 기존 5.25%에서 5.0%로 인하했습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 6월12일(현지시간) 워싱턴 연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집값·가계빚' 관건…한국, 10월이냐 11월이냐 
 
이와 달리 한국은 전날 13차례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현 수준(3.5%)으로 묶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난해 1월 금리 인상 이후 역대 최장기간(1년7개월) 동결 기록인데요. 경기가 둔화하고 물가상승률도 내리는 상황만 보면 금리를 인하하는 게 맞지만, 집값과 가계빚 등 금융 불안이 심각해 동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한국은행의 설명입니다. 
 
이 같은 결정에 정부·여당은 불만을 숨기지 않았는데요. 대통령실은 이례적으로 "금리 결정은 금통위의 고유 권한이지만, 내수 진작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있다"고 별도 입장을 내놓으면서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국민의힘 역시 김상훈 정책위의장이 "금통위의 독립적인 의사 결정권을 존중하지만,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느끼는 내수 부진 현상 등 조금 현실적 고려가 있어야 하지 않냐는 판단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고금리 장기화 속 가팔라지는 내수 부진을 바라보는 정부·여당의 초조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앞서 정부·여당을 비롯해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은 그간 통화당국을 향해 간접적으로 선제적 금리 인하 필요성을 압박해 왔는데요. 이번 이례적인 입장 표명 역시 당장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뜻이면서도 오는 10월 통화정책방향회의에서는 반드시 금리 인하를 단행하라는 시그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도 금리 인하 시점이 늦어지면서 내수를 살릴 골든타임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함께 나옵니다.
 
내우외환에 휩싸이면서 글로벌 통화정책 변곡점 앞에 선 한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는데요. 결국 한은의 금리 인하 시기는 부동산 시장과 가계부채 안정에 달려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현재 시장에서는 10월 금리 인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데요. 일각에선 수도권 집값과 가계부채 데이터를 더 확인한 후 11월에 단행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7월까지 하락했던 은행 대출금리는 정부 주도하에 8월부터 인상 전환됐고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도 수도권 가산금리 인상을 골자로 9월 시행된다"면서 "9~10월 가계대출이 4월 이후 월평균 5조 5000억원 증가폭을 하회할 경우 10월 기준금리 인하에 충분히 나설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반면 JP모건은 당초 10월 금리 인하를 예상했으나, 11월로 늦췄는데요. 박석길 JP모건 이코노미스트는 "한은은 가계부채 증가의 즉각적인 위험을 인지하고 있는 반면, 인플레이션 안정이라는 정책 기조는 장기적인 이익이라고 보고 있다"면서 "이 같은 관점에서 10월보단 11월이 보다 인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한은이 인하 전에 금융안정 리스크를 평가할 충분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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