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달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8월 29일 기자회견에서 "저는 솔직히 뉴라이트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우리 정부의 인사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그 직책을 맡을 수 있는 역량, 이 두 가지를 보고 인사를 하고 있다. 뉴라이트냐 뭐냐, 그런 거 안 따진다"고도 했습니다.
최근 핫이슈인 뉴라이트를 둘러싼 논란 자체를 모르는 걸까요? 그 가능성은 극히 낮습니다. 윤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올해 8월 광복절 기념식이 1965년 광복회 창립 이후 처음으로 반쪽으로 열리기까지 했습니다. 더욱이 현재 뉴라이트 그룹에 대한 공세를 윤 대통령의 멘토인 이종찬 광복회장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결국 뉴라이트니 뭐니 이념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에 따라 인사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듯합니다.
"뉴라이트가 뭔지 모른다"는 윤 대통령, 1년 전에는 "이념이 제일 중요"
하지만 설득력은 없습니다. 불과 1년 전 8월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에서 "국가의 어떤 정치적 지향점과 국가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또 어떠냐,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고 말했던 인물이 바로 윤 대통령입니다. "철 지난 이념이 아니라,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있는 게 바로 이념이다. 이거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도 했습니다. 이 발언은 당시 육군사관학교 교내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이 커지던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뉴라이트 인사로 분류되는 김광동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정도가 예전에 쓰던 '공산전체주의'라는, 사전에도 없는 용어를 대중화시킨 것도 윤 대통령이었습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2008년에 쓴 '뉴라이트의 등장과 시민사회의 변화'에서 "뉴라이트 진영이 반공 이데올로기와 친일·친미 이념, 시민들에 대한 위압적이고 폭력적인 태도를 내포하고 있다"면서 "뉴라이트는 올드라이트와 분명히 구분되는 실체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 보수우익의 낡고 새로운 여러 요소들을 모두 끌어안고 상황에 따라 색깔을 바꾸는 거대한 카멜레온"이라고 분석했는데요. 그 이후 현재까지 뉴라이트 세력의 변화 상황을 보면, 신 교수의 분석은 꽤 적실합니다.
윤석열정부가 집권 전후로 중국과 북한에 맞서기 위한 한·일 관계 개선 명분 아래 '한·일 과거사 망각' 분위기를 조장하면서, 뉴라이트 세력의 '식민지 근대화론'이 특히 부각되고 있습니다.
"대한제국 존속이 일제보다 행복했겠냐"는 인사가 국가안보실장
윤석열정부는 권력의 인적 차원 측면에서 이명박정부. 그중에서도 뉴라이트 세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와 국가정체성 관련 부서들이 그런데요.
윤석열정부의 현재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인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은 현직 군인이었던 탓인지 뉴라이트 단체 가입 이력은 없지만 "이완용이 비록 매국노였지만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다", "대한제국이 존속했다고 해서 일제보다 행복했다고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느냐"는 발언에서 보듯 '친일 식민사관'이 충만한 인물입니다. 국가안보실장이 네 번이나 바뀌는 중에도 자리를 지킨 외교·안보 분야 최대 실세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MB정부 이래 명실상부 지식인 뉴라이트 세력의 핵심 중 핵심입니다. 뉴라이트 학자들의 '뉴라이트 싱크넷' 운영위원장 출신으로 뉴라이트 역사 단체 '교과서포럼'에서도 활동한 김영호 통일부 장관도 김 차장에 버금가는 인물입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기리는' 독립기념관, ‘한국학의 본산' 한국학중앙연구원, 국가교육위원회,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등 국가정체성 관련 기관들도 뉴라이트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고요, 현재는 일선에서 빠져 있지만, 윤석열정부 개국공신인 장제원 전 의원, '동아일보' 정치부장 시절 '뉴라이트' 명칭을 처음 도입한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 초기 용산 대통령실의 한오섭 전 정무수석, 김성회·임헌조 전 비서관 등도 뉴라이트 운동을 대표했던 인사들입니다. 최근에도 헌법과 달리 일제 강점기 국적은 일본이라는 김문수 장관과 위안부 강제성을 부정하는 이진숙 방통위원장도 버젓이 임명해 버렸습니다. 이 정도면 윤 대통령 주변이 온통 뉴라이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79주년 8·15 광복절인 지난 8월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광복회 주최 광복절 기념식에서 이종찬 광복회장이 기념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찬 광복회장의 아들이지 윤 대통령의 '57년 지기'인 이철우 연세대 교수는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이던 2018년 사석에서 만났을 때는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의 정당성을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다"며 "지금 보이는 모습은 그때 들은 발언과는 매우 달라서 나로서는 좀 어리둥절하다"고 합니다.
2018년 강제징용 판결 정당하다던 윤 대통령 "일본, 100년 전 일 갖고 무릎 꿇라는 건 안 돼"
이 교수 말대로, 윤 대통령은 그로부터 5년 뒤인 2023년에는 일본에 대해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이거는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사과는 상대방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하는 겁니다. 국가 차원의 반인도주의 사안은 더 말할 필요가 없죠. 역대 독일 대통령과 총리는 "역사적 책임에는 끝이 없다"며 기회가 될 때마다 나치 독일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지난달 1일에도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바르샤바 봉기 80주년 희생자 추모식에서 사과했습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2015년 '전후 70년 담화'로 과거사에 종지부를 찍은 일본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일본을 윤 대통령이 온몸으로 감싸고 있는 겁니다.
"윤 대통령이 뒤늦게 '뉴라이트' 의식의 세례를 받은 것 같다"는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뉴라이트를 모른다는 흰소리로 눙치려 하니, 구한말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대사에 빗대면 "지금 이 판에 누가 뉴라이트인지 모르겠으면, 당신이 바로 뉴라이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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