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영혼없는 간담회'로 현장의 목소리가 들리나요
입력 : 2014-04-04 11:02:31 수정 : 2014-04-04 11:06:35
[뉴스토마토 박진아기자] "영혼없는 간담회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3일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유한공업고등학교를 찾았다. 청년고용 촉진을 위해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그러나 간담회를 끝내고 나온 한 참석자의 반응은 싸늘했다.
 
관계 부처 고위 공무원들까지 동석한 이날 간담회는 4월 중 발표 예정인 청년고용 대책을 앞두고 실제 현장에 있는 청년들의 취업 애로를 듣기 위해 마련됐다.
 
간담회에 참석한 청년들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청년고용의 현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격차, 낮은 복지 수준, 일자리의 미스매치, 선(先)취업 후(後)진학의 어려움 등 현실의 무게감을 떨리는 목소리로 전했다.
 
유한공고를 졸업해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는 한 고졸 취업생은 "고등학교땐 설계 분야인 캐드(CAD)와 캠(CAM)을 배웠지만 막상 취업 후엔 전혀 관련 없는 현장일이 주어져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면서 "후진학은 커녕 야근 등으로 회사일도 바쁜데 어떻게 진학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고졸 취업생도 "학교에서 배웠던 전공과 달리 물류팀으로 들어가 박스포장 일만 했다"면서 "어렵게 딴 자격증도 쓸모가 없었고 회사에 출근하면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대학을 다닌다는게 힘든 현실이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정책 당국자들의 대답은 황당을 넘어서 무성의에 가까웠다. 평균 연령 20세 청년들의 눈에 비치는 정책 당국자의 모습은 나라의 미래가 걱정될 정도였다.
 
박백범 교육부 기획조정실장은 "학교에서 직업 인성교육을 더 하고 현장에 나가는 학생도 각오를 좀 더 해야 한다"면서 "옛말에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공부한다는 '주경야독(晝耕夜讀)'이란 말이 있듯이 그런 과정을 거쳐 인생이 성공한다"는 황당무계한 답변을 내놓았다.
 
뿐만 아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대학원 재학생이 "시간 선택제 일자리가 정규직으로 제대로 전환될지 걱정된다"며 일자리에 대한 질을 우려하자 이관섭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은 "앞으로 고용 형태는 비정규직으로 갈 수 밖에 없어서 근로자들도 이를 따라가야 한다"면서 "계속 학습해서 자기 가치를 높이는 방법뿐"이라는 실망스러운 대답을 내놨다.
 
또 고졸과 대졸자의 임금격차 및 중소기업의 열악한 복지 수준을 호소하는 한 대학원생의 지적에는 이재흥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장이 "임금 관련 실질 통계를 보면 고졸 4~5년과 대졸 임금격차는 크지 않다"며 현실에 와닿지 않은 통계만 운운했다.
 
이재흥 실장은 중소기업의 근로복지와 관련해서도 주거·정주여건 개선, 산단 통근버스 운영 허용, 중소기업 근로자 대상 저리대출 등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정책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 무성의한 답변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보다 못한 한 참석자는 간담회 도중 손을 들고 "학생들이 내놓은 의견에 대한 속 시원한 대답이 아니지 않느냐"며 "이미 시행 중인 정책만 나열하면 무슨 타운홀 미팅(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토론 양식)이냐"고 비판했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의 고충에 귀 기울여 주고, 어깨에 놓인 현실의 무게감을 덜어달라는 것이다. 가려운 부분을 긁어달라는 것이 그들의 목소리다.
 
그러나 이날 간담회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러 와서 오히려 훈계와 현장에 목소리만 낸 꼴이었다. 그야말로 '영혼없는 간담회'다. 현오석 부총리가 정책 수립을 앞두고 즐겨하는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아픈 곳을 다독여 주고,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것이다. 정책 수립에 앞서 정책 당국자들이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자세가 아닐까.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일 서울 구로구 소재 유한공업고등학교를 방문해 '청년고용을 촉진을 위한 간담회'를 가졌다.(사진=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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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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