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한국사회 50년 속 '진실' 캐내기
'압축성장의 고고학' 장덕진 외 지음 | 한울아카데미 펴냄
입력 : 2016-01-29 19:15:36 수정 : 2016-01-29 19:15:43
지난 50년간의 각종 사회조사 기록을 바탕으로 오늘날 학자들이 한국사회의 변화상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책이 나왔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조사되고 기록된 여러 조각의 '사실들' 속에서 오늘날 유효한 '진실들'을 길어올리는 작업에 나선 셈인데요.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에서 기획한 책 '압축성장의 고고학(장덕진 외 지음, 한울아카데미 펴냄)'이 오늘 '뒷북' 코너에서 소개할 책입니다.
 
사회조사 자료 속에 드러난 한국사회의 변화상
 
이 책의 토대는 바로 지난 수십년간 실시된 각종 사회조사 자료들입니다. 옛 자료들을 갈무리한 결과 가장 나이가 많은 응답자가 1890년생이었다는 이야기가 서두에서부터 흥미를 자아냅니다. 9인의 공저자들이 사회조사를 두고 일종의 고고학적 접근을 한 셈인데요. 그간 압축성장을 한 한국사회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저자들은 이 책에서 차근히 짚어내고 있습니다.
 
이 책이 나오게 된 공식적인 계기는 체계적인 사회조사를 국내에서 처음 시작한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가 지난해 50주년을 맞았다는 점인데요. 공저자 중 한 명인 장덕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겸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장은 이 책의 의의에 대해 "그동안의 사회조사를 총정리하는 데 일차적인 의의가 있다"면서도 "학문적으로 보자면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마디만으로는 충분히 나타나지 않는 한국 현대사를 미시적인 자료들을 통해 복원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책을 펼쳐보면 먼저 결혼과 가족에 대한 생각의 변화 흐름을 분석한 2장 '반세기에 걸친 결혼, 출산, 태아 사망의 변화'가 눈에 띕니다. 김현식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1965년 서울대학교 인구통계실에서 실시한 '도시 가족관계 조사'의 한 응답을 인용하며 예전에는 이혼이 가능한 경우로 성불구, 불임, 애정결핍 등을 꼽았다고 전합니다. 특히 요즘의 중요한 조건인 경제력이나 배우자의 외도는 이혼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답한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또 이혼하게 되면 자녀 유무를 떠나 재혼해야 한다고 답한 점도 주목되는데요. 경제력이 없는 경우가 많았던 60년대 여성들이 2000년대의 여성들보다 오히려 재혼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고 하네요. 
 
교육열의 실상을 파헤치고자 시도한 3장 '한국의 고등교육 팽창과 교육 불평등: '학력주의'의 관점에서'에서도 흥미로운 연구가 소개됩니다. 김두환 덕성여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연구한 이 부분에서는 학력주의에 있어 모두가 평등하게 가난했던 1950년대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지적한 점이 눈길을 끄는데요. 즉, 교육열은 모두가 평등하게 가난해진 사회에서 경쟁을 이겨 더 높이 올라가겠다는 지위상승의 열병이라는 게 김 교수의 분석입니다.
 
또 인구 문제를 다룬 4장 '한국 노인의 삶의 변화: 1968~2015'에서는 고령화가 이슈로 등장하는데요. 그간 고령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전국 평균값을 가지고 이야기했다면 이 연구에서는 지역 단위로 보면 이미 70년대에도 고령화가 진행된 지역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김근태 덕성여자대학교 SSK 네트워킹 지원사업단 연구교수가 연구해낸 이 장의 내용과 관련해 장덕진 교수는 "향후 고령화 전망을 볼 때 현재는 서울이 가장 젊지만 향후에는 오히려 경기도가 더 젊은 지역이 될 것"이라며 "이는 곧 고령화 정책이 주택정책과도 연관돼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책의 가치는?
 
위에 소개한 내용 외에도 저자들은 이웃 공동체, 노동자 의식, 한국 사회복지, 정보사회 등을 키워드로 삼아 사회조사 자료를 토대로 한국사회의 과거와 현재를 면밀히 분석해내고 있는데요. 결과적으로 개인화, 이중화, 고령화, 위험사회 등과 같은 커다란 사회 변화의 추세들이 개별 연구들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책에 담지 못한 부분 중에도 일반적인 상식을 깨는 놀라운 사실들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이같은 분석적 연구는 앞으로 한국이 사회 변화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를 고민할 때 길잡이 역할을 할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이네요. 중앙 중심이 아니라 지역 단위로 세분화해 들여보는 등 좀더 실상에 근접해 진행된 세밀한 사회조사 연구가 관련 정책들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덕진 교수는 "통계분석의 결과는 매일매일 넘쳐나지만 대부분 그날 보고 그날 버린다"면서 "몇십년을 두고 보면 자료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이 보이는데 이런 통찰들은 정책결정권자들한테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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