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달영의 스포츠란)일찍 핀 꽃이 먼저 시든다?
제도와 조급증이 선수 생명 단축 불러온다
입력 : 2016-04-11 06:00:05 수정 : 2016-04-11 06:00:05
'제2의 안현수'로 불리며 한국 남자 쇼트트랙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노진규 선수가 2014년 1월 골육종에 의한 악성 종양 진단을 받은 이후 암 투병 중 지난 3일 향년 2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노진규 선수가 2013년 11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4차 대회 즈음에 그의 왼쪽 어깨가 붓고 병원 검진 결과 양성 종양 판정을 받았음에도 진통제를 먹어가며 고통을 참고 경기에 출전했던 모습을 떠올리면 우리는 그의 죽음에 애도만을 표할 순 없다.
 
우리는 각종 국제경기대회에서 노진규 선수의 경우와 같이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님에도 경기에 나서는 한국 선수들의 모습을 적지 않게 봐왔다. 우리는 '부상투혼', '애국심' 등의 미사여구로 그들을 '칭송'한다. 우리가 그들의 출전을 강요한 꼴이나 마찬가지다. 그러한 출전 강요가 어디 국제대회뿐인가. 국내대회에서도 우리 선수들은 어릴 적부터 신체적?심리적 사정상 출전이 어려운 경우에도 출전을 강요받거나 출전할 수밖에 없는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대회 출전뿐 아니라 평상시 훈련에서도 그렇다. 학생선수 시절 대부분의 선수들은 수업에 참석하지 않고 훈련과 연습에 몰두한다. 주말에도 쉴 틈이 없다. 학기 중뿐 아니라 방학 중에도 전지훈련이나 대회에 참가한다. 과거에 비해 합숙훈련은 줄었다지만 훈련과 대회 출전 시간은 거의 그대로다. 그 결과인지 우리 선수들이 학생이나 청소년 시절에는 세계적 수준에 올라선다. 개인종목의 경우 주니어 세계기록에 근접하거나 세계정상권의 기량을 보이고 단체종목의 경우 국제경기대회에서 메달을 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성인이 돼선 기대와 다르게 세계정상권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또한 적지 않다. 청소년 시절 우리선수와 대등하거나 뒤처진 성적과 기록을 보인 외국 선수는 일취월장으로 실력이 발전하는데 우리 선수는 답보 내지 침체에 빠진 경우가 꽤 있다. 심지어 일찌감치 선수생활을 접는 경우도 있다. 일찍 핀 꽃이 먼저 시든 것이다. 우리 선수들을 먼저 시들게 하는 것은 소질이나 능력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실제 고질적인 신체 부상이나 심리적 동기의 소멸인 경우도 상당하다.
 
우리 학생선수들을 일찍 꽃 피게 하고 먼저 시들게 하는 원인은 바로 우리에게 있다. 어릴 때부터 일정 경기에서 성적을 내고 기록을 세워야 하는 제도적 환경과 그에 따른 지도자와 학부모의 조급증이다. 오로지 경기 성적과 기록만을 기준으로 한 체육특기자제도에 의해 학생선수로서 상급학교에 특례입학하기 위해선 청소년대표가 되거나 대회에서 상위권에 입상해야 한다. 다른 선수보다 무조건 더 훈련해야 하고 단체종목에선 팀을 위해 몸이 아파도 진통제를 먹고 출전해야 하는 이유다. 지도자와 학부모도 말리지 않거나 모른 체 한다. 그러한 결과지상의 제도와 환경적 요인이 일찍 핀 꽃들을 일찍 시들게 하고 심지어 꽃망울에서 활짝 꽃을 피우지도 못하게 한다.
 
학생선수가 꽃으로 일찍 시들지 않도록 하거나 일찍 핀 꽃이 아니라 하더라도 소나무로 늦지만 오래도록 푸르게 하려면 학생선수 육성에 관련된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만물은 번성하면 반드시 쇠망하고, 일어남이 있으면 도로 무너짐이 있다. 속히 이루어지면 굳건하지 못하고 급하게 달리면 넘어지는 예가 많다. 만발하게 핀 동산의 꽃도 일찍 핀 것은 먼저 시들고, 더디게 자라는 산기슭의 소나무는 무성하고 늦도록 푸르다.' 중국 송(宋)나라의 유자징(劉子澄)이 주희(朱熹)의 가르침을 받아 편찬한 아동용 교양서로 불리는 '소학(小學)'에 나오는 글이다.
  
 
장달영 변호사·스포츠산업학 석사 dy6921@daum.net
 
 
지난 2013년 2월10일(한국시간)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린 2012~2013 ISU 쇼트트랙 월드컵 6차 대회 남자 1500m 2차 레이스 결승에서 금메달을 딴 뒤 메달을 목에 건 고 노진규 선수의 모습.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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