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보호 못받는 노동자들)건설현장 일용직에 사회보험은 '그림의 떡'
'일당 다음에' 유보임금 만연…노후소득 등 안전망도 열악
입력 : 2016-09-08 14:51:00 수정 : 2016-09-08 16:29:12
[뉴스토마토 김지영기자]#. 간이의자 몇 개가 놓인 좁은 사무실에서 한 일용직 노동자와 업주가 말씨름을 벌인다. 노동자가 “5일을 일했는데 왜 4일치 일당만 주느냐”고 따지자 업주는 “장부에 4일 일한 것으로 돼 있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받아친다. 결국 노동자는 4일치 일당만 받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는 인력시장으로 표현되는 유료직업소개소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건 건설현장의 유보임금 관행 때문이다. 정부는 일용직에 대해 일당을 당일 지급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일당을 미뤄 지급하는 사례가 많다.
 
임금을 둘러싼 대부분의 문제도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서면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일 계약이 수일 간 이어지면 노동자는 임금을 받을 때 자신이 며칠을 일했는지 증명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직업소개소에서 작성한 장부를 통해 근무 일수를 확인해야 하는데, 장부가 부정확하면 임금이 실제 지급돼야 할 액수보다 적게 지급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 계약단위가 하루이기 때문에 같은 현장에서 주 15시간 이상 일해도 주휴가 적용되지 않는다.
 
비정규직 중에서도 일용직(일일근로자), 일용직 중에서도 건설현장 일용직은 근로조건이 가장 열악한 직종으로 꼽힌다.
 
직업소개소를 통하지 않고 건설현장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지난 6일 발표한 자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건설노동자는 익월 30일에 임금을 지급받고 있다. 일을 시작하고 첫 월급을 받을 때까지 최장 2개월이 걸린다. 여기에 포괄임금계약으로 인해 시간 외 근로수당 등을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많고, 일한 기간이 3개월 미만일 때에는 예고해고 예외조항에 따라 상시 해고 위험에 노출된다.
 
하지만 일정 요건만 지켜진다면 유보임금 자체는 문제가 안 된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하루 단위 근로계약의 경우 일을 한 날로부터 14일 이내에만 임금이 지급되면 체불이 아니다. 1개월 이상 근로계약은 날짜에 상관없이 매월 1회 이상 정해진 임금 지급일이 있으면 된다.
 
근로조건만큼 사회안전망도 열악하다. 일일노동자의 건강보험 및 국민연금보험 가입률은 각각 8.5%, 9.0%다. 노동조합, 퇴직연금 가입률은 고작 0.3%, 0.7%다. 그나마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일한 날수에 비례해 퇴직공제금(일 4200원씩 사업주 부담)을 받지만, 그 규모는 노후소득 보장 측면에서 턱없이 부족하다. 건설근로자공제회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공제금 지급액은 평균 255만8000원, 최고 지급액은 1648만5000원에 불과했다.
 
이처럼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의 고용·생활불안이 지속되자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8일 ‘제3차 건설근로자 고용개선 기본계획’을 발표했으나 그 후속 조치는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노무비 구분관리 및 지급확인 제도’ 도입은 관련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으나 계류 중이고, ‘일당 당일 지급’은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 중으로는 임금 지급주기와 관련한 논의가 시작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폭염이 계속되던 지난달 18일 서울 중구 만리재고개 인근 신축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대형선풍기를 틀고 건설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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