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 대통령과 대파 한단
입력 : 2024-03-23 06:00:00 수정 : 2024-03-23 06:00:00
처음엔 눈을 의심했습니다. ‘대파 한단 875원’.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물가점검차 하나로마트 서울 양재점을 방문한 자리에서 “합리적”이라며 만족했다는 내용도 곁들여 졌습니다.
 
불과 이틀전인 16일, 토요일에 대파 한단에 5000원을 주고 산 입장에서 동네 채소가게 아주머니에 대한 원망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대파는 작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요즘에는 한단에 보통 10개 남짓입니다. 그러면 한 줄기에 500원. 대통령이 집어든 대파 한단의 대략 6배 가격을 더 주고 ‘바가지’를 쓴 셈입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윤석열 대파’가 논란이 됩니다. 대통령이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집어든 대파가 이상할 정도로 쌉니다.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는 사흘전만 해도 3배 이상 높은 2760원이었는데 이틀전부터 1000원에 팔더니, 대통령 방문 당일에는 추가할인행사까지 시작해 875원이 됐다는 겁니다.
 
정부는 납품단가 지원과 농산물 할인, 유통업체 자체할인 등 ‘3종 할인세트’가 적용돼 초저렴 가격이 나왔다고 설명합니다. 윤 대통령, ‘타이밍’ 참 기가 막히게 잘 잡습니다. 장보기로 치면 주부 9단을 넘어 ‘10단 명인’입니다. 저렇게 장 보면 물가걱정 하나도 없습니다.
 
'간참'에 둘러싸인 대통령
 
물론 대통령은 대파 한단 값 몰라도 됩니다. 오히려 대통령이 대파 한단에 얼마, 사과 하나에 얼마라고 세세히 알고 있어도 문제입니다. 물가뿐 아니라 국정 전반을 큰 그림을 갖고 운영해야 하는 대통령의 지위상 너무 미시적인 부분까지 알고 있는 '만기친람'도 부정적인 요소라고도 하겠지요.
 
국민들이 실망하는 대목은 대통령이 대파 한단에 ‘875원 합리적’이라고 흐뭇해하는 것을 누가 만들었냐는 겁니다. 대통령이 마트에 방문하는 바로 그날 ‘할인 3종세트’가 작동돼 눈과 귀를 가리는 ‘간신’에 대한 한탄입니다.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이 왕은 아니니, 현대적으로 풀이하면 ‘간참’(간사한 참모)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물가 점검에 나선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동선을 잡아 진짜 요즘 물가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게 주무 장관을 비롯한 참모의 역할일 겁니다. 
 
이종섭 호주대사에 대한 논란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해병대 채상병 수사 외압 의혹으로 피의자 신분인 이종섭 호주대사(전 국방부 장관)는 공수처의 수사대상임에도 불구하고 법무부의 출국금지 해제로 대사직 수행을 위해 출국했습니다. 11일만에 부랴부랴 다시 귀국하긴 했지만,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대사는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논란이 불거진 인물에 대해 대통령이 임명하기까지 참모들이 입을 닫았거나 방조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서초구 농협하나로마트 양재점을 방문해 대파 등 채소 물가를 점검하며 염기동 농협유통 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2024.03.18 (사진=뉴시스)
 
울림 클 '대파 총선'
 
회사를 비롯한 어느 조직이든 비슷할 겁니다. 쓴소리를 한다고 달라질 것 같지도 않고, 달라지기는커녕 역린을 잘못 건드려 미움만 사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니까요. 서민들이 지지고 볶는 회사야 그런 곳이려니 합시다. 그래도 국가를 이끄는 정부는 그러면 안되는 게 아닐까요.
 
대통령에게 쓴소리까지는 필요없다고 칩시다. 그러나 적어도 대통령이 ‘순시’를 나갔다면 정확한 상황을 보여주는 게 맞을 겁니다. 그냥 마트에서 장을 보고 계산하는 주부 영수증만 대통령이 양해를 구하고 보자고 해도 됐을 겁니다. 물론 ‘짜고 치는 고스톱’은 안되구요. 요즘 물품 몇 개 안 집어도 한 사나흘 먹을 양식 카트에 넣으면 20만원 훌쩍 넘습니다.
 
‘대파 한단’은 벌거숭이 대통령을 둘러싼 현 정부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국민들은 ‘작은 포인트’에서 마음이 돌아 섭니다. 대파 한단이 총선에 주는 울림. 적지 않을 겁니다.

오승주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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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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