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대노'도 부족할 '라인 야후' 논란, 윤 대통령은 왜 '격노'도 안 할까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과거사-현안 분리, 한일관계 '투 트랙' 전략도 무너뜨려
입력 : 2024-05-17 06:00:00 수정 : 2024-05-17 06:00:00
지난 13일 서울 시내 한 라인프렌즈 매장 모습.(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는 유명하다. '윤석열 격노'로 키워드 검색하면 관련 기사가 차고 넘친다. 그의 잦은 격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칼럼도 부지기수다.
 
검찰총장 시절의 '격노'는 "범죄를 때려잡는" 카리스마를 과시하는 장식물 역할도 있었겠으나, 대통령의 '격노 일상화'는 그럴 수 없다. 국정 운영이 원활하지 않다는 '산 증거'이고, 대통령이 봉건시대 왕처럼 고집불통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전 부총장 "언론에 왜 그렇게 뻑하면 대통령이 격노한다는 표현이 나오나"
 
오죽하면 지난 총선 때 경기 고양병에서 낙선한 <중앙일보> 편집국장 출신 김종혁 전 조직부총장이 "언론에서 왜 그렇게 뻑하면 대통령이 격노한다는 표현이 나오나. 격노할 것은 국민인데 방송 자막은 대통령이 격노한다고 나온다"면서 "대통령은 국가의 최고 지도자이기 때문에 PI(대통령 이미지)를 정말 열심히 해야 되는데 지난 2년간 우리는 PI가 속된 말로 망했다. 하나도 없다"고 했을까. 한마디로 '격노'가 윤 대통령의 PI라는 얘기다.
 
그런 윤 대통령이지만 정작 격노해야 할 사안에는 격노하지 않았고, 심지어 반대 방향으로 격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라인 야후 사태', 정확히는 일본 정부 차원의 '라인 경영권 박탈' 시도가 그 대표 사례다.
 
라인 야후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대해 일본 총무성은 행정지도라며 '위탁처(네이버)로부터 자본적 지배를 상당 수준 받는 관계의 재검토'를 요구했다. 직접적인 지분매각 요구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전형적인 '눈 가리고 아웅', 일본에서도 잘 쓰는 속담대로 "머리만 감추고 엉덩이는 감추지 않는다"(頭隱して尻隱さず)에 불과하다.
 
개별기업의 경영권 문제에 일본 정부가 직접 개입하고 나선 것이다. 아무리 라인 야후가 1억2000만 일본 국민 중 9600만 명이 사용하는 '사회 인프라'라 해도, 이건 금도를 넘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시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대 성과로 내세우는 '한일 관계 개선' 노력을 아예 내팽개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시장경제 원칙을 정면으로 훼손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이번 사건은 한국의 정보기술(IT) 인프라기업을 일본 등 해외 각국이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도 중요하며, 라인 야후가 동남아에서 1억명의 이용자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동남아 사업 기반까지 뺏길 수도 있는 문제다.
 
윤 대통령의 일본 올인 외교를 극력 지지해 온 보수 언론들까지 "한국이 적성국이냐", "이건 강탈"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총무성 행정지도 이후 두 달도 더 지나 우리 정부 입장 나와
 
일본 총무성이 라인 야후에 '자본관계 재검토'를 요구하는 1차 행정지도를 한 게 지난 3월 5일이고, 재발방지책이 불충분하다며 2차 행정지도를 한 것은 4월 16일이었다.
 
일본 정부가 두 차례나 이렇게 적극 행동한 반면, 우리 정부가 공식 유감 표명을 한 것은 이달 10일이 처음이었다. 일본 총무성이 1차 행정지도를 한 3월 5일부터 따지면 두 달도 더 지난 시점이었으니, 뒷북이라는 말도 아깝다.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하자 13일과 14일 이틀 연속으로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우리 기업 의사에 반하는 부당한 조치에는 단호히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뒷북일수록 '단호'니 '강력'이니 요란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대선 선거운동 때부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가치외교'를 표방했고, 일본은 미국과 함께 그 핵심 대상이었다.
 
그런 일본이 자유시장경제 국제질서를 정면으로 위반했으니, '격노'가 아니라 '극대노'로도 모자랄 일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출입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윤 대통령 "이게 반일몰이 할 일이냐"…일본 경제안보장관은 "나는 라인 안써, 본질적 재검토 필요"
 
그런데 오히려 그는 "이게 반일몰이를 할 일이냐"고 했다. 윤 대통령의 인식이 어처구니없다는 것은 일본 자민당과 정부 인사들의 그간 발언만 봐도 바로 드러난다.
 
"나는 라인을 이용하지 않고 있다. 위탁처로부터 자본적인 지배를 상당 정도 받는 관계의 재검토를 포함해 보안 거버넌스 체제의 본질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전보장담당장관. 4월 3일 <슈칸분슌>)
 
"플랫폼 사업자는 사기업인 동시에 공공재"(아마리 아키라 자민당 경제안보추진본부장, 4월 18일, <니혼게이자이>)
 
집권 자민당 일부 의원이 라인 야후에 대해 "명실공히 일본 인프라가 아니면 안 된다"고 발언(5월 9일, <아사히신문>)
 
역대 한국 정부는 정도 차이는 있지만 한일 관계에서 과거사 문제와 현안을 분리하는 '투트랙' 전략을 써왔다. 과거사 문제가 한일 간 경제협력 등 현안들의 발목을 잡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윤석열정부는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에 면죄부를 준 것은 물론, 다른 사안들에서도 문을 활짝 열어주면서, 투트랙 전략도 형해화돼버렸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태평양 전쟁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우리의 자녀나 손자, 그리고 그 뒤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과를 계속할 숙명을 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2015년 8월14일 '전후 70년 담화')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이거는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윤 대통령, 2023년 4월 24일자 <워싱턴포스트> 인터뷰)
 
윤 대통령은 역시 일본 극우·보수파의 수정주의역사관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인가?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 황방열

싱싱한 정보와 살아있는 뉴스를 제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