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의심 사고에도 '페달 블랙박스 의무화' 공회전
'브레이크 밟아도 질주 영상' 급발진 직접 증거
정부, 제조사 자발적 설치만 권고 '미온적'
제조사는 '급발진 인정하는 꼴' 반대
페달 오조작 방지 기술 도입 논의도
입력 : 2024-07-04 15:02:32 수정 : 2024-07-04 17:06:06
 
[뉴스토마토 황준익 기자] 지난 1일 서울 시청역 부근에서 일어난 대형 교통사고에서 급발진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이를 확인할 수 있는 '페달 블랙박스'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페달 블랙박스는 가속 및 브레이크 페달을 촬영해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는지 여부를 증명하는 영상 장비로 급발진을 입증할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평가받는데요.
 
하지만 완성차 업체들이 페달 블랙박스 설치에 회의적인 데다 정부도 미온적이여서 급발진 의심 사고를 둘러싼 논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2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 교차로 대형 교통사고 현장에서 경찰이 사고를 일으킨 역주행 제네시스 차량 인근을 통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4일 국토교통부 자동차리콜센터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 3월까지 14년간 접수한 급발진 의심 사고 791건 중 급발진으로 인정된 사례는 현재까지 1건도 없습니다.
 
급발진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탓에 운전자 과실인지, 제조사 결함인지 다툼이 치열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급발진으로 인한 차량 결함 증명 책임이 소비자에게 있는 점이 꼽히는데요. 차량에 대한 정보와 전문 지식이 없는 소비자가 급발진 원인을 증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전문가들은 운전자가 급발진임을 입증하려면 페달 블랙박스가 가장 확실하다는 입장입니다. 지난해 10월 국토부가 자동차 제조사에 페달 블랙박스 장착을 권고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국내 제조사들이 이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인데요. 업계는 페달 블랙박스를 제조사 차원에서 설치하는 것 자체가 기술적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자동차 제조사가 페달 블랙박스를 설치하는 건 기술적으로 아무것도 아니다"며 "급발진을 인정하지 않는 제조사 입장에서 내 속살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국토부도 제동압력값 등을 포함한 '사고기록장치(EDR)' 기록항목을 확대하는 법안을 입법예고하고 현재 국무조정실에서 규제 심사를 진행 중인데 반해 페달 블랙박스 입법에는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업계에선 제조사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김철수 호남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페달 블랙박스를 통해 제조사 결함이 발견되면 문제가 커진다"며 "또 페달 블랙박스 설치에 따른 비용을 소비자에게 받을 수도 없는 등 손해 볼 일만 있으니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페달 블랙박스.(사진=지넷시스템)
 
의무화가 어렵다면 페달 블랙박스 설치에 대한 인센티브 등 활성화 방안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페달 블랙박스를 설치하면 보험료 할인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설치비용을 지원하는 식이죠. 실제 강원도의회는 지난해 관용차에 페달 블랙박스 등 기록장치 시범 설치 등 급발진 사고 대비와 사후 지원과 관련한 내용을 담은 조례안을 마련했습니다.
 
김필수 교수는 "페달 블랙박스 설치에 따른 보험료 가중 할인이나 지자체에서 보조하는 것도 하나의 활성화 방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급발진을 예방하기 위해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 방지 기술 도입이 확대돼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운전자 페달 오조작 방지 기술은 정지 및 저속·고속 주행 상태에서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으로 인한 의도하지 않은 가속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충돌 사고를 예방하는 기술인데요.
 
현대차는 '캐스퍼 일렉트릭'에 전·후방 장애물이 가까운 상황에서 운전자가 악셀 페달을 급하게 작동하는 경우 운전자의 페달 오인으로 판단해 출력 제한 혹은 긴급 제동을 통해 사고를 예방해주는 '페달 오조작 안전 보조(PMSA)' 기능을 적용했습니다. 한국교통안전공단도 지난해 12월부터 페달 오조작 방지 및 평가 기술 개발 기획 연구에 착수해 다음달 말까지 완료할 예정입니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급발진 원인이 현재로서는 하드웨어 보다는 소프트웨어의 결함일 것으로 추정하지만 뜯어도 보이질 않아 아무도 정확하게 규명을 못하고 있다"며 "문제점을 못 찾고 있는데 대응방안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인 만큼 보완책을 만들고 기술 발전으로 해결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황준익 기자 plusi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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