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민주주의)③'상식·대화·타협'의 실종…"숙의 민주주의 절실"
'공론조사'에서 '상설기구'로…3대 개혁 '시급'
'공론조사'에서 '상설기구'로…3대 개혁 '시급'
입력 : 2024-08-02 17:48:03 수정 : 2024-08-02 19:02:34
[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한국 정치에 '숙의'는 필수입니다. 다른 정당을 '동반자가' 아닌 '정적'으로만 여기면서 대화·타협은 실종했는데요. 대립을 조정해야 할 정부·정치권이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데요. 전문가들은 '더 많은 직접 민주주의'가 아니라 '강화된 숙의 민주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대안은 시민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타협 기구'입니다. 
 
전현희 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청문회'에서 부상 당한 부위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극단 정치' 넘기 위한 숙의 민주주의
 
숙의 민주주의는 여러 사람이 모여 깊이 생각하고 의논하는 '숙의'가 의사결정의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 형식입니다. '단순 투표'가 아닌 '실제적 숙의'가 입법 과정의 적법성을 따진다는 면에서 전통적 민주주의 이론과 다른데요. 
 
한국에서 숙의 민주주의는 '공론조사 제도'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이 제도는 이해관계가 다른 시민들이 의제를 직접 학습하고 토론해 '공공의 지혜'를 형성한다고 가정합니다. 내용을 잘 모른 채, 기존 의견만 밝히는 여론조사보다 한층 진일보했다는 평가인데요. 정책을 결정하는 건 정부 몫이지만, 공론화 결과는 훌륭한 참고 자료가 됩니다. 
 
문재인정부 당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우리나라에서 이뤄진 첫 숙의 민주주의 실험입니다. 결과는 '이미 진행된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는 재개하고, 원전 자체는 앞으로 줄여나간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공사 찬성(59.5%)과 반대(40.5%) 의견이 팽팽히 맞섰는데, 여기에서 주목할 대목은 '최종결과가 본인의 의견과 다를 경우에도 이를 존중하겠다'는 비율이 93.2%로 나타났다는 부분입니다. 
 
공론화 방식에 관한 비판 중 하나는 '비전문가가 정책을 결정한다'는 점인데요. 그러나 "시민은 무지한 게 아니라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을 뿐"이라는 반박이 나옵니다. 엘리트 집단도 '진실이 무엇인지' 이견을 보이고, 합의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만약 시민이 무지하고 편향적이라면, 현재 대의 민주주의에도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뜻인데요. 
 
숙의를 통해 '인식 변화'가 도출된다는 사실은 명확합니다. 지난 4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가 발표한 최종 설문조사 결과에선 '56%'가 소득 보장을 강화한 1안(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50%)을 지지했습니다.
 
앞선 첫 번째 설문조사에서는 1안(36.9%)은 44.8%를 기록한 2안(보험료율 12%·소득대체율 40%) 보다 지지율이 낮았지만, 시민대표단이 학습과 토론을 거치면서 1안으로 선회한 겁니다. 
  
'상설기구'보다 중요한 건 '시민 참여'
 
그러나 '신고리 5·6호기' 이후 공론조사는 기계적으로 답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로 인해 피로감만 가중하고 있다는 건데요. 통상 공론조사는 정책적 의사결정에 종속돼 단기적 속성을 띄는 데다, 앞서 언급한 연금특위 공론조사는 국회에 가로막혀 무산되다시피 했는데요.
 
이를 위해 다른 형태의 숙의민주주의 도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그중 하나가 '사회적 대타협 기구'입니다. 
 
노동·연금·교육 개혁 등 주요 이슈에 대해 숙의 민주적 방법을 제도화하자는 주장입니다. 상설화 돼있다는 점에서 논의를 지속적으로 끌고 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책 결정에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할 수 있고, 정치적으로 대표되는 이들이 더 바람직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보통의 '사회적 대타협 기구'에는 '시민'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입니다. 근로자·사용자·정부가 경제·사회정책 등을 협의하지만, 번번이 합의에 실패하고 있는데요. 경사노위가 화살을 계층별 대표에게 돌리면서 '사회적 대타협'을 위해 만든 기구에서마저 싸움이 벌어지는 판입니다. 
 
특히 현 정부에서 경사노위의 사회적 대화는 부침이 심했습니다. 노동계를 대표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 온 한국노총은 반노동 정책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5개월 동안 경사노위를 떠났습니다. 올 2월 경사노위 본위원회가 열린 이후에도, 의제 위원회 첫 회의까지 약 4개월 걸렸는데요.
 
경사노위에서는 근로시간, 임금 제도, 계속 고용(정년 연장) 등 노사 이견이 큰 현안을 다룰 예정입니다. 노사정 합의 가능성이 낮은 사안들입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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