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금융, 내수 벗어나 해외로…"장기 전략 세워야"
(11개 정책금융기관 비교검증)(3)글로벌 진출
수익다각화·중소벤처기업 해외진출 '가교' 역할
"단기성과보다 설립 근거에 맞게 사업 구상 필요"
입력 : 2024-08-22 06:00:00 수정 : 2024-08-22 06:00:00
 
[뉴스토마토 임지윤 기자]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로 내수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국내 기업들의 활로는 '해외'로 축약됩니다. 글로벌 시장의 경쟁도 녹록치 않습니다. 산업군별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G2 간의 패권경쟁이라는 힘의 논리도 작동하는 등 시장은 혼돈 그 자체입니다. 정책금융기관 역시 내수의 한계에서 벗어나 해외에서 길을 찾아야 하는데, 여의치 않은 상황입니다. 
 
정책금융기관의 해외 진출은 단기적으로, 수익을 다각화하는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중소벤처기업들의 해외시장 진출 시 가교 역할을 도맡고, 나아가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이미지 제고에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단기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기관별 설립 근거에 맞게 장기 비전과 전략을 세우고 현지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는 22일 주요 정책금융을 담당하는 11개 기관의 글로벌 사업을 △해외 지점·현지법인·사무소(지사) 현황 △주요 전략 △향후 계획 등의 항목으로 구분해 들여다봤습니다. 한국산업은행과 중소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 3곳은 해외에 직접 진출했으며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 등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산하 기관들은 해외 진출을 희망하는 유망 중소·벤처기업 지원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국책은행 3곳, '거점 차별화'
 
그래픽=뉴스토마토
 
산업은행은 정부의 '한국형 인도·태평양 전략'에 맞춰 중국과 홍콩 등을 주요 거점으로 삼아 아시아권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총 17곳의 해외 지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6곳이 중국과 홍콩에 포진돼 있습니다. 각각 7개의 해외 현지법인과 사무소도 운영 중입니다. 지난 2017년 문재인정부 때 신남방정책 지원을 위해 싱가포르에 설립한 '아시아 지역본부'는 올해 들어 없앴습니다. 이에 대해 산은 측은 "런던, 싱가포르 등 주요 거점 점포 중심의 대형화·현지화 전략은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중소기업은행은 중국,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 3곳에 현지법인을 설립해 이른바 '아시아 금융벨트' 구축에 착수했습니다. 현재 13개 국가에 60개 해외점포(국외지점, 사무소 포함)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실적도 순항 중입니다. 지난해 현지법인 3곳의 누적 순이익은 553억원으로 1년 전(439억원)보다 26% 늘었습니다. 인도네시아은행의 경우 누적 순이익이 156억원으로 전년(81억원) 대비 2배가량 급증했고, IBK미얀마는 '국가비상사태'라는 상황에서도 흑자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산업은행 우즈베키스탄에 현지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산업은행의 해외 현지법인 7곳 중 하나인 KDB우즈베키스탄 외관. (사진=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관계자는 "글로벌 공급망을 중심으로 네트워크(연결망)를 새롭게 구축하고 기존 영업망 확대를 계획 중"이라며 "유럽연합(EU) 시장의 전통 생산기지인 동유럽 폴란드 현지법인 설립과 기존 2개 지점을 운영 중인 베트남의 법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윤희성 행장 취임 뒤 아시아와 태평양을 아우르는 정책금융 거점으로 싱가포르를 낙점하고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싱가포르를 비롯해 자카르타, 호찌민, 홍콩, 런던 등 5곳에 현지법인을 세우고 해외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무역과 해외투자 촉진'을 위해 설립된 한국무역보험공사는 해외 사업을 영위하지 않습니다. 다만, 해외 채권관리와 해외 수입자 신용조사 등을 수행하는 해외지사를 총 18개국에 22곳 운영 중입니다.
 
중소기업은행은 전세계 13개 국가에 60개의 해외점포(국외지점, 사무소 포함)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IBK기업은행)
 
기관 특성 따라…아직은 '시작' 단계
 
국내에서 보증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은 글로벌 사업을 키우는 단계입니다. 신보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 뉴욕, 도쿄, 프랑크푸르트, 방콕 등 해외사무소를 폐쇄했다가 지난 2020년 하노이에서 21년 만에 다시 해외사무소를 개설했습니다. 기보는 지난해 해외투자를 개시했습니다. 포트폴리오(자산 배분 전략)가 국내에 편중되어 있다는 일각의 지적에 따른 것입니다. 유럽투자은행(EIB)과 혁신·녹색금융 정책을 공유하고 미주개발은행(IDB)과 '페루 기술평가 모형 개선'을 추진하는 등 기술금융 관련 해외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고 기보 측은 설명했습니다.
 
기보를 비롯한 중기부 산하 기관들은 오영주 중기부 장관 지휘 아래 글로벌 사업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중진공의 경우, 전 세계 13개국 21개 지역에서 중소 벤처기업에 사무공간 등을 지원하는 글로벌 비즈니스센터(GBC)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코리아 스타트업 센터(KSC)도 5개국에 1개씩 설치했습니다. 올 하반기 중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지역에 중소기업 지원 종합 거점도 신규로 열 계획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한국벤처투자(KVIC)는 '해외 벤처캐피털(VC) 글로벌펀드 1·2호'를 운용 중입니다. 출자액의 최소 1배수 이상 한국 기업에 투자하는 의무를 부여해 외자유치와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3년부터 올해 7월 말까지 전 세계 67개 펀드에 7006억원을 출자해 총 11조6000억원 규모를 마련했습니다. 그동안 글로벌 펀드를 통해 투자한 국내 기업은 비바리퍼블리카, 우아한 형제들, 바킷플레이스 등 528개에 달합니다. 지난해엔 영국 런던에 4번째 해외사무소도 열었습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주금공)는 연초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5억달러(약 6672억원) 규모의 글로벌본드(144A/RegS)를 발행한 데 이어 5억유로(7465억원) 규모의 이중상환청구권 부채권(커버드본드) 발행도 성공하며 국내 대표 한국물 발행사 반열에 올랐습니다. 연내 싱가포르, 미국 뉴욕에 이어 영국 런던에 3번째 해외 사무소도 열 방침입니다. 반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글로벌 사업부서가 없습니다. 공공기관운영법상 공공기관이 아닌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도 글로벌 전담 조직을 별도로 두고 있지 않습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전세계 21개 지역에 글로벌 비즈니스센터(GBC)를 운영하고 있다. 베트남 호찌민 글로벌 비즈니스센터(GBC) 스마트워크 센터 내부. (사진=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전문가들은 정책금융기관이 해외 진출 시 현지에 맞는 장기적 비전과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제언합니다. 한상용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시장이 포화된 상황에서 성장성만 보고 금융기관들이 동남아시아에 많이 진출하는데, 단기 성과만 보고 무작정 진출하면 리스크(위험)가 크다"며 "그 나라 현지 문화, 정치적 상황, 법적 리스크(위험) 등을 충분히 조사해 각 정책금융기관 역할에 맞는 장기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정재호 K-정책금융연구소장은 "대한민국은 개방형 통상국가, 즉 수출해서 먹고사는 나라이다. 미국의 공급망 재편이라는 신블럭화 정책에 따라 눈치빠르게 대한민국 산업계가 움직이고 있다. 돋보이는 기술발전과 분단국가의 독특한 안보체계가 대한민국의 경제적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K-pop, culture, food 등 soft power가 선진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원래 대한민국의 DNA를 따져보면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을 잇고 함께 어우러져 교역·교류하면서 살아온 민족이었다"며 "모든 정책금융기관은 저마다의 타고난 근거법상 목적을 되뇌이면서 해외 개척에 선도적 방점을 찍어도 괜찮다. 선도하라고 있는 것이 정책금융기관"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임지윤 기자 dlawldbs20@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 임지윤

싱싱한 정보와 살아있는 뉴스를 제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