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정책금융연구소는 11개 주요 정책금융기관에 대해 △시스템 △경영전략 및 성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을 평가합니다. 먼저 정책금융기관 간 업무중복 문제를 들여다봤습니다. 업무중복 논란이 있는 8개 기관 가운데 6곳의 소관부처가 모두 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부처 간 업무 조율이 부재한 상황에서 기관 간 '밥그릇 싸움'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연구소는 유사 업무 경쟁으로 국민 선택권이 제고되는 것인지, 혈세 낭비로 이어지는 것인지 진단합니다.
[뉴스토마토 임지윤 기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한국주택금융공사(주금공)는 주택 관련 정책금융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입니다. 양 기관은 설립 목적과 근거법, 소관부처 등은 다르지만 전세,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보증' 부문이 중첩됩니다. 정책 수요자 혼란을 줄이고, 두 기관의 재무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각자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HUG는 주거복지 증진과 도시재생 활성화를 목적으로 2015년 설립된 준시장형 공기업입니다. 주택도시기금 운용부터 각종 보증 업무를 담당합니다. 70.25%의 지분을 보유한 국토교통부가 상급 부처입니다. 2004년 설립된 주금공은 기금 관리형 준정부기관으로, 은행들이 보유한 주택담보대출을 사들여 유동화해 주택저당증권(MBS)로 만드는 일을 주로 합니다. 이를 비롯해 주택금융 신용보증, 주택연금보증 공급 업무도 수행합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각각 62.8%, 32.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금융위원회가 관리감독 책임을 맡습니다. 두 기관의 본사는 부산국제금융센터에 위치해 있으며, 직원 수도 1000여명으로 비슷합니다.
양 기관, 전세보증 중첩…'폭탄'은 HUG가 떠안아
그래픽=뉴스토마토
현재 전세보증 시장에서 점유율은 HUG가 압도적입니다. 지난해 전체 전세보증을 받은 24만8000가구 가운데 93.7%(23만2150가구)가 HUG를 통해 가입했습니다. 금액만 놓고 보면 51조5510억원(92.8%)에 달합니다. 보증료율은 주금공이 0.02~0.04%로, HUG(0.115~0.154%)에 비해 낮지만, 가입 기준이 까다로워 HUG로 쏠리는 실정입니다.
주금공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하려면 주금공에서 세입자 대신 대출금을 갚아주는 '대출보증' 상품에 가입해야 합니다. 국외 영주권자는 가입자격에서 제외됩니다. 반면, HUG는 선순위 채권이 주택 가격 60%를 초과할 경우만 제외하고 개인, 법인, 외국인 모두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습니다.
HUG에 리스크가 큰 전세보증이 쏠린 결과 재정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보증사고와 대위변제가 급증하며 지난해 당기순손실이 3조8598억원을 기록했습니다. 1년 전보다 손실 규모가 9배가량 불었습니다. 부채비율은 116.9%를 기록했습니다. HUG는 최근 2년 연속 기획재정부가 실시하는 공공기관 경영 평가에서 '미흡(D)' 등급을 받았습니다.
HUG에 정통한 관계자는 "전세보증은 공적 기관도 서로 꺼리는 사업"이라며 "수익이 크지 않은 데다 서민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민원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리스크를 떠안고 HUG가 보증 업무를 맡고 있지만 악화되는 재무 구조에 대해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전했습니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주금공은 HUG와 달리 '전세대출'을 보증한다"며 "엄밀히 얘기하면 세입자가 아니라 은행을 보호하는 기관"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두 기관 상품이 차이가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떤 상품을 선택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HUG는 공급자, 주금공은 수요자 위주로 역할 구분해야"
부산 국제금융센터에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한국주택금융공사(HF) 본사가 입점해 있다. (사진=HUG)
HUG와 주금공의 보증 업무 중첩은 정부 정책에 혼선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지난 6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전세사기 피해 지원 대책 관련 청문회에서는 두 기관의 다른 피해 지원 요건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피해 주택을 낙찰 받을 시 경락 자금 100%를 저리 대출해 주겠다는 지원책을 낸 정부 안과 달리 HUG 디딤돌대출이 총부채상환비율(DTI) 60%만 적용하는 바람에 경락 자금 대출을 받지 못하는 피해자가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두 기관의 부처 일원화나 통합의 현실적 어려움은 인정하면서도 설립 취지나 자금 조달 구조에 맞게 HUG는 공급자 위주, 주금공은 수요자 위주로 분명한 역할 조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국토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주택 금융은 주택 공급을 촉진하는 '공급자 금융'과 수요자 부담을 낮추는 '수요자 금융'으로 나뉠 수 있는데, 공급자 쪽은 건설사업 등을 맡고 있는 국토부 산하 HUG가, 수요자 쪽은 주택연금 등을 다루는 금융위 산하 주금공이 강화하는 식으로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면서 "설립 근거나 자본 확충 방식 등을 감안해서라도 기관 간 역할이 명확히 구분된다면 재정 건전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재호 K-정책금융연구소장은 "1979년도 유주택자 비중이 51%(총 세대수 1100만)었던 것이 2021년도에는 60%(총 세대수 2000만)로 약 40여 년 동안 9%밖에 늘지 않았고 아직도 집 없는 세대는 40%나 된다"며 "집값, 전셋값의 폭등에 따른 은행 대출금과 가처분소득의 직접적 연관성은 경기 악화의 주범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고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집 없는 세대는 갈수록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정 소장은 이어 "두 기관의 운용 재원은 국민들이 붓고 있는 주택청약저축과 국민들이 사들이는 주택채권매입, 각종 금융기관들의 출연금으로 200조원이 훨씬 넘는 돈을 조성해 90배, 50배라는 운용배수도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어서 가히 천문학적 자금을 국민으로부터 빌려쓰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HUG와 주금공의 존립 근거법 각 제1조에는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국민의 복지증진과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면서 "처음으로 돌아가서 국토부와 HUG, 금융위와 주금공이 왜 있는지, 반성과 성찰이 절박한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임지윤 기자 dlawldbs2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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