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에 대한 '조롱'…무책임한 표현의 자유
시청역 돌진 사고 애도 현장서 '사망자 조롱', 국민적 공분 사
유가족 대한 2차 피해 가능성…경찰, 모욕죄·명예훼손죄 검토
표현의 자유 보장하되 사회 악영향 주는 '방종'엔 경종 울려야
입력 : 2024-07-11 14:54:39 수정 : 2024-07-11 14:54:39
[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과거엔 전국적인 참사 앞에서 국민 모두가 경건하게 애도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성수대교 붕괴나 삼풍백화점 붕괴 때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끔찍한 참사가 일어나면 마치 어떤 공식처럼 희생자들을 조롱하는 사건이 따라붙고 있습니다. 대다수가 이런 행태를 비판하고 있지만, 희생자들에 대한 조롱은 그칠 줄 모르고 있습니다. 사회 곳곳에 조롱이 만연한 데다 그 수위도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겁니다.
 
최근 서울 중구 시청역 교차로에서 차량이 돌진해 9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현장은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애도의 장소가 됐습니다. 시민들이 애도의 장소에 국화꽃과 추모의 마음을 담은 글, 소주·커피 등 먹거리를 가져다 놓고 있습니다.
 
반면 이번 사망 사고와 관련해 국민적 공분을 산 사건도 있습니다. 애도의 장소에 희생자들을 조롱하는 글을 남긴 사람들이 있었던 겁니다. 특정 성별만 가입할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에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글이 게시된 걸로 전해지면서 남녀갈등의 양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서울 중구 시청역 교차로 인근에서 발생한 사고 현장에 추모 용품들이 놓여 있다.(사진=뉴시스)
 
그런가 하면 경남 창원의 한 종합병원에서는 의료진이 머리를 심하게 다친 환자를 ‘뚝배기’라고 칭하며 비하한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응급환자가 많고 심각한 상황이 자주 일어나는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비하하면서 장난치는 일이 일어난 것이라 더 큰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혐오가 넘쳐나고 조롱이 퍼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런 현상에 대해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는 곳은 없습니다. 때문에 유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 대한 2차 피해가 끊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사후적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 민사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법밖에는 사실상 대책이 없는 겁니다.
 
경찰은 시청역 사망 사건을 조사하면서 조롱글을 쓴 사람들을 대상으로 모욕죄, 사자명예훼손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 등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형법상 모욕죄는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면 성립합니다. 명예훼손죄는 사람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가 침해될 가능성 있는 ‘구체적 사실이나 허위의 사실’을 표현하는 경우 성립하게 됩니다. 다만 희생자에 대한 조롱글이 모욕에 해당하는 행위인 건 맞지만, 사자에 대한 모욕죄는 처벌 규정이 없으므로 실제로 처벌까지 이뤄지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서울 중구 시청역 교차로 인근에서 발생한 차량 인도 돌진사고 현장에 사망자들을 추모하는 문구가 적힌 메모지가 놓여 있다. (사진=뉴시스)
 
그간 혐오나 조롱에 대해선 입법이 미비했습니다. 혐오나 조롱은 도덕의 영역이고, 사회적으로 충분히 자정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고 판단해 법적인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참사 이후의 양상만 봐도 사회의 자정능력은 전혀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슈가 된 가해자만 마녀사냥식 여론에 노출됐다가 관심이 떨어지면 별다른 처벌 없이 흐지부지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데요. 이런 악순환은 2차 피해를 더 양산하기도 합니다.
 
악순환에 빠져버린 현 상황에서는 혐오나 조롱을 사회의 도덕적 자정작용에만 맡길 일이 아닙니다. 입법자가 나서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국민의 대표답게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통해 혐오 표현의 한계 등을 설정하고 사회가 나아갈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혐오와 조롱까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금지한다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타당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2차 피해의 정도가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상황에서는 법률로써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제한될 수 있습니다(헌법 제37조 제2항).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고 보호하되 ‘방종’은 보호하지 않는 것은 법치주의 사회의 기본 원칙이기도 합니다.
 
자유와 방종이 뒤섞인 상황에서 도를 넘은 혐오와 조롱으로 인해, 황망한 사고로 가족을 잃고도 2차 피해를 또 입게 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제 입법자들이 국민의 대표라는 자리에 걸맞은 길잡이 역할을 다해야 할 때입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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