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부 말대로, 북한은 '쇄국정책' 중인가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 동북아 정세 '노태우 북방외교' 이전으로 회귀
입력 : 2024-07-11 16:20:41 수정 : 2024-07-11 16:20:41
지난 달 19일 북한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시 김일성 광장에서 환영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쿠바와 수교 합의 사실을 공개한 다음 날인 지난 2월 15일,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대(對) 사회주의권 외교의 완결판"이라면서 "북한으로서는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반미·사회주의 연대의 중심축을 무너뜨리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적 성과"라고 논평했습니다. 북한의 고립 심화를 강조한 겁니다.
 
쿠바가 전통적인 북한의 '형제국'이고, 우리에게는 중남이 유일의 미수교국이었다는 점에서 '한-쿠바 수교'는 분명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여당 말대로 북한이 지금보다 더 심대하게 고립돼, 타격을 입게 될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쿠바가 국력이 강한 나라도 아니고,  아예 대북 관계를 단절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쿠바는 코로나19 발생으로 불러들였던 평양 주재 대사를 중국, 몽골에 이어 3번째로 다시 파견했고, 김일성 주석 사망 30주기를 맞아 지난 8일에는 외무 장관이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하겠다고 했습니다.
 
한·미 정부, '북한의 고립' 강조
 
한·미 정부는 최근에 특히 ‘북한의 고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5월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 예상 국면에서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북한의 외교적 고립을 더 심화시키는 노력과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고, 북한이 위성을 발사한 뒤 미 국무부는 "북한의 고립만 심화시킬 것"이라고 규탄했습니다.
 
또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북한 김정은 총비서가 '적대적 두 국가론-영토 평정-통일 폐기'발언을  한 직후 서울에서 회동한 한·미·일 북핵대표들은 "북한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다"고 비판했고, 특히 김건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건 북한판 '쇄국정책'"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거의 ‘고정 레퍼토리’수준입니다.
 
잇따른 핵·미사일 실험으로 달러 중심 국제 금융망에서 퇴출당할 정도로 고립돼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핵을 매개로 한 미·일·중·러, 즉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이자 세계 4강에 대한 외교 상황은 2018년을 기점으로 확연히 달라졌습니다.미국과는 사상 처음으로 두 번이나 정상회담을 했고, 험담으로 유명한 북한이지만 정상회담 당사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전혀 비난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는 11월 대선 승리가 유력한 트럼프도 기회 날 때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호의를 표시하곤 합니다.
 
트럼프 진영 인사들, 북미대화 기정사실화
 
'트럼프 2기' 외교안보 라인으로 거론되는 프레드 플라이츠 미국우선주의정책연구소(AFPI) 부소장이나 크리스토퍼 밀러 전 국방장관 대행은 각각 "트럼프가 당선되면 대북 특사를 임명하고 북한과 대화할 텐데, 이번에는 지난 1기와는 달리 한국·일본과 사전에 깊이 협의할 것", "북한과의 군축협상은 선택 가능하고, 더 효과적으로 북한과 의사소통을 시작할 수 있다면 단점이 뭐가 있겠는가"라고 말합니다. 공공연하게 북미대화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겁니다. 또 지난 8일 미국 공화당이 발표한 새 정강정책은 사실상 트럼프의 대선공약 격인데요. 2016년, 2020년과 달리 북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폐기(CVID),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응 다짐, 북한 주민 인권 확립 등이 삭제됐습니다.
 
중국과는 어떻습니까? 2018년, 2019년에 북중 정상은 5번 이나 만났습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2018년 중국 다롄에서 같이 산책한 것을 기념한 ‘발자국 동판’이 최근 사라지는 등 불협화음이 나타나고 있지만,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관계에서 크게 이탈하기는 어렵습니다. 한때는 북한이 한국전쟁 참전 중에 폭격으로 사망한 마오쩌둥 주석의 아들 마오안잉의 묘비까지 파손하는 사건까지 벌어지는 등 북·중관계는 부침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은 북한에 대해 비핵화보다도 '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를 우선하는 태도가 확고합니다.
 
2019년 6월 3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기도 파주 판문점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일성 '시계추 외교'와 김정은 '시계추 외교'의 차이
 
김정은 위원장의 조부 김일성 주석이 중국과 소련 분쟁 국면에서 '시계추 외교'를 했다면, 김 위원장은 진영을 벗어나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시계추 외교를 하면서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일본과는 물밑 접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적극적으로 북일정상회담 의지를 밝히면서 접촉이 시작됐으나 북한 핵문제와 납북자 문제로 진도가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양측이 몽골에서 접촉했다는 지난 달 보도에 일본 측은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교도통신은 지난 달 5일, 기시다 총리가 8월 몽골을 방문해 오흐나 후렐수흐 몽골 대통령에게 북·일 간 협의 진전을 위한 협력을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와는 사실상 군사동맹에 버금 가는 수준까지 되돌렸습니다. 지난달 10일 평양에 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맺은 겁니다. 이에 더해 국제제재 대상국인 양국이 달러 결제 시스템을 벗어난 독자적인 결제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의지도 강렬합니다.
 
종합해보면 북한은 1990년 한·소 수교, 1992년 한·중 수교로 대폭 약화한 배후지를 어느 정도는 회복한 셈입니다. 북한의 쇄국 대상은 오로지 남한 뿐인 듯합니다. 이는 역으로 윤석열정부에게는 30여 년 전 노태우정부가 이뤄낸 북방외교의 빛나는 성과를 상실했다는 의미입니다.
 
한·중수교와 한·소수교로 북한을 압박해 교차승인 즉 북·미수교와 북·일수교를 끌어낸다는 원대한 계획은 사라지고, 오히려 그 기본 토대가 흔들리는 상황이 돼 버린 겁니다. 이런데도 계속 ‘북한의 고립 심화’만 뇌까리고 있어도 되는 걸까요?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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