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협정 60주년, 2025년…윤정부, 일본에 완전 면죄부 주나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신한일공동선언' 준비 중
입력 : 2024-08-29 14:07:50 수정 : 2024-09-02 12:02:03
지난 2015년 8월 1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당시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전후 70년담화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담화에서 '일본의 식민지배, 침략'을 명시 하지 않았으며, 과거형으로 사죄를 했다. (사진=뉴시스)
 
아베 신조 2기(2012년 12월) 내각 이후 현재까지 일본 외교는 고 아베 전 총리가 만들어놓은 틀 안에 있습니다. 그가 1기 시절인 2007년 처음 제시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은 일본의 기본 대외전략이 됐습니다. 대중국 견제에 목말랐던 미국 트럼프 정부도 이를 전략으로 채택하면서 유럽과 한국도 따라가야 했습니다.
 
아베 전 총리는,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야스쿠니신사를 공식 참배한 '보수의 원류' 나카소네 야스히로를 잇는, '일본 우경화'의 대표 정치인입니다. 그를 이어 1년 남짓 집권한 스가 요시히데 내각이나 2021년 10월에 출범해 곧 막을 내리는 현 기시다 후미오 내각 모두 내용적으로는 '아베 3기' 격입니다.
 
당연히 한국 등에 대한 동아시아 외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현재까지 일본 정부의 과거사 문제 대응은 아베 전 총리가 태평양 전쟁 종전 70주년을 맞아 2014년 8월 14일에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가 기준입니다.
 
아베, 2014년에 '전후 70년 담화' 발표…"더 이상 사죄하지 않겠다"
 
"러·일 전쟁은 식민지 지배 아래에 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습니다….일본에서는 전후 태어난 세대가 이제 인구의 8할을 넘고 있습니다. 그 전쟁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우리의 자녀나 손자, 그리고 그 뒤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과를 계속할 숙명을 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벌인 러·일 전쟁을 아시아, 아프리카 피식민지인들에게 희망을 준 사건이라 강변하고, 일본의 전후 세대들에게는 사죄의 부담을 지워서는 안 된다. 즉 더 이상 과거사에 대해 사죄하지 않겠다고 한 겁니다. 
 
'전후 70년 담화' 발표 5년 뒤인 2020년 10월에 그는 그야말로 과거사 문제에 대해 마침표를 찍습니다. 일본 극우 언론으로 첫손 꼽히는 <산케이신문> 인터뷰에서 "그것(전후 70년 담화)으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말한 겁니다. 그는 "70년 담화를 전후해 호주 의회와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 이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나의 진주만 방문이 이어졌다. 거기서 전후를 끝낼 수 있었다"며 이렇게 속내를 밝혔는데요, 그렇게 일본은 과거를 정리해 버렸습니다.
 
2015년 군함도(하시마)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때 강제동원을 명시하겠다는 약속을 뒤집고 '먹튀'한 것도, 2021년 4월 일본 각의(국무회의)가 "국민징용령에 의한 한반도 출신 노동자에 대해 '강제연행', '강제노동'이란 표현은 부적절하다"고 결정하고 그 이후 일본 교과서에서 관련 표현이 사라진 것도, 지난 7월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강제동원을 명시하지 않은 것도, 모두 이렇게 벌어진 일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윌러드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7월, 한·일  정상회담 "내년 국교정상화 60주년 외교당국 간 준비 착수"
 
내년 2025년은 광복 80주년이자,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 한·일 협정 60주년(6월 22일)이 되는 해입니다. 아베 전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 발표 10년이 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지난 7월 1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만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내년 국교정상화 60주년을 의미 있게 맞이하기 위해 한·일 양국이 지혜를 모아 외교당국 간 준비에 착수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가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앞서 지난 3월 용산 대통령실도 내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계기로 새로운 공동 문서를 발표하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무려 세 가지 역사적 사건의 정주년인 내년에 한국과 일본이 '신한일공동선언'같은 공동합의를 내놓겠다는 예고입니다.
 
또  '김대중-오부치 선언'(1998년)을 높게 평가해 온 윤석열 대통령은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자신의 업적으로 남기고 싶어한다고 합니다.
 
새 '한·일 선언'이 나온다면 그 내용은 무엇일까요? '김대중-오부치 선언'처럼 일본의 과거사 반성과 사죄를 공식문서화하고 이를 토대로 포괄적 협력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될까요?
 
윤석열의 대일 정책, 아베 전 총리 정책 수용 과정
 
그간 윤 대통령의 대일 정책은 아베 전 총리의 정책을 그대로 수용해 온 과정이었습니다. 아베 전 총리는 더 이상 과거에 대해 사과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윤 대통령은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것을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의 최측근 외교·안보 참모인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고 살뜰히 챙깁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일본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외전략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베 전 총리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을 윤석열정부는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가져왔습니다. 타국의 전략을 이름도 안 바꾸고 그대로 베껴온 겁니다. 그러면서 '가치외교',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라는 이름 아래 미국과 일본에 대한 '편향·편승 외교'로 달려왔습니다.
 
대서양에서 미국의 최대 동맹이 영국이고 태평양에서는 일본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한·미·일 동맹'의 실체는 결국 한국이 미·일 동맹의 하위파트너로서, 대중국 전선의 첨병 역할을 맡는다는 얘기입니다.
 
광복절 '통일 독트린' 벌써 잊히고 있어
 
이런 상황에서 나오는 '신한일공동선언'은 포장지는 '김대중-오부치 선언Ⅱ'라 해도, 실제로는 중국과 북한에 맞서는 한·미·일 협력 강화라는 명분 아래 더 이상 '전범국가 일본'의 과거를 묻지 않겠다고 약속해주는 문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1965년에 한·일 협정을 맺으면서 박정희정부도 일본의 사토 에이사쿠정부도 한·일 과거사에 되돌이킬 수 없는 대못을 박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한·일 합방이 무효이며 따라서 식민지배 36년이 불법이었음을 명시하지 않으면서 두고두고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대못을 박으려 해도 그 뜻대로 될 수 있을까요? 윤석열정부의 국내 기반은 극히 허약하고, 지금의 우리는 일본의 경제지원에 급급했던 1965년의 한국도 아닙니다. 이번 광복절에 발표한 '통일 독트린'도 보름도 안 돼 이미 잊히고 있지 않습니까?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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