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골프 삼부와 배임
입력 : 2024-07-22 14:38:04 수정 : 2024-07-22 14:38:04
‘골프 삼부’가 탄핵청문회를 강타했습니다. 매우 이질적인 코미디를 본 듯한 인상에 현장에서부터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답정너’를 구한 질문과 저의가 실소를 자아낸 것이죠. 국민적 의혹을 파헤치기 위한 게 청문회 목적입니다. 그런 본질을 망각하고 의혹을 음모론쯤으로 덮으려했던 시도는 함정에 빠졌습니다. 증인 스스로 "군대 골프장엔 삼부가 없다"고 실토했습니다.
 
정황상 다수 인식이 일치하게 되는 상식선은 분명 존재합니다. ‘탁상을 탁 쳤더니 죽었다’고 하면 의심하게 마련인 이치입니다. 그걸 부정하면 막무가내로 우기는 꼴입니다. 기본적인 상식조차 부정하면 사사건건 입증하기 위해 여러 길을 돌아가야 합니다. 시간과 비용, 기력이 낭비됩니다. 지구는 네모가 아니란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지구 한바퀴를 다시 돌아야 합니다.
 
범죄도 상식에 비춰 합리적으로 의심되는 정황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드러난 범죄사실과 법원 판례가 만든 상식들입니다. 그렇게 사건 혐의가 보일 때 수사 필요성, 혹은 재판부 판단을 구하게 됩니다. 합리적 의심은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찾아 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 동력입니다.
 
배임죄는 주로 합리적 의심에서 출발합니다. 사건 유형이 워낙 다양하다보니 그런 식이죠. 어떤 유형으로 등장할지 모를 배임죄를 일일이 법에 정해둘 순 없습니다. 이런 규정의 모호성은 때론 폐지론을 부추깁니다. 이번엔 상법상 이사충실의무 강화 논의에서 불똥이 튀었습니다.
 
하지만 법은 원래 그런 식입니다. 조항 문구가 수 없이 많은 사례를 다 판별할 수 있을 정도로 세세할 순 없습니다. 집행부나 재판부가 사안별로 판단하라고 여지를 둡니다. 그래서 조문은 간략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법이 너무 방대해집니다. 조문이 너무 구체적이면 정의가 한정돼 편법적으로 빠져나갈 범죄도 양산합니다.
 
흔히 "배임 조항은 걸면 다 범죄"라고들 하죠. 그 때문에 검사 출신 금감원장이 먼저 폐기하자고 화두를 던졌습니다. 그게 검찰 과잉수사를 자인한 것이라면, 그건 검찰 잘못이지 법이 잘못된 건 아닙니다. 이사충실의무 상법 개정에 반대하는 경영계 반발이 배임죄 폐지론이 나온 배경입니다. 상법 강화 대신 배임죄를 풀어주겠단 거죠. 사건이 발생했다고 가정하면 피의자를 배려하는 셈입니다.
 
거꾸로 뒤집어 봐야 합니다. 피의자를 없앤다고 피해자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배임죄가 없다면 부당한 합병비율이나 쪼개기 상장, 지배주주 사익편취 등도 논란거리조차 못됩니다. 하지만 분명 손해보는 쪽은 생깁니다. 기업들의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 배임 의혹이 없었다면 국정농단사건 규명도 없었을 것입니다. 기업들이 수상한 재단에 출연한다고 문제될 건 없으니까요. 
 
배임죄는 건전한 사회를 지향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입니다. 피의자가 모호하더라도 피해자는 특정됩니다. 피해자에게 비정상적이고 부당하다 여겨지면 따져볼 근거가 되는 게 배임죄 규정입니다. 배임기소가 너무 많은 게 문제라면, 배임적 행위가 많다는 데도 생각이 미쳐야 합니다. 배임 재판 결과가 으레 집행유예, 특별사면 복권 등으로 지워지니까 근절되지 않는 원인도 있습니다.
 
법 규정은 범죄 의도를 사전 차단하고 사후적으로 근절하는 취지입니다. 그게 없다면 마음껏 자행됩니다. 선진국에선 배임죄를 따지는데 국내만 없다면, 말로만 밸류업이고 코리아디스카운트를 피할 수 없게 됩니다. 모럴해저드도 거리낌 없어지죠. 골프 삼부 같은 일화도 웃지 못할 일이 됩니다. 상식이 무너져 주장만 관철되니까요.
 
이재영 산업1부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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