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빗장' 풀고 토론에 응한 체육계
입력 : 2016-04-08 06:00:00 수정 : 2016-04-08 06:00:00
'인간은 토론과 경험에 힘입어 자신의 과오를 고칠 수 있다. 경험만으로는 부족하다. 과거의 경험을 올바르게 해석하자면 토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1859년에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펼친 주장이다. 지난 6일 대한체육회의 의사 결정을 보며 157년 전부터 밀이 강조한 토론과 소통의 힘을 새삼 경험했다.
 
이날 대한체육회는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을 거부했다. 케냐 출신 마라토너 에루페의 귀화 요청도 거절했다. 공통된 이유는 '약물 이력'이다. 박태환과 에루페 모두 금지 약물 복용으로 징계를 받았다. 박태환을 위한 국가대표 선발 규정 개정과 에루페를 위한 한국 귀화 추진은 모두 없던 일이 됐다.
 
사실 이번 결정은 의외다. 박태환은 '약물 징계 이후 3년간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국내 규정만 바꾸면 다시 리우올림픽에 나설 수 있다. '영웅'이라는 호칭이 붙는 그이기에 과거 체육계의 관행으로 봤을 땐 얼마든지 규정 손질이 가능해 보였다.
 
에루페도 마찬가지다. 에루페는 2012년 금지 약물 복용 혐의로 국제육상연맹으로부터 징계를 받았으나 이미 끝난 일이다. 그 또한 말라리아 치료과정에서의 단순 복용이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날 결정은 어떤 이유에서든 약물 복용 이력이 있는 선수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단호한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억울하거나 아쉬운 측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개별 선수의 입장을 고려하기보다는 판단기준을 모두에게 공정하게 적용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이 모든 건 체육계 내부의 빗장을 풀고 외부와 머리를 맞대고 소통해 일궈낸 결과다. 사실 이번 결정의 주체는 대한체육회라기보다는 산하 독립기구인 스포츠공정위원회라 보는 게 맞다. '소통의 장'은 대한체육회가 마련했지만 의사결정은 스포츠공정위원회가 했다. 이 위원회는 '체육회 내부 사람들은 위원으로 위촉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체육계 외부 전문가로 구성됐다. 홍성표 위원장 역시 대전광역시 교육감을 지낸 체육계 외부인사다.
 
오랫동안 체육계는 얽히고설킨 선후배 문화와 서로간 이해관계를 벗어나지 못해 '밀실 행정'을 한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대표적인 집단으로 꼽혔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번 결정은 긍정적인 신호로 여겨진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위원회에 참석한 한 인사는 다른 위원에게 "저만 대한민국 체육을 걱정하며 비판을 해온 줄 알았는데 여기 계신 분들 모두 저 못지 않게 올바른 체육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시는 것 같아 감사하다"고 말했다고도 한다. 합리적 의사결정에 대한 반가움의 표현일 것이다. 굳게 잠겼던 밀실에 실로 오랫만에 빛이 들고 있다.
 
임정혁 문화체육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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