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 몰두하는 정책금융…"비전·목표 공유가 '먼저'"
(11개 정책금융기관 비교검증)(3)디지털전환
디지털전환 가속화…수요자 접근성 향상
"정보 취약계층 고려한 대안 필요"
입력 : 2024-08-21 06:00:00 수정 : 2024-08-21 06:00:00
 
 
[뉴스토마토 오승주B 기자] 산업 간 경계가 흐릿해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에 디지털 전환은 '선택'이 아닌 '생존'입니다.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혁신적인 서비스를 개발하고 제공하는 것이 경쟁력 유지의 핵심 요소로 자리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정책금융기관도 예외가 아닙니다.
 
정책금융기관의 디지털 전환은 업무 효율성 향상과 수요자 만족도 제고를 통해 성장을 촉진하는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혁신을 저해하는 전근대적 조직문화 등 디지털 전환의 장애 요인에 유의하고, 디지털 비전을 확실히 정립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옵니다.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는 21일 주요 정책금융을 담당하는 11개 기관의 디지털 전략을 △구체적인 비전 설정 △내부 프로세스 혁신 △수요자 편의성을 고려한 인프라 구축 등의 항목으로 나누어 들여다봤습니다.
 
명확한 디지털 비전 제시가 '관건'
 
(그래픽=뉴스토마토)
 
디지털 전환의 성공을 위해서는 뚜렷한 비전과 방향 설정이 필수입니다. 큰 그림 없이는 투자 효율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조직의 역량을 분산시켜 궁극적인 목표 달성을 어렵게 하기 때문입니다. 명확한 목표와 장기적 전략은 경영진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의미하는데요. 이는 한정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선택과 집중으로 이어집니다. 
 
한국벤처투자와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을 제외한 정책금융기관들은 이러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각자의 디지털 비전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업은행은 '쉽고 빠르고 안전한 디지털 IBK'를 목표로 고객 신뢰의 기본인 안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국수출입은행(수은)은 '선제적 IT'라는 슬로건 아래 중기 디지털 전환 전략을 마련했으며, 신용보증기금(신보)은 'DDP(디지털·데이터·플랫폼) 혁신'을 통한 초연결 통합플랫폼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과 한국무역보험공사도 각각 '데이터 기반 정책서비스 확대'와 '고객 지향 무역보험 디지털 전환'을 중장기 전략과제로 설정했습니다.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내부 구조와 업무 과정의 혁신 또한 중요한 과제입니다. 내부 프로세스 혁신은 생산성 향상과 업무 비용 절감에 크게 기여합니다. 수은은 지난해 인공지능(AI) 번역과 AI 광학 문자 인식(OCR) 등 첨단기술을 도입해 업무 효율성을 높였고, 신보는 2022년 로봇프로세스자동화(RPA) 시스템 도입으로 연간 1만2353시간의 업무량을 감축했습니다. 한국주택금융공사 역시 RPA를 활용해 단순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고, 정책모기지 관리 시스템을 개선해 효율성을 향상시켰습니다.
 
이처럼 디지털 전환은 조직문화와 인식의 변화를 동반해야 합니다. 한 금융기관 관계자는 "구체적인 방향 제시 없이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면 실무진들이 방향을 잃고 자원만 낭비할 수 있다"면서 "일방적인 탑다운(Top-down) 방식은 실무 부서의 반발을 야기하고, 디지털 부서 외 일반 부서의 협조를 얻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수요자 편의성 확대 주력하는 정책금융
 
신용보증기금은 신용보증, 매출채권보험 등의 업무플랫폼을 '온비즈(ON-Biz)'로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이미지=신보ON-Biz 홈페이지)
 
디지털 전환에서 수요자 접근성을 고려한 인프라 구축도 중요합니다. 모바일 기기의 대중화와 AI, 빅데이터 등 기술 발전으로 높아진 수요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고객 이탈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11개 정책금융기관의 주요 역할이 중소기업 지원인 만큼, 수요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그 존재 가치가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중진공은 지난해 빅데이터 기반 AI 진단 시스템 '비즈브레인'을 도입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약 1000만건의 산업별 데이터를 분석해 기업의 외부 환경, 경영성과, 내부 역량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최적의 지원 사업을 추천합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안심전세' 앱을 통해 전세 관련 모든 절차를 비대면으로 처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산업은행은 디지털 대출 신청 프로세스를 재설계해 온라인 대출 신청과 처리를 용이하게 했습니다. 기술보증기금은 약 15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클라우드 기반의 '중소벤처 ONE 플랫폼' 재구축 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한 정책금융기관 관계자는 "과거에는 고객이 상담을 받으려면 오프라인 지점을 여러 차례 방문해야 했지만, 이제는 온라인으로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다"면서 "편의성 증대로 기관이 기업 심사 시 활용하는 자료의 범위도 확대됨에 따라 기업의 신용을 더욱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 기금의 건전성 향상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디지털 취약계층 배려 중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안심전세' 앱을 통해 전세 관련 모든 절차를 비대면으로 처리할 수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다만, 전문가들은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을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경영진의 지속적인 관심과 명확한 비전 제시, 디지털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 일반 부서 간의 원활한 협업 체계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디지털금융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구체적인 개선 목표 없이 진행되는 디지털화는 오히려 비용 낭비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단순히 트렌드를 따라가는 보여주기식 디지털 전환은 지양해야 한다"고 경고하면서 "정책금융기관은 토스나 네이버 같은 테크 기업들과의 경쟁보다 이들과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서비스 제공을 강화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정재호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장은 '시야의 혁신'을 주문했습니다. 정 소장은 "목하 '디지글로벌 (digiglobal)'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디지털과 글로벌이 기술적으로 한몸이 되어 있다. 한국이라는 일국적 시각에서 디지털 영역을 들어다보면 우물안 개구리,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이 자명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시야를 넓혀서 디지털 경제영토와 경제인구 확장을 위해서 국경이 없다는 생각을 갖고 접근을 하면 기술패권의 먹이사슬에서 상위 포식자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11개 정책금융기관들의 디지털 업무를 다루는 직원들의 마인드를 이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특히 젊은 직원들의 제안을 적극 취하거나 이 분야의 스타트업을 잘 키우면 조만간 전 세계에서 우뚝 서는 큰 일을 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승주B 기자 sj.o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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