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에 의한 평화·절대안보'만으로는 안되는 이유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이-팔 교전이 한반도에 주는 교훈
입력 : 2023-10-13 06:00:00 수정 : 2023-10-13 16:23:44
지난 11일(현지시각) 이스라엘군의 자주포가 장소가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가자지구를 향해 포탄을 쏘고 있다. (사진=뉴시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4억의 아랍 22개국이 다 덤벼도 못 이긴다" 겨우 한국 1/5 면적에 인구 1000만명도 안되는 이스라엘의 막강한 군사력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말입니다. 4차례 중동전을 통해 이를 실증했고, NCND(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음)로 일관하지만 핵보유국이기도 합니다. 2022년 기준으로 이스라엘 국방비는 234억 달러로 세계 15위 규모이며, GDO대비 국방비 비율은 4,5%에 달해 한국(2.7%)은 물론, 미국(3.5%)을 훨씬 상회합니다. 남성은 물론 여성도 의무징병 대상으로 2017년에 흥행한 영화 <원더우먼>의 주인공 갤 가돗도 이스라엘 여군 출신으로 유명합니다.
 
해외 정보기관인 모사드는 어떻습니까. 아르헨티나에 숨어 살던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아르헨 모르게 감쪽같이 이스라엘로 잡아 오는가 하면, 시리아에 침투한 엘란 코헨이 골란고원 방어계획 등 극비정보를 빼돌려 1967년 '6일 전쟁'(3차 중동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물론 모사드의 빛나는 '작품' 중 몇 가지 사례일 뿐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생존에 방해되면 모사드가 그를 암살해야 한다"는 칼럼(2012년 1월 13일자, 미국 애틀랜타의 유대계 신문 <애틀랜타 주이시 타임스> 사주 앤드루 애들러)이 나올 정도입니다. 모사드는 미국 대통령도 암살할 수 있다는, 유대인들의 인식을 잘 보여줍니다.
 
외교는 확고한 비동맹노선입니다. 어느 나라와도 동맹을 맺지 않습니다. 미국과는 내용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돈독한 관계이지만 동맹조약 관계는 아닙니다. 미국의 중동전략에 매이지 않겠다는 겁니다.
 
'절대안보' 상징 이스라엘…하마스 재래식 공격에 당해
 
인류역사상 유례없는 나치의 600만 홀로코스트를 겪고 천신만고 끝에 나라를 세운 이스라엘로서는, 이렇게 지독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미국과 함께 힘에 의한 평화와 이게 기반하는 절대안보를 상징하는 국가입니다.
 
그런데 지난 7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의 재래식 공격에 완전히 뚫렸습니다. 개발에만 2억달러를 쓴 저고도 방공망 이언돔(Iron Dome)은 요격률 90%를 자랑했으나 하마스의 개당 80만원짜리 재래식 미사일 5000 발에 제 역할을 못 했고, 가로 10km-세로 40km의 팔레스타인 거주지 가자지구를 8m 높이의 콘크리트와 철조망 장벽으로 봉쇄한 데 이어 6m 높이 바다 장벽에 스마트펜스까지 설치했지만 하마스의 패러글라이드에 무용지물이었습니다.
 
11일(현지시간)  현재 이스라엘 측 사망자만 1948년 건국 이래 최대인 1200명을 넘었고 하마스가 끌고 간 인질도 130여명에 달합니다. 이들 중 일부도 이미 하마스가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피의 보복을 반복하고 있는 그간의 역사적 상황을 감안해도 하마스의 민간인 학살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말대로 "이스라엘은 전쟁 중" 상태로 빠져들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라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가자지구에 대한 전면 봉쇄를 지시했다"면서 "전기도 식량도, 연료도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닫힐 것"이라고 '하마스 고사작전'을 예고한 데 이어, 탱크와 장갑차 포위하고 공세를 확대해 하마스 작전본부 등 2000곳을 정밀타격했습니다. 유엔과 유럽연합이 전면 봉쇄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했지만,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 주변 주둔군 10만명에 이어 예비군 30만명을 동원한 데 이어, 추가로 6만명의 예비군 소집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기습으로 민간인이 살육당하고 대규모 인질까지 발생하면서 이스라엘은 미국의 전폭적 지원 아래 복수를 다짐하고 있습니다. 당분간은 이스라엘의 분노를 제어하기 어렵겠지만, 향후 정세는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당장 이스라엘과 수교를 추진해오던 이슬람 수니파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팔레스타인 편에 설 것"이라고 선언했고, 쿠웨이트, 카타르 등 중동에서 '친서방'으로 꼽히던 국가들도 팔레스타인 편에 서겠다고 했습니다.
 
하마스보다 훨씬 강력한 레바논 무장세력 헤즈볼라가 개입하고, 더 나아가 만약 이란까지 뛰어든다면? 팔레스타인 문제는 복잡다단(複雜多端)하기 이를 데 없는 중동 정세의 핫스팟 중에서도 핫스팟입니다. 중동 전체 정세, 때문에 국제정세를 좌우할 핵심 버튼이 제대로 눌려 진 셈입니다.
 
한기호(왼쪽 다섯번째)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 등이 지난 9월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9.19 남북군사합의 폐기촉구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에 앞서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힘에 의한 평화'는 안보의 필요조건일 뿐
 
이-팔 교전을 보면서 우리 정부와 주류언론은 북한도 팔레스타인처럼 기만술을 쓰면서 기습할 수 있다며 9·19군사합의 효력정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또 이스라엘이 그토록 자랑하던 아이언돔과 모사드가 허망하게 실패한 것에서 교훈을 찾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 ‘이스라엘판 햇볕정책’을 했음에도 하마스가 이를 따르는 척하다가 기습했다는 황당한 주장도 나오지만, 어쨌든 북한에 맞서 빈틈을 메우고, 자주국방력을 강화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합니다. 드넓은 두 바다가 양옆을 막아주는 것도 모자라 저고도에서 고고도까지 영공 전체를 미사일 방어망으로 둘러싸고, 심지어 우주 방어망까지 만든 '절대안보'의 유일 초강대국, 미국도 국가행위자도 아닌 테러집단이 벌인 9·11을 막지 못했습니다.
 
'힘'은 안보의 필요조건일 뿐이라는 얘깁니다. 이-팔 교전 사태에 대해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10일 "우리는 기본적으로 두 개 국가해법을 지지한다"며 "모든 문제가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되길 바란다"고 논평했습니다. 국제 사회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 각각의 국가를 갖는 것이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1993년 9월 오슬로 협정에서 역사적인 '두 개 국가 해법'을 끌어낸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이에 반대하는 극우파 청년에게 암살당했습니다. 현재도 극우파에 포획된 네탸냐후 정부는 팔레스타인을 무시하면서, 국제법도 무시하고 팔레스타인과의 약속도 무시하고 팔레스타인 주거지에 이스라엘 정착촌을 확대했습니다. 2007년 이후로 계속 가자 지구를 봉쇄해, '지상 최대규모의 창살없는 감옥'으로 만들었습니다. 
 
힘을 통한 평화는 기껏해야 분쟁만 발생하지 않는, 극히 불안한 평화입니다. '나의 안보가 곧 너의 불안'인 안보딜레마를 증폭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는 것이 평화의 충분조건이고 핵심입니다. 우리가 이-팔 사태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바로 이것 아닙니까?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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