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후 사용후핵연료 저장 포화…'고준위법'에 쏠리는 눈
2030년부터 한빛·한울·고리원전 포화
22대 국회 재발의 "특별법 조속히 통과해야"
입력 : 2024-07-03 16:24:41 수정 : 2024-07-03 19:32:33
[뉴스토마토 오승주B 기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이 계속 쌓여가고 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21대 국회에서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이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재발의됐는데요. 국회의원들이 '고준위 특별법' 발의를 서두르는 이유는 이 특별법의 시급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은 열과 방사능 준위가 높은 폐기물로, 주로 사용후핵연료를 의미합니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력발전 과정에서 핵연료가 원자로 내에서 핵분열을 거친 후 남은 물질인데요. 여전히 높은 방사능을 띠고 있어 장기간 안전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고준위 방폐물을 영구적으로 처분하는 방폐장이 없습니다. 대신, 고준위 방폐물은 원자력발전소 내 수조에서 습식저장 방식으로 임시 보관되고 있습니다. 
 
현재 고준위 방폐물은 원자력발전소 내 수조에서 습식저장 방식으로 임시 보관되고 있다.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제공)
 
1978년 고리원전 1호기의 상업 운전이 시작된 이후 국내 원전에 쌓인 고준위 방폐물은 지난해 말 기준 1만8900톤에 달합니다. 문제는 이 임시 저장시설의 포화 시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2030년부터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2031년에는 한울원전, 2032년에는 고리원전 순으로 습식 저장소가 포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중간저장·영구처분시설 확보 시급
 
고준위 특별법은 원전 내 임시로 저장된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관리하고 처분하기 위한 법안입니다. 이 법안은 중간저장시설(건식저장소)과 영구처분시설을 짓는 절차와 방법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에너지법 전문가인 황재훈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는 3일 <뉴스토마토> 유튜브 '야단법석'에서 "특별법이 추구하는 방식은 사용후핵연료를 지하 500m에 안전하게 보관하는 영구처분 방식으로, 현재 기술적으로 가장 안전하고 우리의 삶과 영구적으로 격리시키는 방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특별법 제정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20대와 21대 국회에서 총 7건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습니다. 영구처분시설의 필요성은 오랫동안 제기돼 왔지만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데 실패했습니다. 
 
21대 국회에서의 주요 쟁점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저장시설의 용량 문제입니다. 여당은 원전의 '운영 허가 기간' 동안 발생한 폐기물을 저장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야당은 '설계 수명 기간' 동안 발생한 폐기물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둘째는 관리시설의 목표 시점 명기 문제입니다.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의 운영 시점을 모두 명기할지, 영구처분시설의 운영 시점만 명기할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이러한 대립의 바탕에는 '친원전'과 '탈원전'이라는 에너지 정책의 차이가 있습니다. 민주당은 원전의 설계된 수명 기간이 끝난 후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막아 원전을 자연스럽게 폐쇄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반면 국민의힘은 원전의 수명을 연장할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의견 차이 때문에 특별법 제정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경북 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는 1992년부터 원전 내 건식저장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제공)
 
"고준위 특별법 제정 서둘러야"
 
정부는 1980년대부터 고준위 방폐장 부지를 선정하기 위해 여러 차례 지자체와 주민들과 소통을 시도해왔습니다. 1980년대 후반 경북 울진·영덕·영일을 시작으로 1990년 충남 안면도, 1994년 인천 굴업도, 2003년 전북 부안군 등이 방폐장 부지로 거론됐는데요. 지역 주민의 반발과 명확한 법적 근거의 부재로 인해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방폐장 건설을 위해서는 법적 근거 마련, 일관된 정책, 주민 수용성 제고, 민주적인 절차가 필수임을 보여줍니다.
 
전문가들은 고준위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전력 대란'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황 변호사는 "영구처분시설을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 각 원전 부지 내에 건식저장시설을 불필요하게 지어야 하는데, 건식저장 방식은 영구처분 방식보다 덜 안전하고 관리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국민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민간 환경 감시기구의 역할 강화 필요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고준위 특별법은 21대 때보다 더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별회계의 설치 및 운용에 관한 29조 내용이 상세하게 반영됐습니다.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4건의 고준위 특별법 중 가장 먼저 발의한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은 "이대로 가면 2030년부터 원전들이 차례로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번 국회에서도 특별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그 피해는 원전 지역 주민들과 미래 세대가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2대 국회 '고준위 특별법' 발의 현황 (이미지=뉴스토마토)
 
다만 민간 환경 감시기구와 관련된 내용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고준위 방폐장이 운영될 때 이를 투명하게 감시할 민간 감시기구 제도가 중요한데요. 임혜자 K-정책금융연구소 기획위원(전 청와대 선임행정관)은 "최근 민간 감시기구가 원자력발전소에 자료를 요청했지만 사업자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제공하지 않았고, 부산 고리원전본부에서는 감시단 주민들에게 술을 대접하는 일도 있었다"면서 "형식적인 감시기구에 불과하며 암묵적인 카르텔이 형성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라고 꼬집었습니다. 
 
황 변호사는 "고준위 방폐장이 투명하고 정직하게 운영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부지를 수용할 때 주민들이 안심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서 "현재 특별법안은 부지 선택 후 어떤 지원을 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실제 운영 시 방폐장을 어떻게 잘 감시하고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현재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특별법의 여야 합의 시점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제2차 고준위 방폐물 기본계획에 따르면 중간저장시설을 확보하려면 부지 선정 착수 후 20년, 영구처분시설을 확보하려면 부지 선정 착수 후 37년이 걸립니다. 국회의 신속한 법 통과와 안전한 영구 보관시설 확보를 위한 절차 착수가 시급합니다.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는 지난 5월 성명서를 통해 "저장수조에 임시로 보관된 사용후핵연료를 건식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로 옮겨 저장하지 않으면, 저장 공간 부족으로 원전 운영을 중단해야 하는 비상사태를 맞이할 수 있다"면서 "고준위 특별법을 통해 영구처분시설의 운영 시기, 부지 선정 절차와 방법, 건식저장설비 용량 등을 시급히 다뤄야한다"며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습니다. 
 
오승주B 기자 sj.o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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