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미디어 비평)대통령 앞에서 한없이 공손한 기자들
입력 : 2024-09-04 06:00:00 수정 : 2024-09-04 06:00:00
미국 UPI 통신의 토머스 헬렌 기자는 50년 동안 백악관을 출입하며 10명의 대통령을 취재한 기록으로 유명하다. 그는 백악관 출입 최초 여기자, 백악관 출입기자협회 최초 여성 회장, 닉슨 대통령 방중을 수행한 유일한 여기자 등의 ‘최초’ ‘유일’의 타이틀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를 ‘전설의 기자’로 기억하는 것은 단지 그가 오랜 기간 백악관을 출입했다거나 ‘최초’ ‘유일’의 여기자였다거나 많은 특종 기사를 터뜨린 기자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통령을 상대로 한 날카롭고 거침없는 질문이 그의 이름을 더 오래, 더 크게 기억하게 했다. “권력자에게 무례한 질문이란 없다”란 말은 그를 떠올리게 하는 언론계 금언(金言)이다. 
 
세상을 떠난 미국 백악관 출입기자를 다시 소환한 이유를 알 것이다. 한국에도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이 있다. 예전에는 ‘청와대 출입기자’라고 불렀는데, 보통 각 언론사가 이른바 ‘에이스 기자’들을 이 자리에 보낸다고 한다. 정치부 기자로 경력 뿐 아니라 국내 정책이나 국제관계 등 여러 분야 취재 경험이 풍부한 기자여야 최고 권력자를 상대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은 과연 이런 능력을 갖고 있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자주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가진 3번의 기자회견을 보면 우리나라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은 ‘질문 무능력자’처럼 보인다.    
 
지난달 29일 낮 열린 대통령 기자회견을 보면 기자들은 대부분 대통령에게 ‘불편한 질문’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듯한 태도였다. 예컨대 정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해병대원 사망 수사외압의 대통령 개입 여부, 논란이 커지고 있는 2인 방통위 위법성과 공영방송 장악 문제에 대해서는 질문이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의료개혁, 국민연금, 대북정책에 관한 질문은 구체성이 떨어져서 대통령의 답변이 두루뭉술해도 이상하지 않게 느껴질 정도였다. 
 
김건희 씨 명품백 수수에 관해 ‘방문 조사는 예전에도 있었던 일’이라는 동문서답을 듣고도, ‘경제가 확실히 살아나고 있다’ ‘응급실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등의 황당 답변을 들어도 그냥 넘어갈 뿐이다. 20%대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무능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국민이 느끼는 불안과 불만은 질문에서 드러나지 않았다.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현장에 나가봤나’ ‘신문은 봤냐’ ‘정부가 뭘 더 어쩌라는 거냐’며 화를 내도 기자들은 차분하다. 토마스 헬렌 기자에 따르면 권력자에게 ‘무례한 질문’은 기자의 특권인데, 외려 권력자가 기자들에게 불편한 질문을 하는 괴상한 기자회견이었다.  
 
대통령을 향한 출입기자들의 과도한 공손함과 ‘질문 무능력’은 지난 5월 열린 기자회견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국정농단 사태로 파면된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한 때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서있던 그 기자들이 다시 돌아온 것인가? 불편한 질문은 대통령실이 금지한 것인가 기자들이 스스로 금지한 것인가? 7년 전 대통령을 탄핵한 국민이나 4개월전 총선에서 정권을 심판한 국민이나 대통령 앞에서 공손하기만 한 기자들을 보고 답답함을 느낀 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우리 기자들이 대통령 앞에서 늘 공손했던 것은 아니다. 민주당 출신 대통령에게는 불편한 질문을 거침없이 던지는 ‘선택적 공손함’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공화당 대통령이든 민주당 대통령이든 가리지 않고 가장 뼈아픈 질문을 던져댄 토마스 헬렌 기자의 충고에는 일관성이 있다. “권력자의 사랑을 받고 싶다면 기자이기를 포기하라.” 
 
김성재 전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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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